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공시에 멍든다]섣불리 발표, 쉽게 취소…투자자만 화병

번복·누락에 애꿎은 개미만 혼란…시장 걸림돌 우려
“기업정보 충실히 제공하면 기업에 도움 돼”
개선 긴 시간 필요…꾸준한 교육 뒷받침돼야
  • 등록 2019-08-27 오전 5:10:01

    수정 2019-08-27 오전 5:10:01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박태진 기자] 사례1. IT업체 A사에 투자한 이모 씨는 요즘 공시만 보면 화가 난다. 지난 4월부터 정정 공시가 차츰 늘더니 지난달 말에는 1년 전 공시한 사업 계약건과 관련해 계약해지 사항을 알렸기 때문이다. 결국 이 종목은 이달 20일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그는 공시가 항상 틀려서 믿을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사례2.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B사의 주주인 김모 씨는 놀란 최근 가슴을 가라앉혔다. 해당 기업이 유상증자 철회(공시번복) 결정으로 같은 날(20일) 거래소로부터 불성실공시법인지정 예고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는 거래 정지는 물론이고 상장폐지 절차를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글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주주모임단체에서 상폐 기준이 아니며 정보의 왜곡일 뿐이라며 진화에 나선 끝에 김씨는 안심했다.

누더기 공시로 인한 불성실공시법인지정이 늘면서 가뜩이나 위축된 국내 주식시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부도 지난 5월 코스닥 시장의 공시 건전화를 위한 대책을 발표했지만 3개월여가 지난 현재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 높다. 전문가들은 유가증권(코스피)시장 상장사보다 상대적으로 역량이 부족한 코스닥 상장 업체들을 중심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식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연 공시도 빈번… 기업 역량 부족 탓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는 사례를 보면 정보의 변경기재, 번복도 많지만 공시를 하지 않거나 지연 공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컨대 제조업을 영위하는 C사는 지난달 지분 및 사업 양수와 관련해 계약 대상업체의 한 관계사로부터 경영권 소송을 당했지만, 거래소의 관련 조회공시 요구에도 답변기한까지 답변하지 않아 결국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이후 이 회사는 소송 관련 내용을 공시했고, 공시한 날 이후 23일까지 주가는 56% 급락했다. C사 관계자는 “기업 경영권 이전과 전혀 상관이 없는 업체가 건 소송이었기 때문에 공시할 가치가 없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코스닥 상장사들을 중심으로 공시에 대해 안일하게 대처하면서 애꿎은 투자자들만 피해를 입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지난 5월 ‘코스닥 시장 공시 건전성 제고 방안’을 내놨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은 5월 12건에서 6월 13건, 7월 15건으로 계속 늘었고 이달들어서도 23일 현재까지 14건을 기록 중이다.

특히 반복적으로 불성실공시법인에 지정돼 고의성이 의심되는 사례도 있다. 코스닥시장 상장사인 레드로버(060300)는 올해에만 3회 지정됐고, 이에스브이(223310), 스튜디오썸머(008800) 등도 2회 거듭 지정되기도 했다. 이렇게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거나 지정 예고되면 온라인을 중심으로 온갖 억측과 루머들이 난무하면서 시장의 혼란은 가중된다.

불성실공시법인이 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상장사들의 공시역량 부족 탓이 크다. 지난 5월 대책에 △코스닥 기업의 자체 공시역량 강화 지원 △공시대리인 지정 허용 등이 담긴 것도 이같은 사정을 감안한 것이었다.

거래소 관계자는 “공시체계 구축 모델 개발을 위해 외부에 연구용역을 준 상태이며, 고위험군 기업 20여곳을 대상으로 방문교육도 하고 있다”면서 “또 불성실공시법인을 대상으로 분기별로 교육을 하고, 코스닥협회에서는 공시담당자 교육을 진행하는 등 각종 집합교육도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상장사들의 무관심 속에 실제 효과를 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정부가 작년 1월 꺼내 든 코스닥시장 활성화 방안의 부메랑 효과도 원인으로 꼽힌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지난해 코스닥 상장의 문턱을 낮추면서 역량이 부족한 업체들이 대거 상장한 것도 이 같은 사태를 초래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라고 털어놨다.

인식개선 최우선…처벌도 강화해야

이에 따라 먼저 기업들의 인식개선이 최우선 과제로 거론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시라는 것도 결국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기업 규모가 작은 코스닥 상장사의 경우 대기업 위주인 코스피 상장사보다는 상대적으로 공시에 대한 비용 부담이 클 수밖에 없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공시에 대한 인식도 소규모 기업과 대형업체와 차이가 많이 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투자자들에게 기업정보를 충실히 제공함으로써 기업에 도움이 되고 장기적으로 회사의 자금조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이 아직까지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며 “기업 인식이 개선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국과 거래소는 이와 관련한 교육을 긴 호흡으로 꾸준히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코스닥시장 상장규정에 따르면 상장사가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면 벌점을 부과받고 벌점 크기에 따라 매매거래정지(5점 이상),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 돼 최악의 경우 상장폐지에 이를 수 있다. 당국은 그간 2년간 누적 벌점이 30점이면 실질심사 대상이었던 기준을 지난해 4월 상장규정 개정을 통해 최근 1년간 누적벌점이 15점이면 실질심사 대상으로 강화했다. 이는 지난 5월 개선 방안 중 불건전 공시에 대한 조치 강화 방안에 해당하는 것으로 상습·고의적 공시의무 위반이나 공시번복 등에 대해 엄중 제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에는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벌점을 받은 후 납작 엎드려 있으면 괜찮아진다는 생각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또 벌점 1점당 400만원의 제재금도 부과하지만 기업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후 1개월 내 재지정되거나 최근 1년 내에 3회 이상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는 경우, 10점 이상인 경우, 상습성 및 고의·중과실 등이 인정되는 경우 중 하나에 해당하면 제재금을 내게 된다. 또 상황에 따라 벌점을 제재금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국은 현 제재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일단 개선 방안 시행 초기니 지켜봐야할 것 같다”며 “아직까지는 추가적인 제재방안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코스닥 상장사들은 기업 규모도 작은데 제재를 강화하면 너무 큰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냐며 반발할 수 있다”며 “하지만 투자자를 생각한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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