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해상왕 장보고 중국 유적지 답사’를 위해 중국 산둥(山東)반도의 동쪽 끝 룽청(榮成)시 스다오(石島)진에 위치한 츠산법화원(赤山法華院)을 방문했을 때 만난 중국 현지인 가이드의 말이다.
고구려·발해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이른바 ‘동북공정’이 장보고(?~841년)라는 역사적 인물에게까지 뻗치고 있다는 생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중국 정부 차원이 아닌 민간인 사이에서도 광범위하게 장보고가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한·중 학계의 또 다른 논란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관광특구에는 법화원과 장보고 기념관(전기관), 츠산명신상, 민속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장보고의 활약상을 기리기 위해 2007년 4월 문을 연 기념관도 3000만 위안(약 52억원)을 들여 1만3000㎡의 터에 건평 3020㎡ 규모로 지어졌다.
우리 손으로는 고작 장보고기념탑 하나 세운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기념관의 5개 전시실에는 장보고의 출생과 입당(入唐·1전시실)과 무령군에서의 활약상(2전시실), 법화원 건립과 츠산에서의 활약(3전시실), 신라 귀국과 최후(4전시실), 장보고에 대한 재평가와 한·중 교류(5전시실) 등의 내용이 150여 점의 관련 자료, 유물 등과 함께 전시돼 있다.
삼국사기 등 사서에 장보고가 ‘신라인’이라고 적혀 있는 만큼 중국의 역사인식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위안삼기 보다는 ‘우리 장보고’를 지킬 수 있는 대응책을 모색해야 할 때다. “역사가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희미하게’ 해석해 나중에 우리 것(중국 것)으로도 만들 수 있지요”라고 말한 현지 가이드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