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돈 요구할 거라고? 트럼프스러운 발상!"

북한전문가, 北 '미친놈 편견' 벗기기
외국인볼모 美와 줄타기가 돈 때문?
"조폭 아냐…北체제 그리 취약치 않아"
김정은 궁극적 목표는 '中 덩샤오핑'
개혁·개방 통한 경제살리기 나설 것
………
선을 넘어 생각한다
박한식·강국진|320쪽|부키
  • 등록 2018-04-25 오전 12:12:00

    수정 2018-04-25 오전 7:21:22

북한에 관한 ‘대단한 편견·착각’ 1위는 ‘붕괴론’이란다. 저자 박한식은 “체제붕괴는 경제 때문이 아니라 정통성이 무너질 때 오는 법”이라며 북한체제가 그리 쉽게 부서지지 않을 거라고 못을 박는다(이미지=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우린 핵무기를 원하지 않아요. 원했던 적도 없습니다. 30년 동안 제재 때문에 힘들었고 그걸 풀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그래서 원심분리기를 돌리기 시작했지요. 주의를 좀 끌더군요. 그래서 더 돌렸어요. 더 관심을 받았지요. 결국 애초 원치 않던 핵프로그램을 폐기하는 문제로 미국과 협상까지 하게 됐습니다.”

낯설지 않다. 어디서 봤던, 아니면 곧 보게 될 장면처럼 흐르는 거다. 이런 생각도 든다. 그새 북한에서 누가 이런 고백을 했지?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이 장면은 ‘홈랜드’라는 미국 드라마에서 나왔더랬다. 배경도 이란이다. 미국과 핵 합의 위반 의혹을 받는 이란의 혁명수비대가 미국 중앙정보국에게 털어놓은 얘기인 거다. 그래도 말이다. 실감 나는 연출이 아닌가. 미국은 제작하고, 이란은 출연하고, 북한은 구경하고, 한국은 딴청만 부렸던 그것.

그런데 한국이 짐짓 모르는 척 손 놓고 있던 게 핵뿐일까. 북한은 붕괴하나, 김정은과 트럼프 머리 안엔 뭐가 들었지, 중국과 북한의 계산법은 뭐고, 대북지원은 정말 퍼주기였나, 통일이 득인가 실인가 등등, 알자고 들면 끝이 없을 텐데.

북한전문가 박한식(79·미국 조지아대 명예교수)이 선을 넘는 큰 그림을 그렸다. 되레 한국인이라 고개를 절레 저었던 작품명 ‘북한’ 속으로 쑥 끌어들인다. 그는 1994년 지미 카터와 2009년 빌 클린턴의 방북을 주선했던 인물.

책은 문답식 구성이다. 현직기자인 강국진이 길지 않게 묻고 박 교수가 짧지 않게 답했다. 전제는 그간 남북관계가 말짱 꽝이란 것, 과제는 꽝인 줄 알았으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

△미친놈은 상대하지 않는 것이 상책?

전통적으로 북한의 권력자에겐 특별한 프레임이 있었다. ‘교활하고 우스꽝스러운 돼지’(김일성 주석), ‘괴팍한 술주정뱅이’(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코패스’(김정은 국무위원장). 이 모두를 한마디로 아우를 수도 있다. ‘포악한 독재자’로. 더 쉬운 말도 있다. ‘미친놈’. 특히 ‘미친놈’은 김정은에 와서 구체화하는 모양새인데.

사실 북한을 겨냥한 ‘미치광이론’은 배경이 있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 천만에. 미국 닉슨 행정부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고안했다. 당시 미국이 옛 소련을 상대로 써먹은 수법인데 핵전쟁 공포를 조성해 베트남전쟁을 종결했다. 저자가 볼 때 북한에 적용한 미치광이론도 다르지 않다. 체제생존에 몰린 북한이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위협을 가해 ‘상대’를 움츠러들게 만드는 거다.

그렇다면 “미친놈은 상대하지 않는 게 상책”이란 결론에 도달하나. 그럴 순 없단다. 미친놈은 ‘북한에 대한 무지’ 자체를 드러내는 거니까. 물론 뜬금없는 핵실험·군사도발, 억지스러운 외국인 억류, 처형·숙청 등을 보면 “북한이 미쳤군”이라 할 소지는 충분하단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걸 놓쳤다는 건데. 한국의 현실정치와 기성언론이 조장한 편견, 또 전후사정에 깜깜한 대중의 무지 탓이 크다는 거다.

