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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어느 날 인간의 먹을 것을 관장하던 신이 좀 심심해졌다. 장난기가 발동한 그는 인간에게 매일 똑같이 던지던 빵 대신 돌을 던져보기로 했다. 툭툭 돌멩이를 떨어뜨리자 어라? 빵을 던질 땐 못 봤던 반응이 보인다. 기다리던 빵 대신 돌을 맞은 이들은 두 가지로 갈렸다. 신을 원망하며 돌을 걷어차다 발까지 다치는 유형이 하나. 주워 모은 돌멩이로 집 한번 지어보자고 나서는 유형이 다른 하나. 이쯤에서 수수께끼 한 토막이 나가줄 만하다. 평소에는 안 보이다가 위기상황에는 다 드러나는 것이 무엇? 답은 성격이다.
‘날아든 돌’부터 ‘자기방어’를 거쳐 ‘성격’에까지.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매우 정교한 이 상관관계는 정신신경면역학자인 저자에게서 나왔다. 성격이란 게 종국엔 인생의 질적 가치를 좌우하는 ‘절대반지’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런데 한번 타고난 성격은 끝까지 간다고들 하지 않나. 성격은 머리로 제어할 수 없는 마음의 영역이라며. 과연 그런가. 저자는 조목조목 반론을 제기한다. 흔히 믿는 것처럼, 성격을 품은 마음이란 것조차 가슴에 있는 게 아니라 뇌에 있다는 거다. 희로애락이란 대분류 아래 뻗어나온 수많은 감정도 뇌의 신경세포에 든 ‘호르몬’의 지휘 아래 움직인다고. 그러니 성격이라 불리는 반응도 당연히 뇌가 관장하는 거고. 한마디로 이거다. “행복은 없다, 행복한 성격이 있을 뿐이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가르는 ‘성격’
크게 4가지로 ‘스트레스 성격 유형’을 구분한다. 완벽주의자 A형, 낙관적인 B형, 소심하고 착한 C형, 적대적인 D형이다. 친절하게도 유형별로 잘 생기는 질병이 다르다는 것까지 진단해냈는데. A형은 쉽게 넘어가는 것이 없어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했다. B형은 현실감이 떨어져 사회적응이 원만하지 않단다. C형은 내성적이고 방어적인 데다 분노를 잘 처리하지 못해 암 발생률을 높인다. D형은 적개심이 많고 공격적이면서 시니컬하기까지 해 관상동맥질환·심장병·우울증에 시달리기 쉽다고 했다.
그렇다면 누구든 이 4개의 유형에 반드시 들어야 하나. 앞서 언급한 ‘자기방어’에 최적화한 성격이란 게 있기는 한가. 있다! 그런 게 있단다. 스트레스 호르몬의 균형을 이루는 성격, 바로 ‘E형’이다. 저자가 꾸준히 환자를 진료하고 사람을 관찰한 결과로 규명한 제5의 성격. 이들은 스트레스에 덜 민감하게 반응한다. ‘부정적 스트레스’(distress)를 만날 때마다 빠르게 ‘긍정적 스트레스’(eustress)로 전환하는 재주도 있다. 스트레스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문제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균형이 깨질 때. 그런데 이들이 그걸 알더란 거다. 화를 내는 대신 생각을 바꾸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빠르게 균형을 되찾는다는 걸.
△성격대로 살지 말고 성격을 연습해야
저자에 따르면 성격은 타고난 것이 50%쯤 된다. 성장 과정에서 형성되는 게 10%, 나머지 40%는 상황에 따라 통제할 수 있다. 성격 개조의 시나리오가 완성되는 지점이 여기다. 그 40%의 절반이라도 E형으로 가려는 노력을 한다면 사람은 바뀔 수 있다는 거다. 몸과 마음 모두 쾌적하게 살다가 죽는, 삶의 궁극적 지향점까지.
그렇다면 어떻게 E형에 접근할 수 있나. 본질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화위복이 빠르고 상대에 대한 배려·봉사로 엔도르핀을 생성할 줄 안다고 했다. 대화·소통에 능한 것도 특징이다. 살아가면서 만들고 접촉하며 계발되는 캐릭터다. 알아챘는가. E형은 의도적으로 힘을 들이고 연습해야 갖출 수 있는 성격인 것이다.
스트레스를 대하는 자세도 관련 있다. 롤러코스터 타듯 하면 된단다. 올라가면 내려오고 내려오면 올라가듯 흐름에 맡기는 거다. 스트레스는 생기는 것보다 억제하려 드는 게 문제다. 그러니 정답도 스트레스를 줄이는 게 아니다. E형의 해결책은? 차라리 스트레스 그릇에 구멍을 내버리란다.
△장수비결? 버섯·브로콜리가 아니라 그냥 ‘성격’
성격에 대해선 참 할말이 많다. 누구에게나 과거의 총천연색 사건·사고와 뒤엉켜 있으니까. 덕분에 저자의 분석틀은 이해가 쉽다. 다만 내키지 않는 한 가지라면 규격화한 ‘유형별 분류’. A형이 됐든 E형이 됐든 유형이 뜨면 사람은 거기에 맞추려는 습성이 발동하니까. 한때 유행이던 아침형 인간, 저녁형 인간도 비슷한 형태가 아닌가.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면 되레 불안해지기도 했더랬다. 그런데 말이다. 사실 이런 분석처럼 재미있는 것도 또 없다. 상대를 평가하는 일이 쉬워지니까.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위안도 얻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인류의 질긴 열망이 아닌가. 책이 내놓은 해법은 선명하다. 암을 방지한다고, 혈압을 관리한다고 음식은 가리지만 더 중요한 걸 놓친 건 아니냐고. 이젠 성격을 바꾸란 거다, 최대한 E형에 근접하게. 장수의 비결은 버섯·브로콜리·굴이 아니라 그냥 성격인 거다.
“성격은 일생 만들어내는 삶의 결실”이란 게 저자의 주제의식이다. ‘성격 탓’에 인간성까지 매도당했던 개성 강한 인격들에게 얼마나 희망적인 발언인가. 다만 미심쩍은 건 어느 정도로 지난한 노력을 퍼부어야 A형을 E형으로 바꿀 수 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는 것. 어렵겠지.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나. 뾰족하게 이리저리 정신없이 튀어나온 모난 성격을 둥글게 다듬어내는 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