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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조금 풀린 10일 서울 관악구의 한 주택가. A택배회사에서 8년 동안 일 해온 택배기사 이호성 씨(가명)는 택배박스 여러 개를 한 번에 들고 짧은 거리도 뛰어다녔다. 일이 가장 많은 화요일이라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하루에 배달해야 할 물량은 평균 250개에서 300개. 이씨는 “오늘은 물량이 많은 날이라 350개의 짐을 배달해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일이 많은 날엔 식사는커녕 잠시 짬 내 담배를 피우기도 쉽지 않다.
이 씨는 끊임없이 계단을 오르내렸다. 그가 택배 업무를 맡고 있는 서울 관악구 일대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오래된 연립주택이 많아 여느 아파트 단지보다 노동 강도가 세다. 무거운 액체 세제는 두 손으로, 커다란 아이스박스는 뒷짐을 지듯 지고 계단을 통해 5층까지 순식간에 다녀왔다. 숨소리는 거칠어져 있었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그는 하루에 7시간을 쉬지 않고 뛴다. 무게가 많이 나가는 생수나 잘 새고 냄새가 나는 젓갈 등은 다루기 매우 까다롭지만 그래도 들고 뛴다. 차가 가지 못하는 언덕 위에 집이 있어도,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고객의 짐을 지고 뛴다.
요즘에는 과거와 달리 고객들을 직접 만나는 일은 적다. 일을 하러 나간 1인가구가 물건을 주문한 경우도 많고 이런저런 이유로 택배를 문 앞에 놔달라고 요청하는 고객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직접 손에서 손으로 전달하는 고객의 비중은 20~30% 수준. 그럼에도 집집마다 친절한 목소리로 “OO씨 택배 왔습니다”라고 외쳤다.
건물마다 비밀번호를 외우고, 구옥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손길도 익숙했다. 이 일을 한 지 3개월이면 지도가 외워지고 4~5개월이 지나면 건물의 비밀번호를 꿰뚫는다고 하니 8년 차 베테랑 택배기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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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는 퀵서비스와 달리 정해진 길을 따라가면서 물건을 배송한다. 고객마다 따로 배송할 수 없음에도 개별적인 요구를 하는 경우에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이씨 역시 황당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한 여성 고객이 다짜고짜 전화해 자신의 물건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직 물건을 받기도 전이라 잠시 후 다시 전화를 달라고 했는데 계속 전화를 해 내 물건을 확인해달라, 왜 내 택배가 안 오냐, 왜 내가 누군지 모르느냐고 따지더니 결국 험한 말까지 내뱉었다. 택배를 배달하러 가자 “너가 이호성이야?”라는 말과 함께 욕설을 계속해 옥신각신하다 결국 경찰서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그는 “택배기사는 물건을 전달받아 대신 전달하는 사람일 뿐”이라며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데 일부 고객이 아랫사람 대하듯 하는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두 달에 한 번꼴로 파손 물품에 대한 보상을 한다고 했다. 건당 보상 금액은 1~4만원이다. 크지 않은 금액처럼 보이지만 택배 상자 하나를 배달하면 택배기사에게 떨어지는 수당이 약 760원임을 감안하면 수십 개의 물건을 배송해야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이기도 하다.
돈도 돈이지만 어디에서 망가졌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배송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보상을 해야 할 때면 씁쓸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현장에서 뛰고 있는 택배기사로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다산 신도시 택배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그는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면 될텐데 안타깝다”고 했다. 앞서 경기도 남양주 다산 신도시 아파트 주민들이 택배차량의 지상로 출입을 막고 손수레 배송을 요구해 택배회사와 갈등을 빚는 일이 있다.
택배기사의 처우는 나쁘지 않다. 서울 지역의 경우 일거리가 많아 한 달에 500만 원 정도를 번다. 모두 개인사업자다 보니 직장 상사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역시 적다. 그러나 몸을 주로 쓰는 만큼 몸을 다치면 수입이 0원이 될 수밖에 없는 직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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