△김정은 목표는 ‘덩샤오핑’

우선 하나만 짚자. 김정은이 원하는 게 정말 ‘돈’인가. 외국인을 볼모로 미국과 줄타기를 하는 게 돈 때문인가. 이 지점에서 저자는 단호하다. 조폭집단이 아니고서야 그게 국가가 할 짓이냐고. 그렇게 속이 빤히 들여다보일 만큼 북한체제가 취약하지 않다고. 대신 김정은의 궁극적인 목표가 ‘덩샤오핑’이란 확신을 들이댄다. 김일성이 만든 국가정통성에다가 김정일이 다진 물리적 안정·안보까지 확보했으니 남은 건 경제살리기뿐이란 것. 중국에서 문화대혁명 뒤 경제성장을 위해 개혁·개방을 바짝 죈 덩샤오핑이 적절한 롤모델이란 얘기다. 경제발전 아젠다를 위해선 미국과도 적극 소통할 거라고 점쳤다.

미국 대북정책의 실수는 트럼프보다 오바마에서 비롯됐다고도 했다. ‘전략적 인내’란 것. 오바마가 북한을 존중해, 아니 깡그리 무시해, 줄창 기다리고만 있던 게 문제였다는 거다. 덕분에 대화의 타이밍도 놓치고 오토 웜비어의 송환도 놓치고. 그래도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는 나았단다. 두 정부의 자세란 건 ‘기다리는 것도 전략’은커녕 ‘기다리는 것 말고는 전략 없음’이었으니까.

말이 난 김에 트럼프까지 가볼까. 저자가 주시한 대목도 ‘장사꾼’이다. 흥정하고 사고파는 데 평생을 보낸 사람이 대통령 옷을 입었다고 바로 정치적이 될 순 없다고 본 거다. 북한이라고 다를까.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김정은과 맞닥뜨린다면 흥정부터 할 거란다. 원산·흥남의 항구개방, 원유 탐사, 지하자원 개발 같은. 물론 트럼프의 내적 갈등이 없진 않았다. 북한을 거래의 대상으로 곁에 둘 건가, 악마의 분신으로 내칠 건가 하는. 어쨌든 북미정상회담까지 기정사실이 된 마당이니 악마 어쩌구 하는 호러극은 피하게 됐다.

△당신이 믿고 싶은 ‘북한’은 없다

몇몇 굵직한 줄기만으로도 눈치챘을 거다. 저자는 북한을 덧씌운 장막을 거둬내는 일에 힘의 절반을 썼다. 나머지 절반은 오해 풀기다. 고고한 훈계는 처음부터 제쳐놨다. 투명하게 본 뒤엔 다음에 뭘 해야 할지 가늠할 수 있으니까. 이런 거다. ‘북한이 붕괴한다고 흡수통일이 되진 않는다’ ‘북한은 1인 독재국가가 아니라 1당 지배국가다’ ‘선군정치는 군부독재와 다르다’ ‘인도적 목적이라면 난리법석보단 조용한 외교가 유리하다’ ‘북한의 핵무기는 안보접근법의 한계였다. 미국에 망하지 않으려면 핵무기가 최고라는’ 등.

책의 미덕은 부드러운 설파다. 꼬투리를 잡자면 엄청난 논쟁을 불러올 사안을 잔잔하게 펼쳐놨다. 다만 핵에 한해서는 강경하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동북아시아에 핵무기경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빼버릴 수 없으니까. 특히 일본이 문제란다. 사태를 지켜본 일본이 핵무장에 나선다면 중국이 또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했다.

흔히 말하는 ‘통일=동질성 회복’이란 공식에도 일침을 꽂는다. 통일은 ‘변증법적’이어야 한단다. 남과 북이 정-반-합을 도출하는. “우리가 바라는 북한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북한과 교섭해야 한다”는 주장의 연장인 셈이다. “당최 믿을 수가 없다”는 불신에도 한 마디 보탰다. 신뢰감을 쌓은 뒤 친구먹기를 하자면 세상에 친구를 몇이나 사귀겠냐고 반문한다. 순서가 바뀌었단다. 신뢰는 대화의 조건이 아니라 결과라고. 시답잖은 수다뿐이어도 일단 만나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이제 곧 남북관계의 역사가 다시 써질 판이다. 혹여 속성이나마 북한에 대한 빠른 공부가 필요하다면 책은 상당히 유용하다.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을 바로 옆에서 조근조근 읽어주는 식이니. 가만히 듣고 있자면 남북관계가 연인관계와 다를 게 뭔가 싶다. 상대를 나와 똑같이 만들려 하지 말고 다른 점부터 끌어안으라는.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빠빠 빨간맛~♬
  • 이부진, 장미란과 '호호'
  • 홈런 신기록
  • 그림 같은 티샷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