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하자?" 18년차 검사의 '직장생활'

'생활형 검사'로 산 현실검사의 일·사생활
당청꼴찌 '또라이'까지…현실적 고군분투
소년전담검사 때 "너는 존엄!" 피력한 보람
'형사처벌 편의주의' 답 될 수 없단 경고도
…………
검사내전
김웅|384쪽|부키
  • 등록 2018-01-17 오전 12:12:00

    수정 2018-01-17 오전 1:43:39

영화 ‘검사외전’의 한 장면. 정의의 사도 혹은 악의 화신. 두 극단을 오가던 드라마 속 검사가 현실로 튀어나왔다. ‘생활형 검사’를 자처하는 김웅(48) 부장검사다. 영화 ‘검사외전’에서 따왔다는 제목을 단 ‘검사내전’을 썼다(사진=이데일리DB).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여기는 어느 검찰청 검사실이다. 평소처럼 야근 중인 검사가 있다. 그때 걸려온 차장검사의 전화. 검사들에게 연락해 후딱 뛰어나오라는 내용이었다. 법원 수석부장판사와 회식을 하는 모양인데 흥이 과했던지 내기를 했단다. 각자의 부하직원을 호출해 어느 쪽이 더 나오는지를 따져보자고. 야근 검사는 즉각 실행에 옮겼다. 각부의 총무검사들에게 연락해 차장검사의 지시를 그대로 전달. 다만 그는 사무실에 계속 남아 일을 했단다. “부르기만 하면 달려올 걸 바란다면 개를 기르면 될 텐데”라면서.

다음 날 내기는 진 것으로 판명났고, 술 마신 차장검사에게 부장검사들은 줄줄이 깨졌고, 야근 검사는 ‘자존심 문제’ ‘검찰의 단결심’을 들먹이던 부장에게 일장훈시를 들었고. 가만히나 있으면 그냥 넘어갔을 걸 야근 검사는 기어이 한소리를 보태 상황을 키웠다. “그게 단합이면 제가 술 마시다 차장님을 불러도 차장님이 나와주시나요?”

결국 ‘사이코’에다가 ‘또라이’라는 칭호까지 얻는 역사를 쓴 검사. 그가 누군가. “나는 폭탄주가 싫어요”를 외쳤다는 이다. 당청꼴찌라는 평가, 폭우처럼 쏟아지는 업무보다도 술·회식이 싫어 일부러 당직까지 섰다는 이다. 검사생활 18년차라는 저자 말이다.

검사가 대세다. 드라마도 검사고 영화도 검사다. 신문도 검사고 뉴스도 검사다. 창작도 현실도 죄다 검사다. 드디어 책에까지 등장했다. 그것도 직접 집필한 책에 주인공으로 세웠다. 하지만 별로 ‘대세’가 보이질 않는다. 게다가 이쯤 되면 내부고발자가 아닌가. 그런데 말이다. 이거 재미있다. 주인공은 정의를 부르짖으며 시퍼런 법의 칼을 치켜세운 노련한 검사가 아니다. 엉겁결에 검사가 돼 검찰로 출퇴근하고, 하느라고 하는데도 꼴찌에 또라이란 직함까지 꿰찬 직장인이다. 그런 자신에게 스스로가 부여한 타이틀은 ‘생활형 검사’. 불의를 무찌르는 영웅도, 권력을 휘두르는 악도 아닌 그저 보통명사다.

그런 저자가 왜 불현듯 검사생활을 ‘까발리자’고 나선 건가. 동기는 이거다. “내가 검찰에 들어온 후 조직은 늘 추문과 사고에 휩싸였다. 그때마다 뼈를 깎는 각오로 일신하겠다는 발표를 하곤 했다. 이제는 더 이상 깎을 뼈도 없는 연체동물이 된 것 같았다.” 마음에는 안 들지만 자숙 또 자숙. 그러던 어느 날 분통이 터지더란다. ‘검사동일체’란 이름 아래 ‘싸잡아’ 욕먹고 있는 상황이. 그때 찾아간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나사못이다.” 나사못의 임무는 본체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걱정하기보다 그저 철판을 물고 있을 뿐이라고. 감동을 받은 그는 다짐했단다. “나도 나사못이 되자.” 그런데 그 시절도 기억도 다 지나고 다짐까지 휩쓸려 사라지다 보니 아쉬움만 남더라고. 책은 그 아쉬움의 기록이라고.

