남편에 암매장 당한 여성…경찰 방관에 희생됐다[그해 오늘]

2014년 안산 아내 암매장 사건…도주했다 체포
수차례 가정폭력 신고…경찰들 업무태만에 희생
살인 입증 못해 결국 상해치사 기소…징역 10년
자녀들에 합의서 요구→자녀들 "엄벌 처해달라"
  • 등록 2022-11-16 오전 12:03:00

    수정 2022-11-16 오전 12:03:00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4년 11월 16일 오전 5시 무렵. 안산 모 경찰서 소속 형사들이 전남 완도항 인근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 안에 있던 50대 남성을 긴급체포했다.

안산에서 거주하던 이 남성은 40대 아내 B씨를 숨지게 하고 사체를 암매장한 혐의로 경찰의 추적을 받던 용의자였다. 경찰은 A씨를 용의자로 특정하고 추적한 지 4일 만에 A씨의 소재를 파악해 체포에 성공했다.

희생된 B씨는 수개월 전부터 경찰에 가정폭력으로 남편 A씨를 신고한 상태였다. 하지만 결국 끔찍한 범행을 막지 못했다. 여기엔 경찰들의 옳지 않은 사건 대응이 있었다.

(사진=뉴시스)
강도상해 전과가 있던 A씨는 근거도 없이 아내 B씨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고 의심하며 지속적으로 폭행을 가했다. 폭행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반복적으로 계속됐고, 수개월 전부터 강도를 더했다.

범행 한 달 전인 2014년 10월초 A씨는 B씨가 다른 남자와 단순히 대화를 나눴다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수차례 무지막지한 폭행을 가했다. B씨가 지인들과 함께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폭행을 가해 중상을 입혔다.

폭행은 집에서도 계속됐다. 피해자의 얼굴 등을 발로 걷어차 중상을 입히기도 했다. A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집안에 있던 흉기를 얼굴에 들이밀며 “난도질하겠다”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고소까지 했지만…‘25년 지기’ 경찰, 가해자에 수시연락

A씨의 계속된 폭력에 아내 B씨는 경찰에 고소했지만 경찰의 대응은 미진했다. 가정폭력 사건으로 접수돼 A씨가 피의자 신분이 됐지만 담당 경찰관들의 소극적 대처 속에 A씨의 폭행은 계속됐다.

A씨와 25년간 알고 지냈던 한 경찰관 C씨는 피의자와 접촉이 금지된 경찰 내부규정을 위반하고 A씨와 25회나 연락을 주고받았다. C씨는 ‘아내를 때려 경찰이 왔다’는 A씨의 전화를 받고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특히 A씨에 대한 범죄인지보고서 내용을 본 직후 A씨에게 연락해 “너 구속된다. 준비하라”는 등의 말을 건네며 수사기밀을 유출했다.

C씨 외에도 A씨의 폭행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들은 아내 B씨가 중상을 입는 부상을 당해 긴급체포 요건이 됨에도 불구하고 긴급체포 대신 임의동행으로 사건을 미진하게 처리했다. 고소사건을 배당받은 담당 경찰관들도 적극적으로 수사를 하지 않았다.

피해자의 수차례 신고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는 사이 A씨의 폭행은 계속됐다. 그러던 중 2014년 11월 10일 새벽, A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조경농장에서 피해자로부터 부하직원과의 외도 문제를 지적받자 실랑이를 벌였다. A씨는 피해자를 강하게 밀쳐 넘어뜨렸고 B씨는 후두부에 큰 충격을 받고 뇌출혈 등으로 즉사했다.

A씨는 아내가 사망하자 별다른 고민도 없이 조경농장 소유 굴삭기를 이용해 농장 뒷마당에 구덩이를 팠다. 그리고 B씨 시신을 암매장했다. 시신을 묻은 자리에 곧바로 나무를 옮겨심었다. 사무실이 외진 곳에 위치해 A씨의 범행 목격자는 없었다.

아내를 암매장한 A씨는 하루 뒤인 11일 오후 “아내가 실종됐다”는 거짓신고를 했다. B씨의 행적을 조사하던 경찰은 전날 새벽까지 A씨와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다는 점을 확인하고 수사망을 좁혀 나갔다.

살인 입증 못해 결국 처벌은 ‘징역 10년’ 불과

수사망이 좁혀오는 것을 느낀 A씨는 12일 도주했다. 경찰은 A씨를 추적하는 한편, 사라진 B씨를 찾기 위해 주거지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다가 14일 오후 암매장된 B씨 시신을 발견했다.

체포된 A씨는 “부부싸움을 하다 아내가 사망해 시신을 암매장했다”면서도 살인이 아닌 몸싸움 과정에서 벌어진 사고사라고 주장했다.

살인 혐의 가능성을 두고 수사를 하던 검찰도 결국 부검 및 수사 결과를 토대로 A씨에게 살인 혐의 대신 상해치사와 사체은닉 혐의 등을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A씨는 자신의 자녀들을 비롯한 유족들에게 합의를 요구했으나 오히려 유족들은 법원에 엄벌에 처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1심은 “피해자는 사망에 이르는 순간까지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유족들은 정신적으로 치유하기 힘든 고통을 겪고 있다”며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 사람의 고귀한 인명을 앗아갔다는 점에서 죄질이 매우 좋지 않고, 유족으로부터 용서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죄책이 매우 무겁다”고 질타했다. 하지만 A씨는 “형이 지나치게 무겁다”며 판결에 불복했다. 하지만 형은 2심을 거쳐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경찰은 B씨가 사망 전 수차례 가정폭력 신고를 한 사실을 확인하고 감찰에 착수했다. A씨와 수차례 통화를 했던 C씨의 경우 감찰이 시작되자 휴대전화를 임의제출하라는 요청을 거부하고 파손하기까지 했다.

경찰은 2014년 12월 비밀엄수 의무와 품위유지 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C씨를 해임했다. 하지만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위원회는 C씨의 징계를 해임처분에서 강등처분으로 낮춰줬다. C씨는 이마저도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C씨 외에도 B씨의 가정폭력 신고 사건 수사를 미진하게 처리한 다른 경찰관들도 정직, 감봉, 경고 등의 징계처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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