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곰삭은 시간이 그대로…타임머신 타고 골목속으로

살아있는 대구근대골목을 걷다
  • 등록 2018-10-26 오전 12:00:01

    수정 2018-10-26 오전 12:00:01

대구달성마을의 골목정원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골목은 살아있다. 저마다 모습으로 들쭉날쭉 자리한 집들 사이로 좁고 낮은 골목길이 굽이쳐 흐른다. 곧게 뻗은 길이 없고, 똑같은 모양의 길도 없다. 골목길은 단순히 사람들이 스쳐가는 길이 아니다. 사람들이 만나고 소식을 나눈다. 그렇게 골목에는 시간이 새겨진다.

대구의 옛 도심은 한국의 근대 역사를 압축한다. 한때는 낙후된 지역으로 ‘찍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지금은 사람의 온기가 모이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곰삭은 시간이 그대로 남아있는 골목길을 찾아 대구로 향한다.

관덕정순교기념관 외관


◇대구 천주교 성지순례 ‘남산동 카톨릭타운’

중구 반월당사거리. 반월당역 19번 출구에서 50여 미터 거리에 관덕정순교기념관이 있다. 관덕정은 조선시대 무과 과거의 하나인 도시(都試)를 행하던 도시청이었고, 관덕정 앞으로는 과거를 보던 일종의 연병장이었다. 연병장 근처에 중죄인을 공개 처형하던 처형장이 있었다. 이곳에서 천주교인 25명이 처형됐다. 을해박해(1815년), 정해박해(1827년), 기해박해(1839년), 병인박해(1866)년에 벌어진 일이다.

이 기념관은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을 기념해 건립했다. 처형터 땅을 확보해 순교기념관을 세웠고, 1991년 5월 개관했다. 기념관은 총 지상 1층과 지상 3층으로 만들었다. 지하 1층 성인유해실에는 이윤일 등 18명이 성인과 18명의 복자들의 유해가 모셨다. 또 성당, 제1전시실로 꾸몄다. 1층 제2전시실에는 성인 이윤일의 영정과 한국순교성인 103위의 영정, 흥선대원군 척화비가 있고, 2층 제3전시실에는 한티·신나무골 등의 교우촌과 순교자 관련 유물 등이 있다. 3층 제4전시실에는 초대교구장인 안세화 주교와 교구 초창기 관련 유물 등을 전시했다.

성유스티노신학교 외관
여기서 10여 분 떨어진 곳에 성유스티노신학교가 있다. 이곳을 시작으로 천주교대구대교구청, 샬트르성바오르수녀원, 성모당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이른바 ‘남산동 카톨릭타운’이다. 카톨릭타운의 시작은 19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천주교는 교세 확장을 위해 남쪽을 관할할 새로운 교구 장소를 찾고 있었다. 그때 국채보상운동의 선구자 서상돈 선생이 남산동 종묘원을 대구교구에 기증했다. 이 땅에 프랑스풍 벽돌 건물이 하나둘 세워지고, 황량하던 땅에 숲과 정원을 가꿨다.

카톨릭타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성모당이다. 이상화 시인의 작품 ‘나의 침실로’의 배경이자, 교황 요한 바오르 2세가 방문했던 곳이다. 이곳은 초대 대구교구장인 드망드 주교가 지었다. 그는 주교관과 신학교, 주교좌성당 증축 등 세가지 소원을 빌었다. 그는 이 기도가 이루어지면 프랑스의 루드르 동굴과 닮은 성모당을 지어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그의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1913년 주교관이, 이듬해에는 성유스티노신학교가 완공했다. 이어 1918년에는 주교좌성당인 계산성당을 증축했다. 이에 그는 약속대로 성모당을 지었다.

프랑스의 루드르 동굴과 닮은 성모당


◇한시절 풍미한 요정골목의 화려한 부활

일제시대 요정골목으로 번성했던 공간을 ‘피어나길’로 재탄생 시켰다.
중구 종로는 대구의 한 시절을 풍미했던 ‘요정골목’이었다. 이곳에 요정이 들어선 것은 일제강점기부터다. 1908년 관기(관청 소속 기생) 제도 폐지로 기생들이 종로로 대거 몰려들었다. 이후 접대용 고급 식당인 요정이 무려 40여 개가 생겼다. 이후 더욱 번성했다. 1950년대에는 요정 130여곳에 기생 500여명이 있을 정도였다.

이 곳 기생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이는 앵무(본명 염농산)라는 기생이었다. 앵무는 구한말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을 때 대구 거상 서상돈이 낸 성금과 같은 액수인 100원을 낸 기생이다. 앵무는 “국채보상은 국민 의무이거늘 여자로서 감히 남자보다 한 푼이라도 더 낼 수 없으니 기천원을 출연하면 나도 그만큼 출연하겠다”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1907년 2월 6일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이 기사는 한국 근대사에서 여성의 남성에 대한 최초의 공개 도전이었다. 또 남성들의 통 큰 기부를 자극하고 국채보상운동에 여성의 참여, 특히 전국 기생들의 참여를 촉발한 역사 속의 천둥소리였다. 이후에도 통 큰 행보는 이어졌다. 해마다 홍수가 나면 큰 피해를 보았던 경북 성주군 용암면에 제방을 쌓기 위해 거액을 냈고, 대구의 유서 깊은 사학인 교남학교가 재정난으로 폐교 위기에 몰리자 전 재산의 절반인 2만원을 내어놓았다. 이 덕분에 교남학교는 위기를 극복하고 대구의 명문인 대륜고등학교로 성장했다. 이에 대구사람들은 앵무를 석재 서병오, 달성공원과 함께 ‘대구 3절’로 불렀다.

