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신상건 김유성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공판이 오는 27일로 다가온 가운데 횡령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김 전 고문이 교묘하게 편법 보험계약을 이용해 자금을 세탁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파장이 예상된다.
|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이 보험 모집인으로 활동하며 6개 보험사에 40여 개의 보험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고문의 보험계약 내역서 현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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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이데일리가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김원홍 전 고문은 ㄱ 독립법인대리점(GA)을 통해 보험 모집인으로 활동하며 교보생명·
동양생명(082640)·미래에셋생명·알리안츠생명·
한화생명(088350)(구 대한생명)·흥국생명 등 6개 보험사에 40여 개의 보험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 회사에 적게는 한두 개에서 많게는 17개까지 계약을 했고, 매월 내는 총 보험료만 114억원에 달했다.
보통 중소형 보험사들의 월납 보험료 실적이 60억~70억원 수준인 점을 고려했을 때 한 사람이 낸 보험료가 한 보험사 영업실적의 두 배에 해당하는 셈이다. 가입한 보험 상품은 주로 연금보험이며 2008년에 가입한 뒤 2011년쯤 일괄적으로 해지 또는 실효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보험 계약의 고유 목적과 달리 수수료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도모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보험영업의 특성상 낸 보험료에 적게는 몇 배에서 많게는 몇십 배에 달하는 금액을 선지급한다는 점을 이용한 셈이다. 특히 당시에는 총 발생할 수수료의 60% 이상의 수수료를 다음 달에 지급하는 관행이 있었고, GA 시장이 설립 초기 상태로 세간의 관심이 많지 않았다. 금융감독당국의 관리·감독도 다소 약한데다 수수료 체계 역시 틀이 완벽하게 잡혀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제도를 잘 아는 사람들이 사각지대를 악용할 가능성도 컸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김 전 고문이 약 2년간 낸 2000억원의 보험료보다 챙긴 이득이 적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지만, 분명히 이득을 봤을 것”이라며 “당시 연금보험에 대한 선지급 수수료, 해약 환급금, 유지 수당 등을 고려했을 때 마이너스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 회장이 투자하라고 준 금액을 한푼도 돌려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만큼 자신이 직접 수당을 챙겨 해외로 떠났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계약 해지 시점도 주로 18~25회차에 집중된 점을 보면 보험사들이 이 회차 이상 계약은 환수(모집인에게 내준 수수료를 일정 부분 돌려받는 것)하지 못한다는 점을 역이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보험사 관계자는 “보통 2년이면 모든 선지급 수수료를 받는다”며 “이 시점은 보험사에서 환수도 안 해 결론적으로 단물만 쏙 빼먹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김 전 고문이 ㄱ 독립법인대리점의 실질적인 오너였다는 추측도 나오지만, 진위를 떠나서 ㄱ 독립법인대리점도 적잖은 혜택을 누린 것으로 알려졌다. 매월 내는 보험료 수준이 한 보험사를 뒤흔들 수 있는 만큼 성장 발판을 마련한데다 수수료 협상 등에서 유리한 갑(甲)의 위치에 서 있었을 것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이 회사는 2008년 설립 당시 영업수익(매출액) 360억원에서 지난해 1518억원으로 늘었고 계열사도 5개에 달한다. 김 전 고문은 최근 한 생명보험사의 전속 GA설립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대만 당국이 김 전 고문을 곧 우리나라에 강제소환하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송환되면 최 회장에게 받은 투자금과 관련해 보험 가입 규모와 수수료 수당 등 핵심 내용이 낱낱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