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 함정’에 빠진 한국은행

통화승수 15배…20여년 만에 최저 수준 하락했지만
통화정책 파급효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듯해
10년전 5만원권 발행되며 통화승수 공식 꼬였기 때문
  • 등록 2019-11-05 오전 12:00:00

    수정 2019-11-05 오후 3:28:28

5만원권 사용량 급증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정현 기자] “통화승수를 확인하지 않은지는 오래 됐습니다. 금리의 파급효과를 보여주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죠.”(A 금통위원)

한국은행이 ‘신사임당의 함정’에 빠졌다. 기준금리 조정 등 통화정책 효과를 측정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지표였던 ‘통화승수’가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한 것이다. 지난 2009년 처음 선보인 5만원권 사용량이 급증한 여파다.

통화승수 20여년來 최저…금리약발 떨어졌다?

4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8월 통화승수(평잔 기준)는 15.6배 수준으로 전월(16.0배) 대비 하락했다. 20여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통화승수는 지난 2000년대만 해도 25배 수준을 중심으로 등락했다. 2009년 중반까지만 해도 비슷했다. 그러나 그 이후 통화승수는 꾸준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15배 수준의 통화승수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통화승수는 한은이 현금을 발행하거나 시중은행에 자금을 풀었을 때, 실제 국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자금으로 확대되는 배율이다. 한은이 본원통화를 풀면 이 통화는 국민 중 누군가가 예금하고 대출해가는 과정을 통해 회전율을 높임으로서 실제 금융시장에 끼치는 영향력을 많게는 수십배씩 늘린다. 이 때 그 효과를 추산한 지표가 정기 예적금, 머니마켓펀드(MMF) 등을 포함한 광의통화(M2)다,

본원통화란 한국은행이 발행해 시중에 공급하는 각종 화폐와 시중은행이 고객이 인출을 요구할 때를 대비해 한국은행에 맡겨둔 지급준비금의 합이다.

통화승수는 본원통화가 금융시장을 돌아다니면서 부풀려진 배율을 말한다. 가령 통화승수가 15배라는 것은 한은이 1원을 발행했을 때 시중자금은 15원이 된다는 얘기다. 광의통화를 본원통화로 나눈 것이 통화승수다.

이 때문에 통화승수는 한은의 통화정책의 효과를 파악할 때 중요한 지표로 활용돼왔다. 한은이 똑같이 돈을 풀더라도, 금리가 낮다면 가계와 기업이 대출을 늘리고 결과적으로 광의통화가 확대된다. 이 경우 통화승수는 상승한다. 통화승수가 상승한다는 것은 그만큼 한은의 금리인하 효과가 실제 경제로 파급되고 있다는 뜻이다.

시중 곳곳 쌓인 현금…통화승수 무용론 나와

그런데 최근에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기준금리는 연 1.25%다. 사상 최저 수준이다. 그런데 통화승수가 상승하기는커녕 20여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한 것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지난 2009년 5만원권 발행이라는 분석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통화승수 공식(광의통화/본원통화) 중 분모에 해당하는 본원통화가 5만원권 발행으로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원통화는 대부분 현금과 지준금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2009년 5만원권 발행을 기점으로 시중의 현금이 급증하고 있다. 5만원권이 발행되기 직전인 2007년과 2008년에는 시중의 현금통화 증가율(전년동월 대비)이 각각 월평균 3.4%, 5.2% 정도였다. 그런데 2009년 13.3%으로 껑충 뛰더니 2010년에는 25.1%까지 올라섰다. 그 뒤에도 꾸준히 10~20%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폭발적으로 시중에 현금이 쌓이면서, 지난 10년간 현금은 5배가량 급증했다. 같은 기간 본원통화의 또 다른 한 축인 지준금은 2배 정도 증가하는 데 그쳤다. 결국 현금의 급증으로 본원통화 자체가 크게 증가하는 결과가 생겼다.

통화승수의 분모인 본원통화가 크게 증가하면서 통화승수는 하락할 수밖에 없게 됐다. 본원통화가 급증하는 동안 통화승수의 분자인 광의통화는 평균 6~8% 정도 증가세를 지속했다. 광의통화가 소폭 등락하는 동안 본원통화가 대폭 증가하면서 통화승수가 하락했다는 분석이다.

결국 5만원권 변수로 인해 통화승수 자체를 참고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결론이 나온다. 문제는 통화승수를 대체할 다른 지표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기조적 저물가 여파에 ‘통화유통속도’도 힘을 잃었고, 금융상황지수도 통화정책 파급 경로를 제대로 추적하지 못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상 최저 기준금리 영향을 분석해야 할 한은이 애를 먹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 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통화승수와 통화유통속도 등 기존의 통화정책 파급경로를 알려준다는 지표가 무용해진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통화정책 파급효과를 파악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자료=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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