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은 시속 100㎞로 달리는데, 韓기업은 40㎞대 '거북이'

[초혁신시대, 산업의 미래는]
①더 느려진 韓기업 혁신속도
'혁신 전쟁터' 진화한 글로벌 시장
美 IT 기업들 '퍼스트 무버'로 선도
韓 기업은 여전히 '패스트 팔로어'
  • 등록 2018-01-03 오전 5:00:00

    수정 2018-01-30 오전 2:08:38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반도체업체 관계자는 중국의 속도전을 두고 “상상 초월”이라고 표현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 분야에서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3~4년 정도 나긴 하지만, 인재들을 대거 싹쓸이 하는 경우가 많아 따라잡히는 것은 시간 문제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혁신 환경의 차이가 워낙 크다 보니 4~5년 뒤면 중국, 인도에 밀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엘리베이터 생산업체의 한 관계자는 혁신 경쟁자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구글’이라고 답해 눈길을 끌었다. 구글이 우주 엘리베이터와 같은 신산업 프로젝트를 통해 미래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다는 답변이었다. 현장에서 뛰는 기업 관계자들은 앞으로의 혁신 경쟁이 업종이나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한다. ‘혁신 전쟁터’나 다름없는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기업의 파괴적 혁신과 정부의 규제 혁파가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구글, 아마존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100km/h 속도로 빠르게 혁신할 때 우리 기업들은 정부 규제 등에 발목잡혀 절반에도 못 미치는 속도로 ‘저속 주행’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우리 기업들이 체감하는 혁신 속도는 1년 전보다도 더 느려졌다.

이 같은 결과는 2일 이데일리와 대한상공회의소가 공동 진행한 ‘2018 국내기업의 경영여건조사’에서 나왔다. 여론조사기관인 텔서치에 의뢰해 실시된 이번 조사는 지난달 21일부터 열흘간 종업원 50인 이상 국내 제조업체 303개사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더 느려진 혁신 속도..‘유통·車부품’ 최악

조사에 응한 기업들은 가장 혁신적인 기업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구글과 아마존 등 미국의 IT 기업들을 주로 언급했다. 그리고 ‘최고 혁신기업이 시속 100km/h로 변화할 때 귀사는 어느 정도인가’라는 질문에 평균 49.9km/h라고 답했다. 국내 기업들이 봤을 때 우리나라의 혁신 속도가 글로벌 선두기업들의 절반 수준으로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조사결과는 불과 1년여 전에 실시된 대한상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평균 혁신 속도가 58.9km/h였던 것과 비교해도 대폭 하락한 수치다. 설문 대상 기업의 모집단이 달라 동일선상에 놓고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기업들이 혁신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종명 대한상의 경제정책팀장은 “과거 한국은 빨리빨리 문화를 통해 세계가 놀랄만한 고속성장을 일궜지만 이젠 그것도 옛말이 된 것 같다”면서 “속도가 수반되는 혁신이 강조되는 초(超)혁신 시대에서 우리 기업들의 혁신 속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혁신 속도는 업종별로 확연한 격차를 보였다. 가장 느린 곳은 유통·관광(40.6km/h)과 자동차 부품(42.2km/h)이었다. 이밖에 조선·플랜드·기자재(50.4km/h), 철강·금속(50.3km/h) 등 중후장대 산업의 혁신속도가 느렸고, 섬유·의류·신발(50.3km/h), 석유화학·에너지(51.1km/h) 등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IT·전자(56.8km/h)의 혁신속도가 빠른 편이었지만, 60km/h가 안됐다.

혁신없는 성장..韓기업은 여전히 ‘추격자’

이번 조사에서 기업들은 지난 5년간 혁신을 위한 제도적 여건이 개선되지 않았다(67.7%)고 응답했다. 이 기간 혁신성과를 거뒀다고 답변한 기업은 절반이 채 안되는 45% 수준에 그쳤다. 또 우리 기업들에 대해선 ‘선도자가 아닌 추격자’(69.0%)라고 평가했다.

삼성전자(005930) 등이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국내 기업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퍼스트 무버(First Mover·선도자)’보다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에 가깝다는 것이 기업들의 자평이다.

온갖 규제에 가로막힌 우리 기업들은 혁신의 가속 패달을 밟는데 한계를 느끼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현재의 규제시스템이 혁신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지를 묻는 질문에는 한쪽으로 답변이 쏠리지 않았지만, 기업 규모가 클수록 수출 비중이 높을 수록 규제가 혁신활동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의견을 많이 냈다.

하지만 기업들은 아무리 어려워도 혁신을 위한 투자는 줄이지 않겠다(83.8%)고 답했다.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급변하는 글로벌 기술경쟁 속에서 혁신 활동으로 남다른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의 발로(發露)로 해석된다.

말뿐인 규제개혁..혁신 저해하는 걸림돌

이번 조사에서 기업들은 혁신을 위한 사회적 분담비율을 묻는 질문에는 △기업 51.3% △정부 27.3% △학계 9.5% △국회 11.7% 정도의 지분을 차지한다고 봤다. 혁신이 속도를 내기 위해선 무엇보다 기업의 변화하려는 노력이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정부 역할이 크다고 본 것이다.

전문가들도 정부가 규제를 혁파해 기업들의 혁신 활로를 뚫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수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규제연구센터 소장은 “수년간 이론만 떠들다가 끝난 ‘말뿐인 규제 개혁’ 속에서 기업들은 더 이상 혁신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기술은 경이적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실체가 없는 사회적 위험을 통제한다는 명분으로 경제 주체들의 혁신 활동을 저해하는 과잉 규제가 넘쳐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에 만들어놓은 온갖 규제 틀이 그대로 유지돼 있어 신산업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의 활동을 원천봉쇄하고 있다”며 “규제 개혁이 기업 혁신활동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심영섭 인하대 초빙교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서둘러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진입 문턱을 높이는 규제 등을 전면 재검토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개혁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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