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넌 모른다 내가 원하는게 짜장인지 짬뽕인지

소비자 자신도 잘 모르는 '숨은 욕구'
어찌 간파하느냐 비즈니스성패 갈려
컴퓨터가 분석한 빅데이터 맹신 말고
책상고객 아닌 현장고객서 답 찾아야
………
작고 멋진 발견
김철수|272쪽|더퀘스트
  • 등록 2018-05-02 오전 12:12:00

    수정 2018-05-02 오전 8:14:45

파산위기에 몰린 ‘완구기업 레고’는 소비자의 ‘숨은 욕구’를 읽고 빅데이터가 이른 정반대의 해결책으로 기업회생에 성공했다. ‘크고 단순한’을 포기하고 ‘작고 세밀한’ 블록생산에 뛰어든 거다. 저자 김철수는 혁신·개혁이라면 하늘같이 떠받드는 빅데이터보다 경험·직관에 기댄 ‘사람’을 먼저 들여다봐야 답이 나온다고 했다(사진=이데일리DB).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2000년대 초반. 밀려드는 ‘디지털 공략’에 휘청하며 심각한 재정위기에 빠진 기업이 있었다. 100% 아날로그세계를 다루는 ‘완구기업 레고’다. 당시 세상의 모든 데이터는 앵무새처럼 한 말만 하고 있던 터. ‘빠르고 박진감 있는 컴퓨터게임이 대세’라는 거였다. 그러니 천천히 벽돌쌓기나 하는 완구는 후딱 폐기해야 한다고. 정 포기를 못하겠거든 차라리 ‘크고 단순한 블록’으로 진화하라고.

어쩌나. 파산에 몰린 레고의 마케터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정방문에 나섰다. 아이들을 직접 만나 얘기나 들어보자. 그렇게 독일의 한 도시에서 11세 소년을 만났다. 자칭 레고 마니아란 소년. 집안을 가득 채운 레고블록 틈에서 살고 있었는데, 인터뷰 말미에 이 소년이 엉뚱한 얘기를 한다. “내게 가장 소중한 물건은 닳아빠진 아디다스 운동화”라고. 무슨 소리야? 그런데 말이다. 이 뜬금없는 발언이 레고를 살리게 됐단다.

레고만큼이나 스케이트보드 타기에도 열중했다는 소년이 금메달만큼이나 가치를 부여한 낡아빠진 운동화의 위력은 ‘시간’에 있었다. 아이들이 놀이과정에서 높은 수준의 기술을 자랑스럽게 습득하는 데 투자한 비용. 보드를 타느라 다 닳아버린 운동화는 그 훈장이었던 셈이다.

레고가 그간 애지중지했던 연구데이터를 과감히 던져버린 건 그때부터였다. 책상에 쌓인 자료가 누누이 일렀던 ‘크고 단순한 블록’을 멈추고 ‘작고 세밀한 블록’으로 돌아섰다. 블록완성에 시간·노동이 더 심하게 드는 설계였다. 결과는? 대성공! 아이는 물론 어른까지 몰입시킨 성과로 2016년 6조 원의 매출을 올리며 세계 1위 완구기업 마텔까지 위협하게 됐단다.

‘혁신하자’ ‘개혁하자’는 말이 ‘밥 먹자’ ‘차 마시자’만큼이나 흔해졌다. 허구한 날 혁신이고 개혁이란 말을 달고 산다면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지 않나. ‘내가 하는 짓이 거창한 헛발질이 아닌가’ 하는. 혁신·개혁은 차치하고 솔직히 그게 뭔지조차 모를 가능성이 농후한 거니까.

책은 그 ‘헛발질’에 끼워 넣을 대안을 말한다. 일상의 기회에서 진짜 혁신·개혁을 찾는 ‘인사이트 헌터’란 타이틀을 단 저자가 나섰다. 핵심은 이거다. ‘당신이 꿰뚫고 있다고 믿는 소비자의 욕구가 말짱 꽝이란 것’. 어째서? 때론 소비자도 자신이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니까. 표현을 꺼리는 건 다반사고, 진짜배기는 끝까지 안 꺼내놓는 경우도 많으니까. 그러니 그것을 알아내자는 거다. 무기로 삼은 키워드는 ‘언메트니즈’(unmet needs). 숨은 욕구, 잠재한 욕구, 충족되지 않은 욕구란 뜻이다. 이를 얼마나 잽싸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비즈니스의 성패가 갈린다고 했다.

