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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짐짓 딴청을 부리는 모양새다. 지난 두 차례에 북미 정상회담에 걸었던 기대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의 낙담을 경험해서인지 ‘북미 간의 일’로 거리를 두려는 인상이 짙다. 청와대도 북미 실무협상이 열리는 장소와 시간에는 입을 닫고 있고 외교부에서도 별도의 직원 파견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지난달 9일 9월 하순께 북미 실무협상 재개를 알리자 한 해 건너 뛰기로 했던 유엔 총회에 급하게 뛰어갔던 문재인 대통령이다. 정상의 순방 일정이 늦어도 1~2달 전에는 결정되는 선례에 비춰봤을 때 문 대통령의 뉴욕 방문은 불과 그 2주 전인 태국, 미얀마, 라오스에서도 정해지지 않았다. 그 만큼 북미 관계 회복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문 대통령은 뉴욕에서 비무장지대(DMZ)의 국제평화지대화를 제안하면서 북한의 언 마음을 녹이려 애썼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 등을 폐기하고 한국전 미군 전사자 유해를 송환하는 조치를 취하는 동안 북한이 얻은 실질적 이익은 미미했다. 재래식 무기가 열등한 북한에 DMZ를 국제평화지대로 바꿔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겠다는 제안이다.
실제 2018년 남북이 화해 무드에 돌입한 이후에도 함께 추진한 사업들은 북한 입장에서는 가욋일의 성격이 강했다. 남북 군사회담으로 DMZ 주변의 군사적 긴장감이 완화된 것은 소득이지만 올림픽 공동 유치나, 양묘장 현대화 등은 현재 북한으로서는 사치스러운 이야기다. 철도·도로는 연결하자고 착공식까지 했지만 첫 삽도 뜨지 못했다.
이번 북미 실무협상에 시선이 쏠리는 까닭은 양측이 8개월여의 숙려 시간을 가졌다는 데 있다. 지난 2017년 6월 역사상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에 통 크게 합의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불과 8개월 후인 지난 2월 하노이에서 악수만 나눈 채 돌아섰다.
정상들이 수면 위에서 서로의 우애를 과시하는 동안 기실 수면 아래에서는 별다른 협상안 도출이 되지 못했다. 철저한 실무협상의 실패였다. 첫 만남에서 통큰 합의로 기세를 올렸던 양 정상이 실제로는 이뤄진 바가 전혀 없었음을 곱씹을 수 있던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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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부정적인 신호도 감지된다. 북한은 최 부상이 담화를 발표한 바로 이튿날인 2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으로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지금껏 도발해온 단거리 미사일과 달리 SLBM이 미국을 위협하는 전략무기인 만큼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기싸움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에 대해 일단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했지만 완전한 비핵화 목표와 제재유지 방침에는 변화가 없는 상태다. 양측이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모두 3차 정상회담 가능성을 내비치고는 있지만 이는 전적으로 이번 실무협상의 성과와 연결돼 있다. 아울러 실무협상 결과에 따라 문 대통령의 임기 후반 정책도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