△드라마 밖으로 나온 검사가 사는 일

책의 미덕은 ‘대놓고’가 아니고 ‘에둘러’다. 그렇게 에둘러 검사란 직업의 맹점부터 따진다. 한두 개가 아니지만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는’ 게 그중 으뜸이라고 했다. 이른바 검사의 이중성인데. 어서 말을 하라고 다그치고선 정작 말을 하면 거짓말한다고 윽박질러대니까. 그나마 자신은 좀 낫다고 했다. 수사능력이 떨어지는 대신 남의 말을 잘 듣는 능력은 타고 났다는 거다. 아마도 천성적으로 귀가 얇은 ‘팔랑귀’라서란다. 그런데 이것이 처음부터 자랑거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검사실에서 주고받는 ‘온통 거짓말’ 때문이다. 억울하다며 조사받는 피의자도 거짓말, 돈 바라고 고소한 게 아니라는 고소인도 거짓말, 조사하면 다 나온다고 위협하는 검사도 거짓말. 원체 이런 바닥이니 사람을 못 믿는 게 당연했었다. 그러던 불신의 세월이 반전을 맞았다. 비웃기만 했던 피의자의 말이 진실이었다는 게 밝혀지면서다. 많이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러니 단박에 ‘팔랑귀’로 복귀할 수밖에.

저자는 1997년 스물일곱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스마트하다’는 칭찬 꽤 들었던 듯하다. 2000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에는 인천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남들이 말하는 승승장구가 아니었나 보다. 이유는 간단하다. 권력과 한참 떨어진 ‘형사부’를 전전했다니까. 보통 검사가 선망하는 전문분야가 있다. 특수·공안·강력·금융조세·기획·외사 등. 이곳을 제외한 ‘기타’가 형사부니 전문성 떨어지는 심부름센터 같다고 할까. 집안일처럼 해결해도 표시가 안 나고, 난이도가 떨어지니 레벨업도 안 되는 지점.

△법대로 하자? 인간처럼 하자!

그런데 저자가 2류향 풍풍 풍기는 형사부 검사에서 보람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소년사건을 담당하게 된 거다. 저자의 ‘내공’이 본격적으로 떠오른 시기기도 했다. 소년 전담 검사로 피해자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너는 소중하고 무엇보다 존엄하다”고. 그러니 가해자들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없다고. 화해하거나 용서하려 할 필요도 없다고. 존엄한 것은 양보할 수도 포기할 수 없는 거라고. 사실 저자에게 ‘존엄’은 그리 엄청난 게 아니다. 아주 원시적이다. 지켜지지 않으면 상응하는 책임을 물리는 것.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그럴까. 이 말의 속뜻은 처벌만 하면 안 된다는 거지 처벌하지 말라는 뜻은 아닌데.

차라리 ‘사기공화국’이라 부르고 싶은 사회상, 그 속을 비집고 사는 사람들, 이들에게 들이댈 법의 본질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소신까지. 책은 이 속속을 리드미컬하게 엮어낸다. 하지만 철학은 따로 있다. ‘법대로 하자’가 아니라 ‘인간처럼 하자’는 것. 재판이란 게 과연 옳은 걸 가리는 절차였나. 원칙은커녕 대중의 욕구·분노에 휘둘리기도 많이 했는데. 죄를 묻고 구형을 내려 모든 걸 해결하겠다고? 입법 만능주의와 형사처벌 편의주의는 결코 답이 아닌데.

‘진의가 의심스러운’ 시작이었다. 이 검사가 왜 이러는 걸까. 검찰폭로인가 정의구현인가. 다행히 의심은 힘이 빠졌다. 무수한 검사 스토리 이상의 클라이맥스를 내보였으니. 첫 책을 쓴 거라는데 첫 책 같지가 않다. 유려한 글솜씨가 웬만한 작가 뺨칠 정도다. 낄낄거릴 위트를 깔고 허를 찌르는 반전도 심었다. 게다가 사람에 대한 애정을 실어 세상을 공부하자니 더 할 말이 없다. 검사의 직장생활도 치열하되 구차하긴 마찬가지란 위로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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