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병은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에 안면을 직격으로 맞았다. 곧바로 인근의 군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 일병은 같은 날 오후 5시 22분 숨졌다. 학수고대하던 휴가를 불과 10여 일 앞둔 상황이었다.
사건 발생 지점에서 불과 400m 지점엔 사격장이 위치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사건 초기엔 이 일병이 도비탄(튕겨져 나온 탄알)을 맞은 것이란 추정이 나왔다.
하지만 탄알이 찌그러져 있어야 하는 도비탄과 달리 이 일병을 숨지게 한 탄알은 엑스레이 상으로 깨끗했다. 유족은 육군의 추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지시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조사에 들어갔다.
부대원들이 이동하던 통행로는 사격장의 사로 뒤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에 있었고,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쌓아 두는 사격장의 흙 언덕은 다른 곳에 비해 낮았다. 애초 총구가 조금만 빗나가도 사고의 위험성이 있는 구조였다.
더구나 이 일병이 동료들과 함께 부대로 복귀하던 중에는 사격 중임에도 통해로 통제가 되지 않았다. 당시 이 일병 등 부대원들을 인솔할 간부는 사격음이 들리고 있음에도 그대로 통행로로 부대원들을 이끌고 갔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사건의 책임을 물어 사격주통제관이었던 중대장 A씨, 이 일병 일행을 인솔한 소대장 B씨, 부소대장 C씨를 재판에 넘겼다.
보통군사법원은 2018년 6월 A씨에게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 B씨와 C씨에겐 각각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군인권센터는 사건과 관련해 “사건 책임을 일선 부대 초급 간부들에게 전가해 본질을 호도하려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윗선은 법적 처벌을 피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