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 한국사회의 부끄러운 민낯 '노인 자살률'

  • 등록 2016-10-25 오전 5:00:00

    수정 2016-10-25 오전 5:00:00

[신승철 블레스병원장·정신건강전문의] 자살 통계가 제대로 잡히기 시작한 1960년대 이래 우리나라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5명 이상으로 줄곧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우리나라의 평균 자살률 상승에는 노인 자살률이 매우 높다는 점이 주된 배경이다. 즉 노인 자살률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1980년대 무렵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은 노인 인구 10만 명 대비 150명까지 육박해 매우 절망적 수준이었다. 지금도 지역적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대략 100여명 수준에 이른다. 이는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닐 수 없다.

노인 자살 배경으로는 흔히 빈곤, 신체질병, 소외를 꼽는다. 이런 배경 때문에 노인들을 위한 복지 정책에 열을 올리는 정치적 구호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사실 빈곤, 질병, 소외로 대별되는 사회경제적 원인은 노인 삶의 질에 큰 영향을 준다. 이에 따라 노인 자살 문제는 매년 언론을 통해 우리 사회 주요 보건문제이며 고질적 사회병리임을 환기시켜줬다.

물론 그동안 정책적 배려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역마다 자살예방센터가 들어서고 보건소, 관련 학회는 물론 심지어 약국에서도 자살 예방 상담을 실시했다. 학교나 공공기관에서는 자살 예방 관련 교육도 꾸준히 시행중이다. 특히 날로 늘어나는 독거노인 자살이 심상치가 않아 구청에서는 개별방문을 통한 모니터링 시스템까지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우리 노인들의 자살률에는 뚜렷한 변화가 없다.

자살예방 교육 같은 프로그램을 늘리거나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 혜택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런 여건만 개선해서는 노인자살률에 큰 변화가 오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보다 복지제도가 훨씬 빈약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인도나 미얀마, 부탄 같은 나라들은 노인 자살률이 우리보다 훨씬 낮다. 이런 측면을 고려하면 지역사회에서 노인 소외가 자살에 오히려 더 중요한 요인이 아닌가 여겨지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노인들 가운데 세 명중 한 명은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노인 우울증의 원인은 젊은 층과 특성이 다르다. 노인들은 대부분 오랜 지병과 함께 외로움 속에서 심리적으로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노인들의 어려운 상황은 단지 물질적인 데만 있지는 않다. 대다수 노인들은 가족 기능의 해체로 자식들과 뿔뿔이 헤어져 살아야 하는 입장이고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도 자립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자녀들 또한 살기에 바빠 고령의 부모에 대한 효심을 갖고 있는 경우가 흔치않다. 하지만 우울증에 빠진 노인들은 그 어려움을 말로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고 그 병리나 심리를 스스로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에 따라 요즘엔 지역 정신건강 상담자가 노인 심리 상태를 점검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최근 노인 복지관에서 5개월 정도 자살 충동을 가진 노인들을 대상으로 매번 특정 주제를 갖고 집단 상담을 한 적이 있다. 주제는 가령 죽음, 자녀와 관계, 유서를 쓴다면, 왜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나머지 인생을 어떻게 보낼까, 사후세계에 대해서 등이다. 물론 일부 노인들에게는 항우울제를 처방해줬다. 6주간 집단상담을 한 결과 노인들에게서 매우 양호한 반응을 얻었다.

노인들이 자살 위험에서 벗어나는 길은 결국 대화나 관계를 통해 자아(自我)를 새롭게 하고 자존감을 끝까지 잃지 않고 자녀와의 관계를 새롭게 다지는 것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실 경제상태는 최소 여력만으로도 견딜만한 일이었다. 상대적 빈곤보다 건강(특히 통증문제), 활동 공간(교류, 나눔, 취미 등)의 문제가 오히려 삶의 질 향상에 중요했다. 장기적으로 지역사회에서 노인 문화 개선을 위한 노력을 펼쳐 노인 자살 예방에 도움을 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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