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꾼 CHM*****은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이 같은 댓글을 남기며 “만약 기생충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을 아카데미에 알리는 영화는 ‘부재의 기억’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10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영화 기생충 말고도 또 하나의 한국 작품인 ‘부재의 기억’이 후보로 참여했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부재의 기억을 본 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를 넘어 세계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봉 감독이 충격을 받은 영화는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 본상에 진출해 시상식에 다녀온 세월호 참사 유족은 한 매체를 통해 “(기생충 출연 배우 송강호는) 같이 피켓 들어주셔서 기무사 블랙리스트에 오른 분이다. (배우 이선균도) 세월호를 모티브로 한 영화 ‘악질경찰’에 출연해주셨던 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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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화가 이번 아카데미에 함께 참여한 인연이 참 공교롭다.
외신은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4관왕 쾌거를 전하며 ‘chaebol’(재벌), ‘Banjiha’(반지하) 등 상징적인 표현과 함께 ‘Blacklist’(블랙리스트)를 소개했다.
영국 가디언은 “봉 감독을 포함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가 9437명 대부분 2014년 세월호 참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정부를 비판했고 이 때문에 정부 기금에서 배제됐다”고 전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도 “블랙리스트가 이어졌다면 기생충은 오늘날 빛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봉 감독과 송강호는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대표적 인물이다. 특히 봉 감독은 ‘민노당(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특이사항 때문에 ‘강성 좌파’ 성향으로 분류됐다.
지난해 2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발간한 백서에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이른바 ‘좌파’들이 영화를 이념 및 선전·선동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봤다”라며 “이명박 정부의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은 봉 감독의 영화 ‘괴물’에 대해 ‘반미’를 부각하고 있다고 바라본다”라고 명시됐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으로 이런 ‘과거’가 소환되자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한국당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김성태(비례대표) 의원은 “그냥 축하하면 될 일이지, 왜 정치색을 강요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홍준표 전 대표의 지난 1월 “패러사이트(PARASITE, 기생충) 같은 영화는 보지 않는다”는 발언에 사과를 요구하는 누리꾼이 등장하는가 하면, 김재원 정책위원장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에서 범여권 ‘4+1 협의체’를 비판하면서 “민주당과 그에 기생하는 군소정당은 정치를 봉 감독한테 배웠는지는 몰라도 ‘정치판의 기생충’임이 틀림없다”고 비꼰 발언이 새삼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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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이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도 유일하게 논평을 내지 않았던 한국당은 이번 아카데미 수상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한국당 대구 지역 총선 예비후보자들은 봉 감독이 대구 출신이라는 점을 내세워 ‘대구의 아들’이라며 설익은 공약을 쏟아냈다. ‘대구에 영화 박물관을 설립하겠다’, ‘봉준호 감독 기념관을 짓겠다’, 심지어 ‘봉 감독 생가터를 복원하겠다’는 공약까지 등장했다.
또 강효상 의원은 봉 감독과 동시대에, 이웃 동네에서 학교를 같이 다녔다고 강조하는 등 ‘기생충’ 쾌거를 이용하기 바빴다.
이에 정치적인 이유로 전 정권에서 배제한 문화계 인사를 이제는 총선에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며 ‘숟가락을 얹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영화가 제기한 빈부격차와 양극화라는 화두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한 ‘응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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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감독이 오스카 캠페인을 거치면서 무려 500차례 이상 외신 인터뷰와 100여 회 이상의 관객과 대화를 진행하는 동안, 영화가 사회적인 주제를 다룬 만큼 정치 관련 질문이 주를 이뤘다.
그 가운데 뉴욕영화제에선 사회자가 봉 감독을 향해 “한국 선거에 나가나? 나가도 좋을 것 같은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봉 감독은 무대 위에 함께 있던 배우들을 가리키며 “저와 여기에 있는 모든 배우는 예술에만 미친 사람들로, 정치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 심포지엄에선 영화의 정치·사회적인 요소 관련 질문을 받고 “영화가 상영되는 2시간 동안 관객을 제압하고 싶다”며 “그러려면 인간에 대한 이해나 접근이 있어야 하고, 한 명 한 명 파고 들어가다 보면 또 어쩔 수 없이 그 인간이 속한 사회나 시대가 나온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대나 정치로 확장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일단 관객들이 웃고 떠들고 무서워하면서 영화를 재밌게 보길 바란다. 그리고 집에 가서 씻으려고 옷을 벗다 보면 몸에 베인 상처가 있는 거다. 관객이 ‘내가 언제 베였지?’라는 느낌을 받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봉 감독은 또 기생충에 대해 “악인이 없으면서 비극이고, 광대가 없는데도 희극”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송강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기막힌 표현”이라며 “딱 맞지 않나. 우리 삶의 모습을 반추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누리꾼은 “봉 감독만큼의 고심도 없이 다 된 아카데미 상에 다급히 숟가락을 올린 정치인들을 보면 ‘악인이 없으면서도 비극이고, 광대가 없는데도 희극’인 ‘기생충’이 아직 끝나지 않은 듯 하다”는 댓글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