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갤러리] 캔버스바닥이 내는 얘기 듣기…김하나 '아름다운 직업'

김하나 ‘아름다운 직업’(사진=송은문화재단)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거친 바닥에 연한 흙빛의 흐름이 보인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 흐름에 세 가지 문양을 박아뒀건만 무엇을 옮긴 형체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저 붓길에만 눈을 주란 암시인가.

작가 김하나는 회화 자체에 충실한다. 회화의 가장 기본이라 할 캔버스·물감 등 물질에만 집중하는 거다. 그렇게 끌어내려 한 것은 캔버스의 표면이 전해주는 이야기다. 안료를 얇게 바르고 화면의 물성을 최대한 드러내, 보는 이의 시선을 거기에 묶어두는 거다. 동명 연작인 ‘아름다운 직업’(Beau Travail·2019)은 애초부터 색채가 가진 깊이, 표면이 내뿜는 질감만을 내보이려 작정한 거다. 장면을 구성하거나 대상을 부각하는 일 따위는 빠져 있다.

간혹 캔버스 프레임을 벗겨 내기도 하는데 공산품의 정체성을 지워버리기 위해서란다. 프레임 없이 화면에 뒤틀린 변형이 일어나면 그 과정을 낱낱이 지켜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거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 이상을 탐구하는 ‘아름다운 직업’이라고 할까.

2월 5일까지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송은아트큐브서 여는 개인전 ‘아름다운 직업’에서 볼 수 있다. 캔버스에 오일. 100×160㎝. 작가 소장. 송은문화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