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30년째 비행기 소음에 고통... “월세 20만원에도 수년째 공실"

'항공기 소음피해 호소' 구로구 직접 찾아가 보니
"방 보던 세입자 비행기 굉음에 도망"…신음하는 주민들
지자체, 국토부 예산으로 주민피해 지원
"직접적 피해 구제는 연 20만원 전기료 뿐"…주민들 불만 가득
  • 등록 2020-06-19 오전 12:05:52

    수정 2020-06-19 오후 5:52:51

“못 살겠다고 정말!!”

굉음을 내뿜으며 머리 위로 지나가는 비행기. 이수영(85·남)씨는 소음을 이겨내려는 듯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40여년 가까이 구로구 고척동에 거주 중인 이씨는 하루에도 수십 대씩 지나가는 비행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기자 아가씨 방금 들었지? 여름에 더워도 창문 못 열어. 저녁 뉴스 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건 꿈도 못 꿔.” 미간을 찌푸린 채 두 귀를 막고 있던 허영호 구로구항공기 소음피해대책위원회 위원장의 말은 저 멀리 지나가는 비행기 소음에 막이 씌워진 듯 어렴풋한 소리로 맴돌았다.

구로구 고척동에 위치한 '구로구 항공기 소음피해대책위원회' (사진=박솔잎 인턴기자)


'항공기 소음피해 호소' 구로구 직접 찾아가 보니

16일 스냅타임은 서울 구로구 고척동을 찾아 항공기 소음 실태를 살펴봤다.

기자와 동행한 주민들 중 김지훈씨(가명)는 수첩 가득 빼곡한 메모를 보여줬다.

‘2020년 4월 23일. 9시 48분경 중소형급·10시 7분 35초 중형급…’ 5~6분 간격으로 지나가는 비행기를 기록한 일지였다. 이곳 주민들은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지속되는 비행기 소음에 불편함을 호소했다.

구로구에 거주 중인 김씨가 기입한 비행기 일지 (사진=김씨 제공)


구로구에 따르면 구로구 주민들은 지난 1993년 6월 21일 ‘항공기 소음대책지역 지정고시’ 이후 30년 가까이 비행기 소음 피해를 겪고 있다. 최근에는 김포공항 국제선 증편으로 주민들의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고 전했다.

지난달 15일 국토교통부(국토부)는 항공교통심의위원회를 개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항공사들의 어려움을 감안해 '김포~가오슝 '국제노선 운수권 배분을 결정했다. 주민 동의 없는 국제선 증편에 구로구 '항공기소음피해대책위원회'는 입장문을 내 강력한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구로구 항공기 소음피해 지역 (사진=구로구청 제공)


소음은 물론 집값 하락 우려까지…비행기 굉음에 '신음'

한 여름 땡볕 더위에도 창문을 열지 못하고 저녁 시간 맘 편히 TV를 보지 못하는 건 예삿일에 불과하다. 주민들을 더욱 괴롭히는 건 항공기 소음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다. 특히 부동산이 그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실제 고척동과 같은 항공기 소음 피해 호소 지역은 건축물대장에 이 같은 사실을 기재하기 때문에 기피지역으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 비행기 소리에 방을 보러 온 세입자가 도망가는 일도 허다했다.

이씨는 “애들 다 키워서 시집·장가보내고 방세로 소소하게 용돈벌이라도 하려 했는데 다 글렀다”며 “몇 년째 공실로 놀리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이씨는 자식들의 출가 이후 보증금 1000만원·월세 20만원으로 방 2칸짜리 집을 매물로 내놨다. 이후 여러 세입자들이 방을 보러 왔지만 그때마다 비행기가 내뿜는 굉음때문에 결국 계약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신월동 '시영아파트'. 도로 하나를 두고 소음피해 지역과 인근 지역으로 구분되고 있다. (사진=네이버 부동산)


도로 하나를 두고 지원이 엇갈려 불만을 내비치는 주민들도 있다.

