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한 B씨(60)도 얼마전 한 시중은행을 찾았다. 노후 자금을 관리하기 위한 신탁 상품에 가입하기 위해서다. 단순히 높은 수익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재산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주고 세상을 떠났을 때 남은 자산처리까지 믿고 맡길 수 있는 은행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B씨는 “큰 수익을 낼 만한 마땅한 투자처도 없고 해서 은행 신탁에 재산을 맡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익률이 낮아 미운 오리 취급받던 은행의 신탁 상품이 명예회복에 나서고 있다. 은행들은 올 하반기 들어서도 신탁 상품을 경쟁적으로 내놓는 등 고객 유치에 나섰다. 탁은 말 그대로 ‘믿고 맡겨달라’는 의미의 금융 상품이다. 은행은 고객들이 맡긴 돈을 채권, 주식, 부동산 등에 투자하고, 관리·처분까지 해주는 일종의 자산 관리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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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은행 신탁 수탁액은 496조원으로 작년 말보다 4조원 늘었다. 은행 신탁 수탁액은 2017년 376조원을 기록한 뒤 2018년 435조원, 2019년 480조원, 2020년 492조원을 기록하며 매년 성장 추세를 보이고 있다.
증여받은 자녀는 부동산을 임의로 매각하거나 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통제 장치를 마련한 점이 눈에 띄는 대목이기도 하다. 신탁재산은 주택 등 부동산에 한하며 국토교통부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최저신탁가액 1억원 이상이다. 신탁기간은 최대 30년으로 계약의 해지는 만기일 또는 증여자인 부모 등의 동의가 있는 경우만 가능하다.
본인 사후 가족에게 상조 서비스 비용의 부담을 덜어주는 상품도 있다. 신한은행이 선보인 ‘S 라이프 케어 상조신탁’은 고객이 상조회사를 사후수익자로 지정해 은행에 금전을 신탁하고 본인 사망 시에 유가족이 상조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신탁 상품이다. 가입자가 납입한 금전으로 상조서비스 비용을 결제하기 때문에 유가족의 부담을 덜 수 있다. 상조서비스를 위한 금전을 은행에 맡기기 때문에 상조회사의 휴·폐업 및 계약 미이행 위험 등과 관계없이 고객의 납입금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만 19세 이상의 개인 고객이면 최소 400만원부터 최고 500만원까지 가입 할 수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 8월 ‘위대한유산신탁’을 선보인 바 있다. 위탁자 생전에 쌓아놓은 금전, 부동산, 유가증권 등의 재산을 신탁하고 사후 미리 지정한 상속인에게 안정적으로 재산을 승계할 수 있는 종합 자산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유언대용신탁 상품이다. 하나은행이 출시한 사전증여신탁은 신탁 상품의 낮은 수익률을 극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 상품은 상장지수펀드(ETF)를 활용해 지수, 채권, 금 등 대체 자산에 분산 투자한다.
이러한 은행 신탁 상품들은 최근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보니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PB 관계자는 “수익률이 워낙 낮다 보니 과거엔 아는 사람만 가입하고 인기가 시들했다”며 “자금 운용처가 마땅치 않고, 상속과 증여 문제까지 해결하려는 수요가 몰리면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무엇보다 설계 과정에서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는 점이 강점으로 꼽히며 가입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부연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의 PB 관계자는 “신탁을 통해 유연하게 조건을 설계할 수 있는 장점과 함께 ETF 등을 활용해 분산 투자하는 흐름이 신탁 상품 사이에서 강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