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잘못이 아니에요"…피해자전담경찰관이 건넨 위로[경찰人]

정의문 서울영등포경찰서 수사심사관실 경사
'경청·공감' 자세로 보호·지원…일상회복에 '보람'
'범죄피해평가'로 가해자 구속…"피해 목소리 반영"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곁에…미안하지 않아도 돼"
  • 등록 2023-03-20 오전 6:00:00

    수정 2023-03-20 오전 6:00:00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평소엔 못했는데 용기 내서 이야기해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피해자전담경찰관’인 정의문(35) 서울영등포경찰서 수사심사관실 경사는 어느 날 주말 저녁에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신경이 곤두섰다. 발신자는 경찰의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옛 신변보호)를 받았던 ‘교제폭력’ 피해자. 마지막 주변을 정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정 경사는 위험한 순간이라고 판단, 112신고를 하고 피해자 관할 지구대에도 협조를 요청해 우려했던 순간을 막을 수 있었다.

정 경사는 “다음 날 피해자가 ‘걱정 끼쳐서 미안하다’고 전화를 걸어왔다”며 “피해자가 하루빨리 일상에서 안정감을 되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선정, 국어교육, 주거이전 등 종합지원을 연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안부전화에서는 문맹이었던 피해자가 글쓰기 교육을 받고 있는데 ‘꼭 감사편지를 쓰고 싶다’고 하더라”며 “범죄피해를 겪었던 이들이 아픔을 딛고 일상으로 돌아가는데 일조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의문 서울영등포경찰서 피해자전담경찰관(사진=김태형 기자)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주인공은 범죄자와 이를 소탕한 경찰이다. 전면에 나서진 않지만, 어디나 빛나는 조연이 있기 마련이다. 범죄 이후에 남겨진 이들의 일상회복을 돕는 피해자전담경찰관이 대표적이다. 현재 전국에서 총 259명이 활약 중이다. 범죄피해자는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겪거나 ‘2차 피해’를 입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 경사는 이들을 위한 경제·심리·법률 등 다양한 보호·지원 업무를 맡고 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정 경사는 상담기관에서 범죄피해평가 전문가 활동을 겸직하다가 2018년 피해자심리전문요원(경장 특채)으로 입직했다. 피해자전담경찰관이 된 지 올해 4년 차에 접어든 그는 피해자 지원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경청’과 ‘공감’을 꼽았다. 정 경사는 “범죄피해자들의 호소를 놓치지 않고, 그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 범죄피해자들을 돕는 첫걸음”이라며 “절망에 빠진 피해자들을 상담하면서, 어느 날 나와 가족 또한 비슷한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생기지만, 반대로 점차 회복하고 건강해지는 피해자들의 모습을 통해 삶의 희망도 느낀다”고 말했다.

특히 범죄피해는 워낙 충격적이다 보니 피해자전담경찰관은 ‘공감 피로’를 겪게 돼 심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정 경사는 “건강한 여가생활과 명상 등을 통해 정신과 육체를 단련, 다른 피해자들 지원 업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항상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낯선 형사절차에서 범죄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작년 서울의 한 공대생이 과외를 하던 중학생을 한 달 동안 160여차례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체포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피해자 부모가 불안감을 호소하자 정 경사는 범죄피해를 구체화한 보고서를 수사서류에 첨부하는 ‘범죄피해평가’를 제안, 구속영장을 신청해 발부받는 데 기여했다. 정 경사는 “구체적인 피해 내용과 의견을 담아 가해자 구속영장 발부, 양형 등 형사절차에 반영되도록 하는 제도인데 잘 활용하게 된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 제도는 지난 13일부터 전국 258개 경찰서에서 전면 시행하게 됐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이후 범죄피해자 보호에 대한 요구는 갈수록 커지고 있어 어깨가 무겁다. 정 경사는 “일반 시민이 경찰에 기대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라며 제도적 개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장 경찰들은 신형 스마트워치나 지능형 폐쇄회로(CC)TV 개발 및 지급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가해자 구금이 이뤄지지 않으면 한계는 불가피하다”며 “적극적으로 가·피해자 간 분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범죄피해자에게는 위로와 응원을 전했다. 정 경사는 “그 마음을 100% 이해할 순 없겠지만, 피해자만 느끼는 불안·분노·자책 감정으로 매우 외로우실 것”이라며 “피해를 겪었다는 수치심에 혼자 앓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감정을 느끼고 어려워하는 게 지극히 정상”이라고 위로했다. 그러면서 “경찰 조직 내에 피해자전담경찰관이 있으니 말할 곳이 필요하면 들어 드리고,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곁에 있어 드리겠다”며 “당신 잘못이 아니니 더는 미안하지 않아도 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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