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공연] 이야기 담은 한국춤…무용극의 새 도전

- 심사위원 리뷰
무용극 '그대, 논개여'
스타무용수들 섬세한 내면연기
탄탄한 연출력·역동적 군무 일품
  • 등록 2013-06-17 오전 7:11:00

    수정 2013-06-17 오전 7:11:00

지난 13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국립무용단의 ‘그대, 논개여’가 공연됐다. 왜장 역을 맡은 무용수 이정윤(왼쪽)과 논개 역의 장윤나는 운명적 사랑을 표현하는 한층 성숙된 몸짓을 선보였다(사진=국립무용단).


[성기숙 심사위원] 무겁고 비장미가 넘쳤다. 애잔하면서도 비통하다. 비극적 서사가 관통하는 가운데 스펙터클한 장면이 묘한 전율을 안겨준다. 국립무용단의 무용극 ‘그대, 논개여’가 올해 국립레퍼토리시즌 마지막 공연으로 무대에 올랐다. 지난 2000년 20분짜리 소품으로 시작한 작품이다. 특히 지난해에 안무가 윤성주가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후 70여분에 달하는 대작 무용극으로 완성해 주목을 끈 바 있다.

‘그대, 논개여’는 역사적 팩트에 대한 재해석으로 관심을 모았다. 작품은 역사 속 의기(義妓) 논개와 그녀가 끌어안고 투신한 왜장이 적대적인 관계가 아닌, 서로 사랑했을지도 모른다는 허구적 상상에서 출발한다. 증오와 적개심에서 만난 적국의 두 남녀가 서로 사랑을 나눈다는 설정은 신선하다. 논개와 왜장의 복잡다단한 심리와 내적 갈등을 묘사하기 위해 분신을 등장시킨다는 점도 흥미롭다. 두 인물의 4각 구도를 통해 비극적 서사는 보다 긴장감 있게 그려진다.

‘그대, 논개여’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브리지 역할은 시인의 몫으로 설정돼 있다. 시적 상상력으로 초혼(招魂)한 논개의 숨겨진 이야기는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막이 오르자 무대를 배회하는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논개의 사당을 방문한 시인은 멀리서 들려오는 제의식음악에 이끌려 논개의 혼백을 달래는 시를 쓰고 과거의 흔적을 반추한다. 조선 여인들의 혼백이 무대를 떠돌고 논개의 환영과 시인이 마주한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려는 논개의 불타는 애국심, 그녀에 대한 사랑과 조국에 대한 충성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왜장의 이야기가 장중하게 펼쳐진다. 아우성치는 혼백들 사이로 홀연히 나타난 논개는 도도하면서도 비장미 서린 몸짓으로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논개와 왜장은 서로의 매력에 빠져든다. 적국의 남녀가 펼치는 운명적 사랑은 함께 강물에 투신하는 비극적 결말로 마무리된다.

역시 장윤나다. 논개를 연기한 스타무용수 장윤나의 눈부신 성장을 재확인한다. 애잔하면서도 처절한 슬픔을 긴 호흡으로 끌고 가는 솜씨가 놀랍다. 테크니컬한 몸짓, 성숙된 내면연기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왜장 이정윤도 국립무용단 간판스타답다. 강인한 무사적 카리스마와 여인을 향한 연민이 교차하는 내적 갈등을 설득력있게 묘사했다. 논개와 왜장의 분신으로 등장한 장현수·조용진 또한 캐릭터의 이미지를 잘 살렸다. 시인 역으로 발탁된 신예 황용천은 자유로운 영혼을 탐하는 시인의 감성을 무난하게 소화해 눈도장을 찍었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무대미학도 눈여겨볼 점이다. 논개의 죽음 이후 초혼 과정과 제의식에 방점을 둬 스토리라인을 강화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초반에 배치됐던 제의식 장면이 후반부로 옮겨지고 여제의 동선이 확장됐다. 특히 역동적이고 스펙터클한 군무는 압권이었다. 일본 사무라이를 연기한 남성무용수들의 원시적이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몸짓은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강물을 떠도는 혼백의 울부짖음과 논개의 승천과정은 입체감 있는 무대장치로 보완돼 시각적 효과를 배가했다. 손질된 음악도 반갑다. 자극적인 효과음을 대폭 줄이고 국악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편곡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재료는 훌륭한데 재료를 활용한 상차림이 다소 빈약한 느낌이다. 특히 작품에 사용된 춤어휘가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반면 무대구성은 다소 산만했다. 군더더기를 없애고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 논개여’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선 무용극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라는 점이다. 국립무용단 초대 단장 송범에 의해 무용극의 토대가 마련됐다. 바통을 이어받은 국수호는 신무용과 한국창작춤이 혼재된 이른바 춤극을 통해 국립무용단의 예술적 아이덴티티를 구현했다. ‘그대, 논개여’는 무용극 형식과 이미지무용의 절충형으로 꾸며졌다. 모던한 스타일로 기존의 무용극과 차별화를 시도했다고나 할까. 무용극의 미학적 지평 확산과 한국 창작춤의 레퍼토리화 가능성을 탐색했다는 점에서 ‘그대, 논개여’는 충분히 재음미의 가치가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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