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동산시장에서 판치는 벌떼 분양을 둘러싼 엇갈리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방식이 침체된 시장에 최적화한 판매 방법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대대적인 인력 공세를 통한 ‘묻지마 판매’가 자칫 소비자 피해나 건설사의 미분양 폭탄 돌려막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벌떼 분양이 횡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수법이 첫 등장한 것은 2009년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로 집값 하락 직격탄을 맞은 수도권 일대에서 기승을 부렸다. 경기 파주·고양·남양주시 등 경기 북부지역과 2010년 대규모 장이 섰던 인천 영종하늘도시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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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식이 확산한 배경에는 부동산시장의 장기 침체와 공급 과잉이 있다. 분양 대행업체인 D사 대표는 “집값 상승 기대감이 사라지면서 더 이상 언론 광고나 모델하우스 집객과 같은 옛 방식으로는 수요자를 모으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지금은 영업사원 100명 이상을 투입해 점 대 점 방식으로 수요자를 직접 불러들이는 마케팅이 효과가 훨씬 크다”고 말했다.
벌떼 분양은 건설사와 분양 대행업체 모두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구조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실제 분양 계약이 이뤄진 건에 대해서만 수수료를 지급하면 된다. 철저한 실적 위주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다. 성과 수당이 많다보니 분양 대행사도 불만이 없다. 악성 미분양 아파트의 판매 수수료는 최대 수천만원에 이른다. 팔기 어려운 상품일수록 높은 성과급을 지급하는 이른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구조다. 말단 팀원도 계약 한 건을 유치하면 일반 직장인의 한 달치 월급 수준인 300만~500만원가량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문제는 이 비용이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조직 분양에 들어갔다고 해서 기존에 해왔던 홍보를 안 할 수 없기 때문에 비용 지출이 결코 줄어든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건설사 자체 마진(이익)을 줄이지 않는 한, 과도한 수수료가 집값에 얹힐 수 있다는 뜻이다.
일선 현장에서 이뤄지는 허위·과장 광고는 벌떼 분양의 이면에 도사린 잠재적 폭탄이다. 최근에는 이런 문제로 아파트 분양 계약자가 입주를 앞두고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하지만 분양 계약이 ‘입구는 넓고 출구는 좁은’ 구조여서 계약 해제가 법정 소송 등 진통을 낳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설사가 제공하는 계약금 정액제, 중도금 대출 무이자 지원 등을 발판 삼아 분양 계약을 맺기는 쉽지만 해제는 까다롭다는 의미다.
건설사도 무더기 분양 계약 해제에 따른 재분양 리스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최근에는 입주 전 잇따른 계약 해제로 애초에 벌떼 분양을 통해 털어낸 물량을 또다시 고액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조직적으로 분양하는 식의 ‘미분양 폭탄 돌려막기’를 하는 사업장도 등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선분양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건설사의 밀어내기 식 분양이 초래한 허위·과장 광고와 이로 인한 투자 리스크를 수요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폐단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어서다.
최승섭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감시팀 부장은 “근거 없는 사탕발림 식 판촉이 횡행하는 것은 아직 짓지도 않은 주택을 분양부터 하는 제도가 근본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주택시장이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기 이전인 노무현 정부 때 후분양으로의 점진적인 변화를 시작해야 했는데 시기를 놓친 측면이 있다”며 “이제라도 후분양제로의 전환을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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