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 하이힐에 웨이브…국악, 홍대서도 신명나네

- 심사위원 리뷰
이희문컴퍼니 '이희문프로젝트 날'
타악과 사운드퍼포밍 속 기량 빛나
"강렬한 음악적 자기서사의 고백"
  • 등록 2019-11-21 오전 12:40:00

    수정 2019-11-21 오전 12:40:00

이희문컴퍼니 ‘이희문프로젝트 날’ 공연 장면(사진=이희문컴퍼니).


[전지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경기소리꾼 이희문은 이미 국내외적 유명인사다. 공연 좀 본다는 사람 치고 그의 공연을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의 인기를 획득한 음악가다. 생물학적 남성인 그가 가발과 하이힐에 현란한 웨이브로 무대를 폭발시키고, 상상 초월의 어떤 미친 짓을 해도 그의 공연에는 늘 ‘전통의 재해석’이나 ‘국악의 새로움’ 같은 수사들이 따라붙는다. 그의 괴이한 행적을 복기하며 ‘국악의 새로운 변화’ 같은 상투적 구절을 되풀이하는 리뷰나 기사들은 이미 넘치고 있다. ‘주목된 인물’로 주요한 이력을 나열하며 ‘다시 주목하는’ 회전문식 리뷰도 이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사실 그의 공연은 재미있다. 이것은 결정적이다. 절대다수의 국악공연이 ‘재미없는 국악’의 편견이 사실임을 반복해서 입증하고 있지만, 어쨌든 그의 공연은 재미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가치는 충분히 인정될 만하다. 심지어 서울문화재단 등의 지원을 받아 미친 짓 하지 않고 점잔 빼는 공연마저도 재미있다. 여기서 재미는 감각적 자극만이 아니라 취향·감상의 심리적 만족도까지 포괄한다. 한복을 입고 잔잔하게 ‘긴잡가’를 부르든 현란한 외계의 춤을 추든 재미의 종류만 다를 뿐 ‘재미가 있다’는 사실 자체는 같다.

이희문컴퍼니 ‘이희문프로젝트 날’ 공연 장면(사진=이희문컴퍼니).


지난 10월 9일 서울 마포구 벨로주 홍대에서 선보인 공연 ‘이희문프로젝트 날’은 지난 5월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초연한 것을 서울의 ‘무대다운 무대’로 들여온 것이다. 선율 악기 없이 타악과 사운드퍼포밍 안에 소리와 춤 등 이희문의 개인기량이 자리한 것이다. 이희문 외에 연주자 박범태(장구), 한웅원(드럼), 임용주(신디사이저)의 역할도 컸고, 관객 반응도 기대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데 낯선 말들이 적혀 있었다. “누군가, 무언가를 설득하거나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그 자신을 정제하고 확립하여 새로이 정의하고자”, “목소리 이면의 세계를 날카로이 재단함으로써 스스로 본질적인 해답을 얻고자” 등이다.

음악적 지향을 보여주는 것으로 사료되는 이 표현들은 무거우면서도 추상적이며, 동시에 공연제목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날’을 ‘나를’, ‘날 것’, ‘날카로운(날선)’의 다의적 기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남이 아닌 나를 향해’, ‘가공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소리를’, ‘포근하고 부드럽지 않고 날카롭게’ 보여주는 공연을 기대하게 한다. 단순 언어유희가 아니라면, 최근 접했던 말 중에서 가장 강렬한 음악적 자기서사의 고백이라 할 만하다.

많은 국악전공자들은 자신의 음악적 고뇌와 성찰을 제시하기보다 ‘국악 현대화’나 ‘대중화’와 같은 타자의 언어를 나열하는데 익숙하다. 있는 그대로의 벌거벗은 자기기량 성취를 보여주기보다 권위적 언술과 화려한 이미지를 통해 포장된 자기를 보여주려고 한다. 또한 직선적이고 저돌적으로 예술적 문제의식에 도전하기보다 점잖음과 모호함으로 상업자본에 귀의하려는 속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당대 공연예술의 질서에 ‘전통’이라는 위계적 가치가 결합하게 되면 무대의 경직성과 불투명성은 더욱 강화된다.

이희문컴퍼니 ‘이희문프로젝트 날’ 공연 장면(사진=이희문컴퍼니).


많은 이들이 전통과 국악의 새로움이라는 ‘주입되고 강제된 선입견’으로 이희문을 수없이 재단해왔지만 그런 만큼 이희문 역시 수없이 ‘나의 음악은 나의 음악’이라고 대답해왔다. 음악가가 남이 아닌 자신의 음악을 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전공이 경기민요라는 이유로 늘 ‘국악의 새로운 해석’이나 ‘대중화’ 따위의 타자 시선에 의한 평가를 강제하는 것이 현실이다. 전통이 실질적인 권력질서의 이데올로기 장치라는 인식까지 도달하지 않더라도, 그의 공연과 언행은 음악가에 대한 ‘구획된 질서틀 강요’와 ‘제도화된 평가틀 강요’를 거부하는 실천의 차원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공연은 재미있다.

다만 이러한 의미에도 불구하고 그가 부른 남다른 ‘회심곡’, 잡가, ‘산타령’, 동부민요 등의 노래가 과연 이런 ‘날’의 취지를 얼마만큼 진솔하게 성취했는지에 대해서는 음악적 장인 정신 차원에서 좀 더 치밀하게 궁구(窮究)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본다. 끊임없이 ‘날’의 의미를 성찰하는 음악가를 계속 지켜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희문컴퍼니 ‘이희문프로젝트 날’ 공연 장면(사진=이희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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