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독립을 위해 폭탄을 들다 [그해 오늘]

1920년 8월 3일 평안남도청 투탄 의거
폭탄범 정체 '임산부'에 놀란 일제
"옛날 뜻 그대로 가지고 나가려 합니다"
  • 등록 2023-08-03 오전 12:00:10

    수정 2023-08-03 오전 12:00:10

[이데일리 김혜선 기자] 1920년 8월 3일 밤. 평양에 위치한 평남도청 건물에 폭발음이 울렸다. 당시 미국 국회의원과 그 가족으로 구성된 극동시찰단은 중국을 거쳐 한국을 방문하게 됐는데, 상해 임시정부가 일제의 식민통치에 한국민족이 항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폭탄 투척을 준비한 것이었다. 오동진 광복군총영장은 신의주와 평양, 선천, 서울 4개 지점에 투사를 보내 폭탄 투척을 계획했고 평양 거사에는 문일민, 장덕진, 박태열, 안경신이 나섰다.

가석방 당시 안경신. 1927년 12월 17일 조선일보 보도. (사진=조선뉴스라이브러리100)
이들이 준비한 거사는 당초 평남도청과 평양경찰서를 목표로 했다. 하지만 준비한 폭탄의 심지가 젖는 바람에 평양경찰서에 던진 폭탄은 터지지 않았고, 문일민이 평남도청 구내 제3부(경찰부)에 던진 폭탄이 터졌다. 이 충격으로 평남도청 땅이 깊게 패이고 유리창이 모두 깨졌다고 한다. 미국에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보여주려 한 일제의 자존심에 큰 타격을 준 사건이었다.

‘여자 폭탄범’ 안경신, 대담한 여자

대형 폭발에 혼비백산한 일제는 사건 이후 몇 개월동안 폭탄범들을 찾지 못했다. 평양 일대가 동요할 것을 우려해 당시 며칠간 보도도 통제됐다. 이듬해 1921년 3월, 대수색을 벌이던 일제는 함경남도 이원군에 숨어있던 안경신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그가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산모였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은 폭탄 투척이라는 거사에 임산부까지 나섰다는 사실에 크게 주목했다. 안경신에는 ‘여자 폭탄범’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당시 보도를 살펴보면, 안경신은 평안남도 출신으로 평양여자 고등보통학교를 수료하고 1919년 3.1운동 당시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가 일제에 약 한 달 간 구류당했다고 한다. 1921년 5월 2일자 ‘동아일보’에서는 “안경신은 이로부터 일본을 배척하며 조선 독립을 위하는 마음이 날로 격렬하게 되어 작년 2월 중에 김행일이라고 하는 사람과 같이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 투신해 열심으로 진력했다”고 설명했다.

안경신은 생후 며칠 되지 않은 아이를 안고 재판을 받아야 했다. 그 해 6월 사형을 선고받은 안경신은 재판정에서 “푸른 얼굴에 두 눈에 눈물이 몽롱해 초연한 태도로 퇴정했다(조선일보, 1921년 6월13일)”고 한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임시정부는 장덕진 명의로 ‘평남도청 폭탄은 내가 주도했다’는 취지의 서한을 보내 안경신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와중에 당시 17살로 숭실중학교 학생이었던 김효록이 거사 과정에 “여자 목소리를 들었다”는 진술을 뒤집어 안경신은 사형을 면할 수 있었다. 안경신은 징역 10년을 선고받았고, 김효록은 재판정에서 위증을 한 죄로 6개월 징역을 살게 됐다.

이후 안경신은 옥중 생활을 견디며 아이를 길렀다고 한다. 안경신의 아들은 혹독한 감옥 환경에 두 눈이 멀었다. 1927년 가석방으로 풀려난 안경신은 당시 조선일보(1927년 12월 17일)에 생생한 심경을 전했다.

“특별히 느끼는 바는 없습니다. 별로 한 일도 없고 기나긴 세월을 옥중에서 허송했을 따름입니다. 제가 옥중에서 상상하던 바와 달리 세상이 너무나 달라졌습니다. 언제나 우리도 남과 같은 빛나는 생활을 하게 될까요? 이후로 과연 어떤 길을 밟아나가야 좋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직 옛날에 가졌던 뜻을 그대로 가지고 나가려 합니다”

독립을 꿈꾸며 임신한 몸으로 폭탄을 던졌지만, 여전히 일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탄식하는 듯한 말투다. 그럼에도 40세가 넘은 안경신은 옛날에 가졌던 독립의 뜻을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굳은 태도를 보였다. 당시 세간의 평가대로, 안경신은 ‘대담한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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