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차오른 세월호에서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처럼 잔인한 4월은 없다. 이런 나라에선 살 수 없다는 한탄과 자탄이 넘쳐난다. 진도 앞바다와 안산, 목포를 연결하는 TV 생중계를 보면서 시민들은 ‘절망의 바다’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각종 이벤트는 물론 나들이와 운동 스케줄도 줄줄이 취소하는 마당이다.
왜 우리에겐 622m지하 갱도에서 69일만에 구출된 33인의 칠레 광부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걸까. 전 국민이 크게 낙담하고 실망하는 건 우리 시대의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상처투성이다. 불편한 진실이다. 사고의 원인을 만든 부실한 관리시스템도 문제지만 배가 전복된 이후의 초동대응부터가 우왕좌왕과 좌충우돌의 연속이다. 한 지인은 “북한에서 미사일이라도 날라 올라치면 한국사회는 어떻게 될까”라고 묻는다.
한국엔 그동안 대형사고가 많았다. 1993년 위도 서해 훼리호 참사(292명 사망), 1994년 성수대교 붕괴(32명 사망),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501명 사망),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192명 사망)등등. 그때마다 고속성장시대의 ‘빨리빨리 문화’가 부실을 키웠다며, 이참에 안전문화를 다잡자고 다짐했다. ‘빨리빨리 문화’가 항상 죄인이었다. 사후대책도 판박이다. 공분을 빨아들일 희생양을 만들고, 메뉴얼과 규정을 보강하는 일도 매번 비슷한 궤적으로 진행된다. 사고가 나면 많은 규정을 양산한다. 문제는 규정이 없는 게 아니라 지키지 않는 일인데도 많이 만들어낸다. 그런데도 사고는 이어지고.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잠깐이라도 살아본 한국인이라면 ‘선진국에선 먹는 것 같고 장난칠 수 없다’는걸 잘 안다. 법규를 위반하면 바로 ‘아웃’이다. 엄격하다. 안전에 관한 한 이런 기준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단 한번이라도 정해진 메뉴얼에 따라 실행하지 않으면 퇴출시키는 방식으로다. 선진국에선 교차로에 ‘STOP’사인 떨어지면 예외 없이 줄에 맞춰 그 자리에서 선다. 사람들 눈이 없는 주택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사건을 국가시스템을 선진국으로 업그레이드 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이번엔 절대 솜방망이 처벌은 곤란하다.일벌백계해야 한다.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나라엔 희망이 없다. 다시는 봄풀같은 아이들이 ‘잔인한 4월’ 에 갇혀선 안된다.<총괄부국장겸 산업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