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업계가 과당경쟁으로 어려워지고 있으니 과당경쟁을 자제합시다.’ 이는 금융회사들이 가끔 주장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경쟁자제는 어찌 보면 일종의 담합행위이며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 금융회사는 변동비용보다 수수료 수입이 더 많은 한 금융서비스를 경쟁적으로 제공할 수밖에 없다.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석유 감산 논의가 쉽게 타결되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금융회사 건전성이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으니 과당경쟁을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 이는 정책당국이 간혹 사용하는 표현인데 이 역시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문제나 이에 대한 해결책을 잘못 이해한 데 따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부진한 것은 과당경쟁 때문이 아니라 이와 반대로 그동안 경쟁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각 금융회사가 경쟁우위에 설 수 있도록 그 동안 어떤 혁신을 해왔고 금융소비자와 기업을 위해 금융서비스를 어떻게 차별화했는지를 생각해보면 별로 눈에 띠는 것이 없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정책 당국이 수수료에 대한 자율화를 선언한 이후에도 고객 이탈을 우려해 수수료를 선뜻 올리지 못하는 금융회사들의 현실은 금융서비스가 전혀 차별화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영국 금융당국은 자국 내 금융산업의 경쟁촉진을 주요 금융감독 원칙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채택해왔다. 우리 정책당국도 금융산업에서 더 치열한 경쟁이 일어날 수 있도록 경쟁촉진을 정책의 주된 원칙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시장에서 충분한 경쟁을 통해 설정된 금리 또는 수수료에 대해 더 이상 문제 삼지 말아야 한다. 금융회사의 원가를 파고드는 것은 금융시장의 중개기능을 훼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금리 시장에서 경쟁이 일어나지 못하면 경쟁이 일어날 수 있도록 신규 진입자를 허용하고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올바른 정책 방향이다. 결국 모든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고 정책당국은 공급자간에 충분한 경쟁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것만이 금융산업을 발전시키고 소비자 이익을 보호하는 효과적인 정책임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