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7일, 김범석 쿠팡 대표이사는 서울 소공동에 위치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향후 사업전략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쿠팡의 위기는 아마존을 비롯한 경쟁업체가 아닌 소비자로부터 비롯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2년 뒤 김 대표의 말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지금의 쿠팡을 있게 한 자체 배송인력 ‘쿠팡맨’과의 잡음에 이어 온라인 판매가 금지된 의약품 판매를 방치한 사실이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쿠팡이 ‘로켓배송·직구’ 등 판매망 관리에 애를 먹는 이유가 무리한 확장 정책에서 기인한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엄선한다던 ‘로켓직구’…‘불법 약품’ 앞에선 모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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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은 23일 관련 보도가 나가자 쿠팡은 플랫폼 제공자로서 불법을 저지른 책임은 판매자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또 오픈마켓의 특성상 수많은 물품이 자유롭게 등록·매매되기에 전 품목을 실시간으로 감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반박했다.
오픈마켓 한 관계자는 “소비자 건강과 직결되는 약품은 해외직구 부문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물품이라 실시간 관리에 나서고 있다”며 “선두 이커머스 업체들이 겪었던 부작용인데 쿠팡이 해결책 마련 대신 기존 업체들의 ‘변명’만 답습한 듯하다”고 지적했다.
흔들리는 ‘로켓 배송’…‘돈’ 풀었지만 정규직전환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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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쿠팡이 임금제도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직원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창원 지역에서 근무 중인 쿠팡맨 3명이 지난 11일 고용노동부 창원지청에 김범석 대표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결국 쿠팡은 SR 차등 지급 기준을 5일 이상 배송에 무사고이면 40만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다시 바꿨다. 임금제도 변경 한 달 만에 백기를 든 셈이다.
쿠팡맨 평가등급도 기존 6등급에서 3등급으로 줄였다. 주6일 근무 기준으로 1등급(20%) 연봉은 4500만원, 2등급(70%)은 최소 4300만원, 3등급(10%)은 4300만원 또는 4000만원으로 책정했다. 주5일 근무자는 3300만원 이상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쿠팡 측 설명이다.
추격자 된 쿠팡, ‘덩치’ 커질수록 속도조절 해야
좋은 취지로 시작한 로켓직구, 로켓배송이 연달아 악재에 휘말린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쿠팡이 성과를 내기위해 ‘과속’을 한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쿠팡이 기존 이커머스 선두업체인 G마켓과 옥션 등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확장과 속도경쟁에 혈안이 된 나머지, 정작 중요한 소비자·직원과의 소통은 챙기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언더독’으로 꼽히는 위메프와 티몬이 매섭게 쿠팡을 추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쿠팡을 둘러싼 잡음이 자칫 브랜드 신뢰도 저하까지 이어질 경우 과거 일본 소프트뱅크같은 ‘큰 손’들의 투자를 유치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보원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와 별개로 당장 발생한 논란을 애써 외면한다면 기회주의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며 “결국 기업을 키우는 것은 ‘사람’이다. 법이나 제도, 투자자보다 무서워해야 할 대상은 기업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는 똑똑한 소비자와 직원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