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인구는 가장 정확한 미래예측 수단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가임기 여성의 수와 생존한 노인의 수를 바탕으로 향후 출생자와 사망자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구 변화의 예측은 중요하다. 최근 화두인 고령화만 봐도 경제 전체의 노동 공급을 양적·질적으로 변화시키는 동시에 소비 저축 투자 등 수요 면에서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 직후 태어난 선진국 베이비부머들이 고령화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경제학계가 인구 문제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건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베이비부머는 한국전쟁(1950~1953년) 직후 등장했다.
문제는 인구구조가 손 쓰지 못할 정도로 급변하는 경우다. 우리나라가 딱 그렇다. 60세 안팎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30대 안팎 에코 세대의 저출산과 정확히 맞물리면서, 고령화 속도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유독 빨라서다. 경제적 악영향이 불보듯 뻔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손에 잡힐 만한 그림은 잘 그려지지 않는 것이다.
韓銀의 첫 고령화 연구 프로젝트
한국은행이 사회적 변화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저출산 고령화 연구를 이례적으로 진행한 건 이런 현실과 맞닿아 있다.
한은은 6일 ‘고령화의 원인과 특징’ ‘인구 고령화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시작으로 관련 연구물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재랑 한은 경제연구원 부원장은 “한은이 고령화 연구를 대대적으로 진행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첫 결과물의 결론은 섬뜩했다. 2000~2015년 중 연평균 3.9%를 보이던 경제성장률이 고령화로 인해 2016~2025년 중 1.9%, 2026~2035년 중 0.4%까지 각각 하락할 것으로 추정됐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생산성이 최근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한 것이긴 하다. 2000~2015년 중 노동생산성(국내총생산(GDP)/경제활동인구) 증가율은 평균 2.6%였고 2016~2025년의 경우 2.1%로 추정되는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가정해 계산했다는 의미다. 쉽게 말해 별다른 대책없이 고령화 문제를 방치할 경우 조만간 1%대 성장률로 급락하고 10년 후에는 0%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심지어 20년 후인 2036~2045년 전망치는 0.0%로 추정됐다. 2046년부터는 -0.1%로 고꾸라질 것이라는 게 연구 결과다. ‘잃어버린 20년’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무서운 경고로 읽힌다.
“성장률 둔화…디플레 우려도”
이 정도 속도로 성장이 둔화한다면 디플레이션 우려도 커질 수 있다고 한은은 봤다. 디플레이션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그러니까 물가가 계속 하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곧 가계 소비 침체→기업 매출 감소→기업 투자·고용 감소→가계 소비여력 악화 등 악순환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디플레이션을 두고 ‘경제 침몰’로 부르기도 한다.
국책연구원 출신 한 금융권 고위인사는 “기대수명이 연장되면서 소비성향이 둔화하고, 가계부채가 고령층에 많이 분포한다는 점에서 향후 소비는 성장률을 넘어서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나라곳간인 재정도 구멍이 생길 수 있다. 잠재성장률은 내려앉는데 복지지출 수요는 급증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고령화에 맞춰 재정 지출 구조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