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떼분양' 주의보] 본지 기자 '조직분양' 직접 영업해보니..

철저한 피라미드 구조..기본 급여 없이 실적수당만
아파트 한 채 팔면 1천만원..팀장·본부장은 별도 수수료
허위·과장 전화상담 난무..거리 현수막 불법 부착도
  • 등록 2014-06-19 오전 7:00:45

    수정 2014-06-19 오후 3:25:36

[이데일리 박종오·강신우 기자] “1년에 수억원 버는 사람도 있고, 300만원도 못 버는 사람도 있어요. 본인 하기에 달린 거니, 강 과장도 현수막 많이 걸고 전화 상담 열심히 하면 부자될 겁니다.”

윤소영(여·가명) 팀장이 분양 상담직 채용 면접을 보러 온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서울 강남의 J아파트 분양 사무실에는 윤 팀장 외에도 팀장 5명이 더 있었다. 총 6개팀에 상담 직원 30여명으로 이뤄진 ‘벌떼 분양(조직 분양)’ 현장이다.

△최근 전국 각지의 분양 현장에서 최대 수백 명에 달하는 영업 사원을 동원해 단기 판촉 행위를 하는 이른바 ‘벌떼 분양(조직 분양)’이 성행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분양 사무실 안에서 직원들이 전화 상담을 하고 있다. (사진=강신우 기자)
다단계 판매와 닮은꼴…높은 판매 수수료로 상담원 유혹

지난 14일 오전 이곳에서 한명의 상담원이 돼 분양 업무를 체험해 봤다. 사무실 벽에는 아파트 브랜드를 새긴 스티커가 곳곳에 붙어 있고, 이 안에서 상담사 15명이 텔레마케팅(TM)을 하고 있었다. 저마다 전화기를 붙들고 불특정 개인의 전화번호 리스트를 살피며 통화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고객을 많이 불러들이기만 하면 돼요. 계약은 내가 합니다. 물론 강 과장도 고객을 유치했으니 그에 따른 수수료를 받죠.”

윤 팀장 말에 따르면 분양 현장은 철저한 ‘피라미드식 구조’로 이뤄졌다. 사다리의 맨 위에는 사업 시행을 맡은 건설사가 있다. 건설사가 대행업체에 분양 업무를 맡기면, 대행사는 각 영업 본부에 업무를 하달한다. 2차 대행사(대대행사)에 다시 하청하는 경우도 있다. 이곳 본부는 총 6개팀, 30여명으로 이뤄져 있다. 일선 현장에서 분양 영업을 맡은 본부가 3개라면 총 90여명이 한 아파트 단지 판촉에 달라붙는 셈이다.

현장을 굴리는 원동력은 ‘분양 수수료’다. 아파트 한 채를 팔 때마다 말단 팀원은 수수료 1000만원을 지급받는다. 팀원이 고객을 유치하면 최종 분양 계약을 맺는 일을 하는 팀장도 계약 건수에 따라 별도의 수수료를 챙긴다. 분양 대행업체가 시행사로부터 받는 건당 판매 수수료를 본부장과 팀장, 팀원들이 제각기 나눠 갖는 다단계 수익 분배 구조인 셈이다.

벌떼 분양에 뛰어든 영업 직원들은 모두 개인 사업자나 마찬가지다. 기본 급여 없이 철저히 실적 위주로만 수당을 받기 때문이다. 단기에 분양 물량을 모두 처분하고 나면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한다. “이번 분양이 마감되면 다른 미분양 아파트나 오피스텔로 갑니다. 그때 강 과장이나 다른 직원들도 저와 마음이 맞으면 함께 가서 일하면 돼요.” 윤 팀장이 말했다.

오전의 첫 업무는 전화 상담이었다. “사모님, 여기 시세 차익 많이 볼 수 있는 좋은 곳입니다. 주변 시세보다 3.3㎡당 700만원 가까이 저렴해요. 이번에 할인 많이 하니까 한번 와 보세요.” 각 팀원마다 잠재적인 고객의 전화번호가 적힌 A4 용지를 활용했다. 여기엔 주로 과거 다른 모델하우스를 방문해 전화번호를 남겼거나 한 번이라도 사업장에 문의 전화를 했던 이들의 번호가 적혀 있다. 사무실에는 장당 50여개씩 수백 장 분량의 개인 정보가 쌓여 있었다.

△최근 전국의 분양 현장에서 최대 수백 명에 달하는 영업 사원을 동원해 단기 판촉 행위를 하는 이른바 ‘벌떼 분양(조직 분양)’이 성행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도보 위에 분양 광고를 위한 현수막 수천 장이 쌓여 있다. (사진=강신우 기자)
홍보물 허위·과장 광고 난무

전화 상담이 업무의 전부는 아니다. 현수막 부착과 전단지 배포, 거리 홍보, 부동산 중개업소를 대상으로 한 고객 유치 마케팅(MGM 마케팅)까지 영업 종류는 다양하다.

전화 상담보다 효율적인 홍보 방법은 거리에 분양 현수막을 부착하는 일이다. 이른바 ‘현수막 콜’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각 팀원은 현수막 안 광고 문구 아래 본인의 전화번호를 기입하는데, 전화가 걸려오면 상담부터 계약까지 손쉽게 이어갈 수 있다. 이렇다 보니 팀원에 따라서는 현수막을 주당 최대 200장까지 내거는 경우도 있다.

물론 무작위적인 분양 현수막 부착은 엄연한 ‘불법’이다. “XXXX번! XXXX번이 누구야!” 오전 중 누군가의 성난 외침이 사무실에 퍼졌다. 구청 단속 기간 중 누군가 현수막을 달았기 때문이다. 이날 전 팀원의 현수막 부착 영업이 금지됐다. 시행사는 최대 500만원인 벌금을 대신 물어야 했지만, 문제가 된 직원은 현수막 콜을 통해 내방 고객 3명을 맞이할 수 있었다.

중단된 현수막 부착 대신 오후에는 사업장 주변 부동산 중개업소를 돌았다. 고객을 유치해 주는 공인중개사와 분양 수수료를 나눠 갖는 MGM 마케팅을 하기 위해서다. 중개업자는 계약 건당 총 2000만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팀원이 자기 몫의 수수료 중 절반인 500만원을 떼 주고, 시행사나 분양대행업체가 나머지 1500만원을 지급하는 식이다.

이날 사무실에서 한 차례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 40대 팀원이 계약 한 건을 달성해 수수료 1000만원을 받게 됐다. 특별한 전문 지식 없이도 본인 하기에 따라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이 업종의 가장 큰 매력이다.

하지만 불법 행위가 적지 않다. 상담 마케팅을 시작하기에 앞서 작성한 계약서에는 ‘교육자료 이외의 내용을 계약자에게 상담할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상담자 본인이 져야 한다’는 문구가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고객을 불러들여야 하는 영업사원으로서는 자료대로만 상담하기가 쉽지 않다. 허위·과장 홍보가 난무한 이유다.

불법 현수막 난립 문제도 심각하다. 업무 마감 전 열린 회의에서 본부장이 “당분간 현수막을 절대 달지 말라”며 으름장을 놨다. 팀원들은 시큰둥한 모습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윤 팀장은 “그래도 현수막을 붙여야 전화가 오는데 어떻게 하느냐”며 “몰래 어떻게 해서든 붙여야 살지”라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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