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이 곧 무대…보여드리죠, 시인 이상의 '민얼굴'

창작가무극 '꾿빠이, 서울'
소설가 김연수·극작가 오세혁
이상 공연·전시행사로 인연
2년 만에 작품으로 다시 만나
죽은 사람의 얼굴 본떠 만든
'데스마스크' 둘러싼 이야기
이상 시점에서 주변인물 다뤄
  • 등록 2017-09-19 오전 5:30:00

    수정 2017-09-19 오전 8:27:10

서울예술단 ‘굳빠이, 이상’ 원작 소설가 김연수(왼쪽), 각색·작사 맡은 극작가 오세혁(사진=서울예술단).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2015년 바로 이 장소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2년 만에 다시 만나니 기분이 남다르네요.”

소설가 김연수(47)와 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36)은 최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이상의 집’에서 재회했다. 두 사람은 2015년 김 작가가 시인 겸 소설가 이상(1910~1937)의 타계 78주기를 맞아 기획한 행사 ‘이상과 13인의 밤’을 통해 처음 만났다. 이날 두 사람은 같은 장소에서 재회한 게 색다른 듯 악수를 나누더니 이내 대화를 이어갔다.

△이상 작품으로 문학 매력 알게 돼

두 사람이 이곳에서 다시 만난 이유는 서울예술단이 이상의 80주기를 맞아 선보이는 창작가무극 ‘굳빠이, 이상’(21일부터 30일까지 CKL스테이지) 때문이다. 김 작가가 2001년 발표한 동명 장편소설이 원작이다. 오 작가가 각색과 가사를 맡았다. 첫 만남과 두 번째 만남 모두 이상이 연결고리가 됐다.

‘이상과 13인의 밤’은 연극·영화·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한 자리에 모아 이상에 대한 공연과 전시를 하는 행사였다. 당시 오 작가는 연출가 이윤택·조광화 등 평소 알고 지내온 사람들 13명으로부터 이상에 대한 증언을 모아 낭독공연으로 선보였다. 김 작가는 “긴 분량으로 굉장히 역동적인 공연이었다”고 2년 전을 회상했다.

오 작가는 김 작가의 팬이었다. 예전부터 김 작가의 또 다른 장편소설 ‘밤을 노래한다’를 무대에 올리고 싶었다. 오 작가는 “김 작가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하면 자꾸 무언가를 부탁하게 될 것 같아서 첫 만남 이후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서울예술단의 ‘굳빠이, 이상’ 제안을 받고 흔쾌히 수락했다”며 웃었다.

두 사람에게 이상은 특별한 존재다. 김 작가는 고등학교 시절 이상의 작품을 읽은 뒤 이과에서 문과로 ‘전과’를 결심했다. 김 작가는 “이상은 처음으로 좋아한 문인”이라면서 “이상을 접하기 전까지는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문학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상을 통해 문학은 이해를 하지 못해도 즐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오 작가는 초등학교 시절 이상의 수필 ‘권태’를 읽고 그에게 매료됐다. 오 작가는 “어린 나이였지만 내용이 너무 우울해서 ‘나이를 먹으면 저렇게 권태로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때부터 하고 싶은 대로 살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나를 자극하기 위해 틈틈이 ‘권태’를 읽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예술단 ‘굳빠이, 이상’ 콘셉트 이미지(사진=서울예술단).


△시인 백석에도 공통된 관심

이날 두 사람은 이상을 좋아한다는 사실 외에도 서로에게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시인 백석에 대한 관심도 그 중 하나였다. 오 작가는 백석을 모티브로 한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앙코르공연을 준비 중이다. 오 작가는 “전혀 다른 이상과 백석의 감수성을 왔다 갔다 하며 공연 준비를 하고 있어 더욱 즐겁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기회가 된다면 백석의 이야기를 소설로 쓸 계획이다. 그는 “백석이 북한에 간 뒤 어떻게 살았을지 궁금하다. 아들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서도 시를 썼지만 발표하지 않고 그 종이를 휴지로 썼다고 한다. 언젠가 소설로 쓰고 싶은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김 작가는 자신의 작품 중 희곡으로 다시 쓰고 싶은 작품으로 ‘밤은 노래한다’를 꼽았다. 김 작가는 “오 작가가 라이벌이다”라며 웃었다. 이에 오 작가는 “김 작가가 ‘밤은 노래한다’를 희곡으로 쓴다면 내가 직접 연출하겠다”며 화답했다.

△정체성 주제로 한 ‘관객 참여 공연’

소설 ‘굳빠이, 이상’은 이상이 죽기 전 서양화가 길진섭이 그의 죽기 전 얼굴을 데스마스크(죽은 사람의 얼굴에서 직접 본을 떠서 만든 안면상)로 떴다는 소문을 바탕으로 한다. 데스마스크의 진실 여부를 취재하는 김연화 기자, 이상을 동경한 나머지 그의 삶까지 모방한 서혁민, 재미교포 출신으로 이상을 연구해온 피터 주 등 세 인물의 시점으로 이상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다. 김 작가는 “세 명의 화자가 이상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소설로 담았다”고 말했다.

공연은 원작과 달리 이상의 시점에서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을 취한다. 오 작가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상도 자신이 죽는 순간 자신의 얼굴이 어땠을지 궁금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고 각색 방향을 설명했다. 공연에 앞서 대본을 읽은 김 작가는 “소설과 달리 이상이 직접 자신의 얼굴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점이 흥미로웠다”며 무대화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이번 공연은 관객 참여로 완성되는 ‘이머시브 공연’으로 제작한다. 관객은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없는 극장 안에서 자유롭게 배우들의 연기를 바라볼 수 있다. 노래·무용 등 여러 가지 재능을 지닌 서울예술단원들이 주인공이 된다. 오 작가는 “관객들은 노래를 잘하는 연기자, 또는 춤을 잘 추는 연기자를 보게 될 것”이라면서 “이들의 다양한 얼굴을 통해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이상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서울예술단 ‘굳빠이, 이상’ 원작 소설가 김연수(왼쪽), 각색·작사 맡은 극작가 오세혁(사진=서울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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