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rd WWEF]"거미줄, 감당이 안 된다면 끊어내라"

철학자 강신주, 여성의 관계를 해부하다
이끌 건가, 끌려갈 건가..주인으로 사유하고 행동해야
  • 등록 2014-09-26 오전 6:00:00

    수정 2014-09-26 오전 9:26:07

[이데일리 최은영 기자]“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면 관계를 끊는 연습부터 하라” 시작부터 날카롭게 메스를 들이댄다. 여성의 관계에 딴죽을 걸고 나온 이는 철학자 강신주다. 올해로 세번째 열리는 ‘세계여성경제포럼 2014’ 연사로 나서는 강신주는 ‘싱글보다 더블, 더블보다 트리플’이라는 주제로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인간관계에 대해 그 해법을 모색한다.

관계 맺음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

불안과 불신의 시대. 모두가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관계에서 시작해 공감으로 이어지는 ‘소통’이라는 단어는 21세기 성공과 행복의 핵심 키워드로 강조돼왔다. 강신주는 소통의 시작인 관계 맺음과 관련 “하나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이 낫다 식의 원론적인 이야기는 집어치우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중요한 것은 관계를 맺는 행위 자체가 아닌 관계를 맺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흔히 여자들은 사적인 생활에서는 강한데 공적인 생활에서는 약하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잖아요. 그건 우리 사회가 여성의 지위를 흔들어서 그런 거예요. 약자니까 당당할 수가 없는 거죠. 한 사람과의 관계, 일대일 관계도 감당이 안 되는데 더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어라? 쓸데없는 소리죠. 거미줄 하나에 걸려 있는 것도 버거운데 네 줄, 다섯 줄을 어떻게 감당하라는 거예요. 관계를 맺기에 앞서 끊을 힘부터 키워야 합니다. 그런 다음 자신 있는 관계를 다시 맺으면 돼요. 언제라도 끊어낼 수 있는 관계, 내가 주체가 된 관계를 말이지요.”

화려한 수사 혹은 타성에 젖은 표어들로 비겁하게 문제를 회피하려 들지 말고 현실을 직시해 암 덩이를 잘라내자는 주장이다. 이는 자신의 삶에 노예가 되지 말고 주인이 되라는 주문이기도 했다.

여성이여, 강해져라. 그리고 먼저 움직여라

강신주의 철학은 일관된다. 소통, 관계에 관한 물음에도 ‘사랑’과 ‘자유’로 일갈했다. 언뜻 보면 상충하는 개념인 듯 보이지만 강신주는 ‘사랑과 자유는 하나다’라고 외친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혼자서 제대로 서지 못하는 사람이 더불어 걷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 되묻는다.

강신주는 여성들에게 강해져라, 능동적이 되라고 주문했다.

“관계는 끊을 수도, 끊지 않을 수도 있어요. 끊지 않고 관계에 개입할 수도 있고요. 어떤 식으로든 자발적으로 관계에 참여했을 때 관계는 좋아집니다. ‘내가 선택한 관계이니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지, 최선을 다해야지’가 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태도가 바뀌면 관계는 좋아져요. 중요한 것은 관계를 끊을 수 없는 소심함, 나약함을 극복하는 겁니다.”

관계, 왜 중요한가..‘나를 비추는 거울’

강신주는 철학을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낯섦과 차이를 제공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이쯤 되면 묻고 싶은 게 피어난다. 관계는 무엇인가, 관계는 왜 중요한가라는 근본적인 물음. 그는 “관계는 우리의 품위를 증진해준다. 그래서 굉장히 소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 나를 아끼고 나의 관계에 들어와 내 삶을 긍정적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상대를 품위 있게 대해줘요. 라면을 하나 끓일 때에도 혼자 먹을 때와 친구가 놀러 와 함께 먹을 때가 다르잖아요. 거울도 한 번 더 보게 되고요. 관계는 내가 누구인지를 비롯해 자기 삶에서 자기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합일화해줍니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 같은 존재죠. 그래서 매력적인 거예요.”

좋은 관계에 대한 해답 역시 같았다. 나의 품위를 유지시켜주고, 나 역시 상대를 품위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서로의 품위가 붕괴했을 때 관계는 끊어진다.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었는데 내 품위가 쓰레기가 됐을 때,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똥값이 됐다고 느껴질 때 사람들은 관계에 환멸을 느낀다. 그럴 때는 과감히 관계를 끊어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소통의 해법, 내 안에서 찾아야

강신주는 소통의 열쇠를 외부에서 찾으면 힘들다고 했다. 내 안에 소통을 가로막는 장벽이 있고 그걸 찾는 게 열쇠라고 했다. 그 첫걸음은 자신이 당당하게 바로 서는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는 교육을 이상하게 한다. 어떤 남자를 만나라. 어떤 회사를 들어가라 식의 충고는 많이 하면서 잘 헤어지는 법, 제대로 마무리하는 법은 알려주지 않는다”라고 꼬집었다. 왜 헤어지라고 하느냐고 되물었다. 돌아온 말은 “모든 인간은 소중하니까”였다.

“나쁜 관계를 끊지 못하면 내가 망가지는 데요. 회자정리라는 말이 있지요.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관계 맺음은 한 개인의 자유와 독립성이 보장됐을 때에만 가치가 있어요. 그러니까 역설적인 겁니다. 관계가 좋아지려면 관계를 끊을 수도 있어야 해요. 관계를 끊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거거든요. 관계를 잘 끊는 연습을 해야 자기가 원하는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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