양천구 신월동은 김포공항으로 들어오는 항공기의 착륙 항로에 자리 잡고 있어 소음 피해를 크게 입는 지역이다. 하지만 주민들이 체감하는 피해 대비 지원의 정도가 낮다는 불만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

실제 신월동에 위치한 시영아파트의 경우 도로 하나를 두고 소음피해 지역과 소음인근 지역으로 구분이 돼 주민지원이 달라지고 있다.

양천구 관계자는 “같은 아파트 내에서 도로 하나를 두고 15동~20동은 소음인근 지역으로 구분되고 있다”며 “이러다 보니 해당 동 가구에는 직접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주민들의 불만이 크다”고 설명했다.

지자체, 국토부 발 예산으로 주민피해 지원 中

구로구는 제3종구역 ‘다’지구(75웨클 이상~80웨클 미만)와 소음대책인근지역(70웨클 이상~75웨클 미만)이 혼재된 곳이다. 실제 해당 지역 주민들은 비행기 소음 탓에 생활 소음 피해는 물론 심야시간대 수면장애 및 청각장애 등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웨클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 항공기 소음의 평가단위로 권장하는 단위로 항공기가 이착륙 할 때 발생하는 소음도에 운항 횟수·시간대·소음의 최대치 등에 가산점을 주어 종합 평가하는 것으로 단순히 소리 크기만을 나타내는 단위인 데시벨(㏈)과 다르다.

현행 ‘공항소음 방지 및 소음대책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제1종 구역(소음영향도 95웨클 이상)·제2종 구역(90웨클 이상~95웨클 미만)·제3종 구역(75웨클 이상∼90웨클 미만)으로 구분하고 있다. 제3종 구역을 다시 '가'지구(85웨클 이상~90웨클 미만)·'나'지구(80웨클 이상~85웨클 미만)·'다'지구(75웨클 이상~80웨클 미만)로 나눈다. 3종구역에서 1종구역으로 갈수록 소음이 심해진다.

구로구는 국토부로터 매년 일정 금액을 지원받아 '항공기 소음 피해지역 주민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구로구 관계자는 “매년 8억9000만원 정도의 예산을 국토부가 지원한다”며 “구청 예산과 항공기 소음대책 주민지원사업비를 매칭해 체육관 및 도서관 등 사회간접시설을 확충한다”고 전했다. 이어 “최근 몇 년 간 비행기 소음 피해 지역이 확대된 것과 김포공항 국제선 증편에 따른 주민지원사업비 증액 요청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항공기 소음피해를 호소하는 이씨와 김씨 (사진=박솔잎 인턴기자)


"직접적 피해 구제는 1년 20만원 전기료 뿐"…'뿔난' 주민들

하지만 주민들은 ‘수박 겉핥기식’ 지원이라며 불만을 쏟아냈다.

허씨는 “소음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실제 지원은 1년에 20만원의 전기료말고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하물며 간접지원이라고 하는 체육·문화시설도 피해주민에 대한 할인혜택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국토부와 주민 사이에서 애를 먹는 건 지자체다.

구로구 관계자는 “소음대책 지역에 지원하는 전기료 지원 및 방음망 설치 등은 국토부에서 해당 소음피해 가구들에게 직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지자체 차원에서 주민 개개인에게 직접적 지원은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실제 '공항소음 방지 및 소음대책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지자체는 해당 법 제19조제1항제1호 및 제2호에 따른 주민지원사업의 종류 및 사업비 지원 비율에 따라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지자체 차원의 주민지원 사업은 사회복지사업·체육사업 등을 비롯한 주민 복지 사업과 공동작업상 사업·일자리 창출 사업 등을 포함한 소득 중대 사업 등으로 분류된다.

구로구 관계자는 “주민지원사업 종류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사회간접시설 확충 등이 지자체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며 “주민들에게 직접적으로 피해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해당 시행령을 개정하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스냅타임 박솔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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