△느려터진 엘리베이터 불만을 해결한 건?

자, 그렇다면 소비자의 언메트니즈를 어찌 간파할 건가. 기업의 조직력? 마케터의 기동성? 빅테이터의 분석력? 어림도 없다. 저자가 꺼낸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람’이다. 그 속을 자꾸 들여다봐야 보인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면 해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판 깨는 아이디어’에서 나오기도 하는데. 예컨대 이런 거다.

요즘이야 엘리베이터 오르내리는 속도가 가히 LTE 급이지만 과거에는 그 속도가 ‘고객 불만’ 1순위였나 보다. 글로벌 엘리베이터 제조사 ‘오티스’도 예외는 아니었던 듯. 갈수록 강력한 모터와 윤활시스템을 개발하고 갖다 붙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만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한 직원이 황당한 제안을 한다. “엘리베이터 안에 거울을 달아봅시다.” 결과는 아는 그대로다. 엘리베이터 탑승자들은 거울 속 자신의 외모에 흠뻑 취해 엘리베이터가 날아가든 기어가든 별로 신경 쓰지 않게 됐다는 거다. 로켓속도로 쏴도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말까 할 대형문제는 참 어이없이 해결을 봤다.

이 사례를 두고 저자는 ‘문제해결보다 문제정의가 먼저’란 생각을 다진다. 그러니 성능 좋은 컴퓨터가 하루 종일 돌려대는 빅데이터에 매몰되지 말란 얘기다. 레고가 그랬지 않았나. 겉으론 완벽해 보이는 빅데이터가 어린아이의 숨은 욕망을 읽어내는 덴 무용지물이었던 것.

이는 동시에 다른 지향점도 내보인다. ‘책상고객’이 아닌 ‘현장고객’을 찾아나서란 지침 말이다. 효과적인 비즈니스 솔루션이란 건 데이터의 덩어리가 아닌 각 데이터의 이면에 박혀 있다고. 살아 있는 시장에 뛰어들고 사람을 믿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그렇게 현장의 소비자의 심리를 파고들다 보면 언메트니즈가 걸리게 돼 있단다.

다만 한 가지가 더 필요한데, ‘왜?’라는 질문이다. 왜 사지, 왜 먹지, 왜 하지 등을 끊임없이 묻다 보면 저변에 깔린 심리가 떠오른다는 소리다. 이 가운데 상품으로 연결된 결정적인 질문도 있다고 저자는 소개한다. ‘라면은 왜 한 봉지를 다 끓여야 하나’ ‘스타킹을 신고 샌들을 신을 순 없나’ ‘낯선 데로 여행을 가면 호텔 말고 묵을 데가 없나’ 등.

△4차 산업혁명이 밀려와도 해답은 사람

경험과 직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철학이다. 혁신은 4차 산업혁명이 아닌 사람에서부터란 역설이기도 하다. 잘난 빅데이터도 시간이 축적한 경험, 노력이 빚은 직관만 못하다고. 하지만 가장 놓치기 쉬운 것도 사람이 아닌가. 혁신·개혁과제에 한 번쯤 내몰렸다면 잘 알겠지만 프로젝트가 거창하고 화려할수록 뒷전에 밀리는 건 사람이다. 그러니 ‘1만 시간의 착각’에 빠지지 말라고 했다. 전문가를 만드는 데 든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이 끝내 책상고객을 만나는 데 그치고 마는 오류 말이다. 소비자가 아닌 기업이 원하는 상품을 만들고, 소비자보다 비즈니스 친화적인 개발을 하는 따위.

책은 쉽고 가볍다. 엄청난 이론도 없고 터무니없이 부피를 키우지도 않았다. 어차피 전제는 ‘모르고 있던’이 아닌 ‘놓치고 있던’ 것을 일깨운다는 거니까. 미래학자 마티아스 호르크스의 인용이 적절했다. “기술이 발전하는 원리는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라 ‘이것뿐만 아니라 저것도’”라는. 신식기술이 구식기술을 밀어낼 거다? 그것은 그저 믿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다. 기술이 이 정도인데 하물며 사람이라면. 짜장면과 짬뽕을 두고 벌이는 인간의 내적 갈등은 첨단기술로 도배한 미래에도 영원하지 않겠나. 빅데이터가 아무리 양쪽 그릇을 세고 있어봤자 해결이 안 될 문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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