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st SRE]시장 뒤흔든 M&A...채권 투자자 보호 '불충분'

M&A로 기업 신용도 출렁…혼란스러운 크레딧시장
삼성테크윈·SKE&S 사례 대표적…대주주 지원 ↓
선진국보다 채권자 보호제도 미흡…본격 고민해야
  • 등록 2015-04-16 오전 6:00:00

    수정 2015-04-22 오후 4:05:08

[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중국 부동산업체 카이사(Kaisa·佳兆業)그룹홀딩스가 600억원의 대출을 갚지 못하고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진 사례는 올초 중국 부동산금융에 대한 우려를 짙게 드리운 사건이었지만, 국내 채권시장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궈잉청(郭英成) 카이사 회장이 사임하자, 돈을 빌려준 HSBC가 대출계약조건에 따라 대출금 상환을 요구하면서 회사 측이 디폴트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HSBC와 카이사는 궈 회장이 물러나면 대출금을 모두 갚아야한다는 약속을 맺었다.

대출이 돈을 빌려주는 대신 정해진 이자를 꼬박꼬박 내고 성실히 원금을 갚겠다는 믿음으로 맺어진 ‘상호 약속’이듯, 회사채 역시 회사를 건실하게 운영하겠다는 약속 하에 투자금을 모집하는 행위다. 그런데 그 약속에 균열이 생기면서 최근 회사채시장도 적지 않은 혼란을 겪어야 했다.

예상치 못한 M&A로 대주주가 바뀌면서 채권자가 보유한 회사채 등급이 출렁이고, 그에따른 재산권 변동이 발생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신용등급 하락은 곧 투자자가 보유한 채권 가치의 하락으로 연결된다.

지난해 11월 26일 삼성그룹의 삼성테크윈과 삼성종합화학이 한화그룹으로 매각되는 결정이 발표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삼성테크윈의 기업신용등급은 AA, 테크윈 지분 32.4%를 인수할 주체인 (주)한화는 A였다. 삼성종합화학이 지분 50%를 가진 삼성토탈의 등급도 AA였지만, 인수주체인 한화에너지(AA-)와 한화케미칼(A+)은 그보다 낮았다. 개별 신용등급을 평가해 부여할 때는 정상적인 대주주 지원 가능성이 반영된다. 이 때문에 대주주 변경은 크레딧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신용평가사들은 즉각 삼성테크윈과 토탈을 등급하향 검토 대상에 올렸다. 등급을 당장 내리지 않은 것은 아직 해당 계약이 완료되지 않은 탓이고, 거래가 완료되면 등급 역시 ‘키 맞추기’ 작업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올 초 SK E&S가 평택·김천에너지를 사모펀드(PEF)에 매각하면서 이들 회사의 신용등급이 강등된 것도 마찬가지다.

신용등급 평가시 대주주 지원 가능성 측면이 일반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금융회사의 경우, 대주주 변경은 더욱 강한 ‘폭탄’이다. KT ENS 법정관리로 KT그룹 지원 가능성이 훼손되면서 KT캐피탈과 KT렌탈의 등급이 하향조정됐고, 한국씨티그룹캐피탈도 본사의 매각 결정으로 등급 조정이 이뤄진 사례다.

주식시장에서는 최대주주의 중대 의사결정에 반대매수청구권과 같은 투자자 개인의 선택권을 부여하고 있지만, 채권시장에서는 소집부터 까다로운 채권자집회 외에는 사실상 투자자 개인이 의사결정에 찬반을 표시할 방법이 없다. 한 외국계운용사 애널리스트는 “외국에서는 기한이익 상실조항이 상당히 적극적으로 해석되는 것에 비해 국내에선 아직 문제인식이 보편화돼 있지 않다”며 “회사경영이 점진적으로 나빠져서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것은 투자자가 수익의 대가로 짊어져야 하는 정상적 위험부담이지만, 예상치 못한 경영진의 판단으로 신용도가 약해지는 상황에서조차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21회 이데일리 신용평가 전문가 설문(SRE)에서는 이러한 채권시장의 흐름을 반영한 설문도 실시했다. 최대주주 변경과 기업 간의 M&A가 잦아지는 상황에서 채권자 보호 절차에 대한 견해를 물은 결과, ‘사채모집위탁계약서 상 기한이익 상실조항에 최대주주 변경 건을 기입해야 한다’는 강성 응답이 45%(173명 중 78명)으로 나타났다.

HSBC가 최고경영자 변경을 대출상환조건으로 내걸었듯, 채권시장에서도 자신이 투자한 회사의 대주주가 바뀌면 회사 측에 만기 전이라도 채무금액을 일시 상환하도록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상법 개정으로 채권자 집회 조항을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도 33%(57명)에 달했다. 채권시장 크레딧애널리스트, 채권매니저·브로커 등으로 구성된 SRE 응답자 10명 중 8명(78%)꼴로 ‘현 제도는 채권자 보호 측면에서 불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지나치게 엄격한 채권자 보호 조항은 역효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 예컨대 생존을 위해 대대적 구조조정이 필요한 A 그룹에서 B 계열사를 매각해야 하는데 그동안 발행한 채권을 모두 상환(기한이익 상실)해야 한다면 A그룹은 구조조정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이번 설문에서 ‘채권투자자의 과도한 시장 개입은 혼선을 줄 수 있다’(11%), ‘현재 충분히 잘 이뤄지고 있다’(8%)는 응답이 19%에 달한 점도 채권자 보호 강도가 지니는 양면성을 반영한다.

그럼에도 채권시장의 발달, 더 나아가 금융의 신뢰라는 측면에서 국내에서도 본격적인 커버넌트(발행사가 채권자 보호를 위해 준수해야 하는 사항) 제도에 대한 고민을 본격화해야한 한다는 것이 이번 SRE 설문 결과로 나타난 ‘민심’이다.

한 SRE 자문위원은 “현재 국내는 커버넌트 조항에 대한 시장의 통일된 견해도, 금융당국의 유권해석도 없는 상황”이라며 “금융시장의 신뢰도는 투자자보호와 같이 가야하는 만큼, 발행사도 당국도 본격적인 고민을 해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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