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버지의 전쟁' 스태프들은 임금체불과 전쟁 중

영화 제작 중단 탓 체불 임금만 2억 넘어
제작사, 투자사 책임 떠넘기기에 스태프만 골탕
임금체불 경험 영화 스태프 4명 중 1명 꼴
  • 등록 2017-07-23 오전 8:00:00

    수정 2017-07-23 오전 9:54:19

‘아버지의 전쟁 스태프 및 배우 임금체불 문제해결을 위한 연대모임’이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작사 무비엔진, 투자사 우성엔터테인먼트는 조속히 영화 예산에서 임금을 지급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김성훈 기자)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좋은 영화인 거 같은데 같이 일해 볼 생각 없어?”

영화계에서 미술팀 아트디렉터 일을 하는 강모(38)씨는 지난해 10월 지인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지인은 강씨에게 1998년 판문점에서 벌어진 고(故) 김훈 중위의 의문사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제작에 참여할 뜻이 없는지를 물었다.

2011년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흥행에도 성공한 영화 ‘도가니’를 만든 제작자에 주연은 배우 한석규씨가 맡는다고 했다. 솔깃했다. 영화계 일만으로는 벌이가 신통찮은 탓에 드라마일을 하던 때여서 다시 영화판으로 돌아갈 좋은 기회다 싶었다. 모처럼 영화 현장으로 돌아가 일할 생각에 강씨는 설렌 마음으로 잠까지 설쳤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스태프들

그러나 제작사 측 얘기를 들으니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총 제작비 20억원대의 저예산 영화인 탓에 평소 받던 임금의 60%정도 밖에 줄 수 없다고 했다. 4대 보험 가입·주 5일 촬영과 1일 휴식 보장 등의 내용을 담은 ‘표준 계약서’조차 없었다. 고민이 됐지만 ‘영화가 좋아 시작한 일인데 돈 좀 적게 받는 게 대수랴’ 싶어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사전 준비를 끝내고 올해 2월 촬영이 시작됐다. 비록 저예산 영화지만 멋지게 해내고 싶었다. 세트를 제작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예산 절감을 위해 20년 전 느낌을 낼 만한 장소를 찾아 전국을 누볐다. 3개월 안에 촬영을 마쳐야 하는 빡빡한 일정 탓에 하루 20시간 넘게 강행군을 이어가는 날도 많았다.

‘크랭크 업’(영화 촬영이 끝나는 날)을 한 달 여 앞둔 지난 4월 13일, 부산에서 막바지 촬영을 하던 도중 갑작스레 제작사 쪽에서 ‘촬영을 접고 올라오라’는 연락이 왔다.

하루만 더 찍으면 목표 분량을 다 채울 수 있을 것 같아 버텼지만 제작사 측은 막무가내였다. 스태프들은 어쩔 수 없이 서울로 올라왔지만 이후에는 “일단 기다리라”는 말 뿐이었다. 강씨를 비롯한 스태프들은 그동안 사전 작업에 매달렸다.

그렇게 보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제작사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스태프들 사이에서 ‘촬영 내용이 마음에 안 든다더라’ ‘이러다 영화 엎어지는 거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흐른 5월 10일, 제작사 측은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고 김 중위 유족들의 반대로 더 이상 촬영을 이어갈 수 없다고 했다. 촬영 도중에 제작이 중단되는 경우가 아주 없진 않았지만 이유가 황당할 따름이었다.

진짜 문제는 촬영 중단 통보 열흘 뒤 불거졌다. 촬영 중단 사태와는 별개로 임금은 100% 지급하겠다던 제작사는 돌연 입장을 바꿔 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촬영 시작 전 임금의 절반 정도를 받고 촬영을 마친 뒤 잔금을 받는 게 관행이어서 일부 스태프들의 경우 못 받은 돈이 3000만~7000만원이나 됐다. 이들 스태프와 조·단역 배우60여명이 받지 못한 임금은 2억 3000여만원이다.

영화 스태프 4명 중 1명은 임금체불 경험

제작사와 투자사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제작사 무비엔진 측은 “투자사가 일방적으로 제작 중단을 선언한 데 이어 제작비를 주지 않아 임금을 줄 수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투자사인 우성엔터테인먼트는 “제작사가 김 중위 유족들의 동의를 받지 못한 데다 영화 시작 전 합의했던 촬영 회차를 위반했다”고 책임을 돌렸다.

우성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제작사와 감독과 필요 없는 신을 삭제하고 예산을 줄이기로 합의했지만 촬영 시작 전에 제작사가 합의한 회차를 초과된 회차로 전달하는 등 계약 사항을 위반했다”며 “제작 중단 시점까지 순제작비 약 30억원 중 23억원 가량을 모두 지급했고 오히려 제작사로부터 정산받지 못한 돈이 1600만원 남아있다”고 말했다.

제작사와 투자사 간 ‘고래싸움’에 피해는 고스란히 스태프와 보조 출연자들 몫이다.

참다못한 스태프와 보조 출연자들은 지난 18일 제작사와 투자사를 상대로 서울 중앙지방법원에 임금체불 소송을 냈다.

손아람 문화문제대응모임 공동대표는 “영화 흥행이 성공하면 결실은 제작사와 투자사가 다 가져가고 제작 중단의 피해는 고스란히 스태프들에게 돌아가는 게 한국 영화계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변론을 맡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김종휘 변호사는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노동 조건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이번 소송을 통해 스태프들의 권리 구제뿐만 아니라 영화 스태프들의 열악한 지위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 마련에도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 스태프의 평균 월급은 160만원 남짓이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임금 체불을 경험한 영화 스태프는 4명 가운데 1명꼴인 23%, 영화계에 표준 근로 계약서가 도입됐지만 의무 사항이 아니다 보니 관리 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강씨는 “영화에 대한 열정 하나로 영화계에 뛰어든 후배들이 더 이상 이런 일을 당해서는 안 될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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