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거시기' 해도 글은 '거시기' 안 된다"

'대통령…' '회장님…' 잇는 글쓰기 3부작
"28년 암중모색·고군분투로 얻은 방법론"
글 잘 쓰려면 자신감 갖되 욕심은 버리고
단문으로 기교없이 짧게 쓰는 미니멀리즘
………
강원국의 글쓰기
강원국|336쪽|메디치미디어
  • 등록 2018-07-04 오전 12:12:00

    수정 2018-07-04 오전 12:12:00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비겁한 위안이지만 다행이다 싶다. 십수 년을 반복한 일. ‘마감’이 걸리면 신경은 ‘칼끝’이 된다. 머리를 쥐어뜯고 애꿎은 손가락을 꺾어대고, 호흡곤란에다가 심장은 벌렁벌렁. 급성 글기능쇠약증이라 해두자. 바로 이 순간에도 슬슬 증세가 뻗치는 고질병. 단숨에 뚝딱 한 꼭지 후딱. 이런 건 1년에 한두 번 경험할까 말까다. 점차 나아지는 구석이라도 있다면 위로라도 삼지. 쓰는 일은 갈수록 ‘어렵다’. 그런데 아, 나만의 고통이 아니었구나. 이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데 은근하게 속삭여주기까지 한다. “아프냐? 나는 쑤신다.”

내친김에 한 토막 듣고 가자. “돌이켜보면 많은 글을 썼다. 청와대와 기업에서 1000편 가까운 연설문과 기고글을 쓰고 다듬었다. 한 번도 자신있게 시작한 적이 없다. 그러나 한 번도 못 쓴 적은 없다. 못 쓰면 안 되니까. 써야 하니까. 쓰다 보면 써진다.” 그러니 글이 안 될 땐 과거를 돌아보라고. 세상의 모든 글이 완성되기까진 암중모색의 과정이라고. 그들도 처음에는 백지에서 시작했다고.

글쓰기에 관해선 늘 할 말이 많다. 잘 쓰는 비법? 아니다. 주로 안 써지는 이유에 관해서다. 원인을 고민해봤느냐고? 수십 가지는 들이댈 수 있다. ‘몸이 아파서’는 그나마 논리적이다. 날씨가 화창하면 화창해서 안 써지고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안 써진다. 자료가 많으면 복잡해서 안 써지고 적으면 쓸 게 없어 안 써진다. 생각이 많아도 안 써지고 생각이 없어도 안 써지고, 주위가 너무 조용해도 안 써지고 너무 시끄러워도 안 써지고. 누군가 대신 써준다면 영혼이라도 팔아버릴 판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있었구나.

글쓰기가 여전히 “쓰는 걸 반기지 않는 뇌와의 사투”며 “독창적인 걸 쓰려는 몸부림”이란 ‘작가’ 강원국(56)이 ‘글쓰기 3부작’을 완성했다. ‘대통령의 글쓰기’(2014), ‘회장님의 글쓰기’(2014)를 잇는 자칭타칭 ‘결정판’이다. 두 권의 전작과 다른 점이라면 이제야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 대통령비서실 연설비서관으로 기업 홍보실 임직원으로 깐깐한 리더들에게서 보고 듣고 배운 말·글로 ‘소통’을 삼았던 예전과는 다르다는 뜻이다. 이번이야말로 고군분투로 터득한 진짜 글쓰기 방법론이라고 자신한다. “대통령도 팔아먹고 회장님도 팔아먹고” 이젠 스스로를 팔 일만 남았다는 신고다. 이전까진 그들의 심중을 얹어냈다면 지금부턴 내 심중을 꿰뚫어보란 선언이다. 다만 취지는 변하지 않았다. 글쓰기가 두려운 이들에게 마음만 먹으면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북돋우자는 선한 의도 말이다.

△글쓰기 편견 깨고 일단 써라

글을 잘 쓰고 싶은가. 일단 쓰란다. 기다린다고 써지는 게 글이 아니라고. 압박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란 거다. 자신감이 그 절반이지만 욕심은 버리란다. 물론 조건이 있다. 자신감이 거저 생기고 욕심은 그냥 사라지겠는가. 글쓰기의 자신감을 끌어올리려면 당장 두 가지. 죽과 밥을 번갈아 만들더라도 매일 일정 분량을 쓰는 성실함, 내 글에 호의적인 아군을 관리하는 품이 필요하단다.

