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은 정권의 적?…트럼프는 왜 뿔이 났나

금리 인상이 불편한 韓·美
美 성장·고용 찬물 끼얹을까 우려
파월 연준 의장 정책 대놓고 비판
美 국채 10년금리 3개월 만에 최저
靑 "우리나라에 맞는 정책 써야"
美 인상에 이끌려 갈 필요 없단 뜻
국고채 3년금리 10개월 만에 최저
  • 등록 2018-08-22 오전 5:00:00

    수정 2018-08-22 오전 5:00: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로이터통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뉴욕=이준기 특파원] “내가 저지른 최악의 실수는 저 키 큰 멍청이를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에 앉힌 겁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소탈하고 인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원래 이름 대신 ‘지미(Jimmy)’라는 애칭으로 불린 점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이 소탈한 대통령을 화나게 한 ‘키 큰 멍청이’는 과연 누구였을까. 폴 볼커 전 연준 의장. 그는 지난 1979년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불황과 물가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현상)에 빠진 미국 경제를 떠안았다. 오일쇼크발(發) 고물가에 경기 침체까지 겹친 때였다. 금리를 올리려니 경기가 우려되고 금리를 내리려니 물가가 걱정인 상황을 두고, 볼커 전 의장은 머리가 아프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한 곳만 봤다. 10%가 넘던 물가 상승률을 잡기 위해 금리를 20% 넘게 인상한 것이다. 살인적인 고(高)금리는 카터 전 대통령의 재선 실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지금도 회자된다. 볼커 전 의장은 당시 ‘공공의 적’으로 불렸다. 카터 전 대통령은 그가 얼마나 미웠겠는가.

40년 전 카터 떠오르게 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의장의 금리정책을 ‘대놓고’ 비판한 건 40년 전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나는 (연준의) 금리 인상에 흥분되지 않는다”며 “달갑지 않다”고 말했다. 연준의 수장인 제롬 파월 의장에 대해서도 “그에게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연준은 지난해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이 가운데 두 차례는 현 파월 의장 체제에서 이뤄졌다. 파월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다. 연준은 올해 하반기 두 차례의 추가 인상까지 사실상 예고한 상태다. 미국 대통령이 정치적 독립기관인 연준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너무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놨다. 연준의 긴축이 미국의 성장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지난 17일(현지시간) 뉴욕 롱아일랜드에 열린 한 행사에서도 “경제가 좋아진다는 평가가 나오는데 연준이 인상으로 (경제를) 괴롭히고 있다”는 불평을 했다고 미국 언론들이 이날 보도했다.

카터 전 대통령과 이유는 별반 다르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참모들은 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가 미국의 성장과 고용을 둔화시키고, 궁극적으로 재선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우려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곧장 시장을 뒤흔들었다.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뉴욕채권시장에서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전거래일 대비 4.51bp(1bp=0.01%포인트) 하락한 2.8163%에 거래를 마쳤다. 5월29일 2.7765%를 기록한 이후 거의 3개월 만의 최저치다. 연준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금리도 3.32bp 내린 2.5831%에 마감했다. 지난달 10일(2.5694%) 이후 가장 낮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靑 금리 발언도 채권시장 뒤흔들어

우리나라도 이날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오면 아무래도 여파들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우리나라는 또다른 나라의 환경하고는 다른 측면이 있을테니, 그에 따라 우리나라에 맞는 정책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의 여건이 좋지 않은 만큼 한국은행이 연준의 금리 인상에 이끌려 갈 필요는 없다는 뜻으로 읽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과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뉘앙스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국회 전체회의에서 일자리 부진과 관련해 “빠른 시일 내 회복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일견 원론적인 발언으로도 비쳐졌지만, 청와대와 정부가 금리 인상에 ‘불편한 심경’을 표했다는 해석이 동시에 나왔다.

서울채권시장은 당장 격하게 반응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거래일 대비 6.6bp 급락한 1.919%에 마감했다. 지난해 10월13일(1.916%) 이후 10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채권시장 한 인사는 “통화정책은 결국 어두워진 경기 상황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며 “이런 분위기라면 올해 금리 인상이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학계에서는 금리를 독립적으로 결정하는 원칙을 흔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한 사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정책도 경기 상황에 맞게 유연해야 하는 건 맞다”면서도 “금리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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