피어나길 내 찻집인 설하정에 있는 100년 넘은 우물


역사 속에 묻혔던 요정골목은 최근 ‘종로 근대문화 피어나길’로 새로 태어났다. 요정거리였던 종로의 역사와 문화를 도심재생사업과 접목했다. 이 길은 만경관 맞은편 종로 골목 안쪽에서 만날 수 있다. 종로 기생의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관인 ‘기생 이야기’와 옛 풍류문화를 알려주는 요정전시관인 ‘의기정(義妓定)’이 있다. 의기정에는 요정 130여 곳의 미니어처와 기생들이 썼던 가체, 장식품을 전시하고 있다. 야외 전시장인 ‘기생 이야기’에는 앵무를 비롯해 대구 기생의 역사적 자료도 있다. 여기에 먹거리도 풍성하다. 대구 빈대떡과 무침회를 맛볼 수 있는 ‘교동할매빈대떡’, 대구 명물 ‘막창구이집’, 일본인이 직접 경영하는 이자카야 시게야도 근대 분위기를 살린다. 여기에 전통차와 커피를 마시며 쉬어갈 수 있는 찻집 ‘설하정’도 있다. 100년이 넘은 실제 우물이 찻집에 있다.

대구달성마을의 물레방아정원


◇비루한 골목을 꽃으로 채우다

달성토성 서쪽편에 자리한 동네 ‘날뫼골’. 정확한 지명은 서구 비산 1·2동이다. 지금은 달성토성마을로 불린다. 이곳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구에서도 손꼽히는 낙후지역이었다. 대구가 한창 잘나가던 시절, 시내 곳곳은 재개발로 고층빌딩이 들어섰지만, 날뫼골은 1950년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해야 했다. 젊은이들은 변하지 않은 마을을 등졌다. 떠나지 못하는, 떠날 수 없는 사람들만 골목에 남았다. 빈집은 늘었고, 인적이 드문 골목 안쪽에는 쓰레기가 쌓여갔다. “해지면 돌아다니지 말라”는 소리가 주민 입에서 나올 만큼 마을 분위기도 흉흉했다.

대구달성마을의 정원


골목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3년 전부터다. 몇몇 주민이 집안에서 키우던 꽃이며 나무들을 골목에 꺼내 놓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삽시간에 마을전체로 번졌다. 오가며 쳐다만 보던 주민이 하나둘 동참하기 시작했다. 1년 사이에 골목정원을 만드는 일에 참여한 집이 60가구가 넘었다. 골목에는 수선화·튤립·맨드라미·산수국·마리골드 등 주인을 닮은 각양각색의 꽃들이 넘쳐났다. 해바라기정원·인동초정원·터널정원·비밀의 정원 등 주인이나 정원의 성격에 따라 제각각 이름도 붙였다. 굽이굽이 골목이 꺾이는 곳마다 새로운 모습이 정원이 나타나니 골목을 걷는 재미도 생겼다. 중간중간 골목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벽화를 그려넣고 항아리며 바람개비로 장식도 했다. 이렇게 꽃과 나무로 가득 찬 골목은 더는 옛날의 ‘비루한’ 골목이 아니었다.

골목정원은 이제 명소가 됐다. 골목을 즐기는 이는 이제 주민만이 아니다. 인근 지역 곳곳에서, 때로는 서울에서까지 골목정원을 보러 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골목을 꽃으로 채웠더니 꽃향기에 실려 온 사람 냄새, 사람 온기가 골목을 따뜻하게 데우고 있다.

대구달성마을 초입에 공원 지킴이였던 키다리 아저씨 입간판이 반갑게 관광객을 맞고 있다


◇여행메모

△가는길= 대구의 골목길은 지하철로 이동하기에 편리하다. ‘남산동 카톨릭타운’은 반월당역에서, ‘종로 근대문화 피어나길’은 중앙로역에서, 달성토성마을은 달성공원역에서 내려 찾아갈 수 있다.

△여행팁= 대구 중구청에서 매주 토요일 골목투어(2회), 셋째 주 목요일은 맛투어, 금요일은 야경투어를 진행한다. 또 대구시에서는 가을여행주간(11월 4일까지)에 ‘대구미식회‘ 이벤트를 진행한다. 11개 먹거리골목, 빵집, 꿀떡, 찜갈비 등 ‘먹방BJ’들이 선택한 음식점과 서문시장, 수성유원지, 김광석다시그리기길 등 스탬프투어 운영지에서 참여할 수 있다. 2곳 이상 방문 후 가을여행주간 홍보물에 스탬프를 찍으면 관광안내소에서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

예배중인 계산성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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