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누구를 위한 '알 권리'인가

  • 등록 2019-05-28 오전 5:00:00

    수정 2019-05-28 오전 5:00:00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변호사회장]누군가와의 통화내용이 공개된다면 앞으로 그 사람과 편하게 통화할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신뢰가 금이 갔기 때문이다. 하물며 국가정상 간 통화내용은 말할 것도 없지 않을까. 이는 개인 간 신뢰문제가 아니라 자칫 국익과도 관련될 수 있어 그 파장이 클 것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능히 알 수 있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7일 있었던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을 공개해서 정국이 시끄럽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본을 방문(이달 25~28일)한 뒤에 한국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다는 내용이다. 한국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 내용에 대해 국민은 알 권리가 있으며, 현 정권의 굴욕 외교를 일깨워 준 공익 제보의 성격이 강하다고 비판에 나섰다.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 핵심적인 가치인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자유롭게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 전단계로서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알권리’라고 한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알권리는 일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정보원으로부터 자유롭게 정보를 수령·수집하거나 국가기관 등에 대해 정보의 공개를 청구할 수 있는 헌법에 의해 직접 보장된 권리다. 그러나 알권리가 무한정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국가기밀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도 제한되거나 금지되는 경우가 많다. 국가안전보장과 같은 공적이익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를 누설할 경우에는 처벌되는 규정도 다수 있다. 형법에 규정된 외교상 기밀누설, 공무상 비밀누설 및 특별법인 군사기밀보호법, 국가보안법 위반 등이 이에 해당한다.

국가정상 간 통화내용은 국민이 언제든지 자유롭게 공개를 요구할 수 있는 대상인가. 정부는 국가정상 간 통화내용은 3급 국가비밀이라고 한다. 보안업무규정에 따르면 누설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비밀에 해당한다. 청와대가 즉각 내부 감찰을 통해 강 의원에게 통화 내용을 넘겨준 사람을 밝힌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그는 주미 한국대사관 소속 외교관이며 강 의원의 고교 후배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위안부 합의 이후 약 15분간 진행된 전화 정상회담 발언록을 공개하라며 정보공개청구를 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2016년 3월 이를 공개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2017년 1월 1심 법원은 “한·일 정상 회담 내용을 공개할 경우 외교적·정치적 공방의 대상이 될 우려가 크고, 향후 이뤄질 다른 나라와의 정상 회담에서도 우리 정부의 신뢰성에 커다란 흠결을 가져와 외교 교섭력이 약화할 수 있다”고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군더더기 없는 지극히 타당한 판결이다.

국회는 폭로의 장이다. 대개 정권을 견제하는 야당의 폭로가 주를 이룬다. 폭로에 나선 의원에게는 불의에 저항하는 비장함과 기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5공 비자금을 폭로한 박계동 의원이나 떡값검사명단을 공개한 고 노회찬 의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은 물론 통상적으로 부수하여 행하여지는 행위는 범죄가 성립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 면책특권을 인정한다. 이는 국회의원의 정부에 대한 견제기능을 충분히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국회 밖에서 공개하는 것은 면책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고 노회찬 의원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검사실명을 게재한 행위는 면책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한·미정상 간 통화내용 공개에 비자금 폭로나 떡값검사명단공개와 같은 비장함과 기개는 엿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강 의원은 국회에서 통화내용을 공개한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도 올렸다. 더욱 더 깊은 수렁에 빠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당파적 이익 때문에 국익을 해치는 일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강 의원과 같은 당 소속이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맡고있는 윤상현 의원의 일침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 한·미동맹을 누구보다 강조하고 보수의 가치를 강조하는 한국당은 더 늦기 전에 국민에게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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