창의적인 캐릭터라면 나머지 절반을 또 먹고 들어갈 텐데. 전혀 창의적이지 못한, 자신 같은 이들을 위한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무에서 유를 뽑아내야만 창조라고 믿는 고정관념 뒤집기다. 있는 걸 활용하면 된단다. 아이디어를 합치고 깊이 파고들고 정서적으로 자극하고 정보를 연결하고. 이래도 안 되면 창의를 버리는 거다. 모든 창작물은 모방과 재현에서 시작하지 않느냐고. 그래도 계속 안 되면 현장에서 벗어나 쉬고 놀란다. 뭘 꼭 알아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는 게 없으면 자꾸 보면 된다고, 볼 게 없으면 상상하고.

그렇게 다다른 기본기에는 사실 특별할 게 없다. ‘단문으로 기교 없이 짧게 쓰는’ 미니멀리즘이다. 이를 위한 ‘독서·토론·학습·메모’는 절대과제고. 그렇다고 가진 걸 다 쏟아부으려는 건 욕심이다. 주제에 더해 감동과 재미와 논리까지 욱여넣으려는 것도 욕심이다. 정작 주제가 실종되는 재난을 맞을 테니. 하지만 이보다 저자가 더 무게를 실은 건 글쓰기의 편견 깨기다. 글이란 게 특별한 사람만 쓰는 것도 아니고 첫 줄부터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머리를 굴려야만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란 것이다.

유독 저자가 ‘집착’하는 게 있다. ‘뇌’다. 잘 안 써지는 까닭을 ‘뇌’ 탓으로 돌리려는 ‘묘수’를 굳이 감추지 않는다. “뇌가 쓰려는 시도에 저항했다” “뇌는 글쓰기를 반기지 않는다” “산책을 시작하면 뇌가 글 쓰려나 보다 생각한다” “뇌가 마음을 먹어야 글을 잘 쓸 수 있다” 등등. 눈치챘는가. 결국 저자에게 뇌는 극복할 대상이었다. 습관과 속성과 편견이 잔뜩 들러붙은 뇌와의 치열한 다툼을 말하려 한 거다. 말과 글의 차이도 여기서 생기지 싶다. 가끔 뇌를 통과하지 않는 말이 튀어나올 때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저자는 “말은 ‘거시기’ 해도 글은 ‘거시기’가 안 된다”로 정리하는데. 두 ‘거시기’를 가름하는 건 공들인 시간이고 투자였다.

△테크닉은 절박함을 따를 수 없다

한 줄 한 줄이 미친 공감을 부르니 토 달 것도 없다. 그런데 말이다. 행간에 박힌 ‘협박’이 자꾸 읽히는 거다.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숱하게 강조하지만 ‘두려워하라’로 보인다. ‘쉽게 쓸 수 있다’고 이르지만 ‘쉽게 써대지 말라’로 들린다. ‘이 정도만 갖추면 글쓰기를 한다’지만 ‘이 정도도 못 갖추면 글꼴이 안 된다’는 듯하다. 종국엔 ‘아무나 쓸 수 있다’고 하지만 ‘누구나 잘 쓸 수는 없다’로 읽히고, ‘이렇게 쓰면 되겠구나’란 자신감을 얻을 거라 했지만 ‘이렇게 써야 하는구나’를 배우라는 죽비소리가 울리는 거다.

그간 들였을 수고가 비쳐서 일 것이다. 저자가 고백한 ‘28년 암중모색과 고군분투’는 괜한 소리가 아니다. 전작 이후 1500여일을 글쓰기만 생각하며 살았고 블로그·홈페이지 등에 2000편 이상을 썼다지 않나. 그만큼 하니 이만큼 오더라는 뜻이었을 테니.

저자의 글쓰기는 절박함을 전제로 한다. 일기와 가계부가 아니라면 모든 글쓰기는 태생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책에는 전문적인 간절함이 도드라진다고 할까. 그게 아니라면 이런 에피소드는 못 붙였을 거다. 사형집행 5분 전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가 심장의 피를 찍어 머리로 쓰고 외워 글을 썼다는 그 얘기. 그러니 “모든 건 쓰기 싫은 핑계”일 뿐이라고. 맞다. 말하고 싶은 게 있어야 입을 열 듯, 쓰고 싶은 게 있어야 펜을 드는 법이다. 글쓰기를 알려준다며 살아온 생애를 털어놓는 경우가 어디 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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