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기생과 공생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등록 2020-02-19 오전 5:00:00

    수정 2020-02-19 오전 5:00:00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휩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아카데미라는 다소 보수적이고 영어권 중심으로 흘러가던 영화제에서 비영어권 영화이자 해당 국가의 감독, 스태프, 배우들이 만든 ‘기생충’이 작품상까지 거머쥐었다는 점
은 이번 결과가 그저 한 영화의 대단한 성과 그 이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물론 아카데미 시상식 역시 늘 새로운 시대를 맞아 그 변화에 적응해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백인 남성 중심의 영화제라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아왔던 터라 이를 모두 깨버린 ‘기생충’의 4관왕이 주는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번에 ‘기생충’이 받은 상들 중 작품상만큼 주목됐던 건 ‘국제영화상’이었다. 이 상의 이름은 본래 ‘외국어영화상’이었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이 이 상을 받으며 수상소감으로 무엇보다 상의 이름을 바꾼 후 처음 받은 작품이 됐다는 점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했던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외국어영화상’이란 암묵적으로 영어권만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담겨 있어서다. 미국의 한 매체에서 왜 그간 세계 영화계에 영향을 끼친 한국영화가 아카데미에는 후보로도 오르지 못했느냐는 질문에,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는 로컬”이라고 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아카데미가 상 명칭을 바꾸고 그 부문에 다른 작품도 아닌 ‘기생충’을 주인공으로 앉힌 건 그래서 마치 봉준호 감독의 그 말에 대해 화답을 한 것처럼 느껴진다. 아카데미도 이제 글로벌로 가겠다는 것. 이런 의미로 바라보면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은 우리만이 아니라 비영어권 영화들 모두에게 길을 열어준 성취라는 걸 알 수 있다. 아카데미는 ‘기생충’으로 상징되는 비영어권 영화들과의 공생을 선택했다.

하지만 ‘기생충’이 거둔 성취와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몇몇 정치인과 공직자들의 면면들을 비교해 보면 공생을 선택한 아카데미와는 사뭇 대조적인 느낌마저 든다. 이 영화로 인해 갑자기 ‘짜파구리’가 글로벌한 화제가 되자 부랴부랴 레시피를 제작해서 뿌린 업체의 이야기 정도는 그래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미래통합당(구 자유한국당)처럼 지난 정권 집권 당시 봉준호 감독을 블랙리스트에 올린 바 있고, 심지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도 ‘좌파’ 운운하며 “패러사이트(기생충) 같은 영화는 보지 않는다”고까지 했던 이들이 갑자기 돌변해 봉준호 이름을 딴 카페 거리 조성이나 동상, 조형물을 설치하고 생가터까지 복원하겠다고 나선 건 너무나 후안무치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서울시가 지난 14일 ‘서울관광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며 그 단계 중 하나로 영화 ‘기생충’ 촬영지를 대표 투어코스로 개발해 한류 관광 상품화를 추진할 것이라 밝힌 것도 마찬가지다. 그 의도는 알겠지만 너무 얄팍한 ‘숟가락 얹기’라는 비판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 항간에는 그것이 ‘빈곤 포르노’가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실제 거주하는 이들에게 삶의 공간으로서 반 지하 빌라는 그리 보여주고픈 곳일 리 없기 때문이다. 또 이런 관 주도의 관광 상품화가 지역주민들의 불편으로 이어지는 ‘오버 투어리즘’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 않은가.

송강호는 한 시사회장에서 이 영화가 제목은 ‘기생충’이지만 ‘공생’의 삶을 이야기한다 말한 바 있다. 즉 점점 양극화되어가는 현실에서 기생하는 삶을 블랙코미디로 뒤틀어 ‘공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란 의미다. 그래서 ‘기생충’의 성공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말 그대로 ‘기생하려는’ 이들의 모습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 영화가 메시지로 전하고 있는 사회 양극화의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인들과 공직자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영화계는 물론이고 우리네 사회 곳곳에 놓여진 ‘반 지하’ 아니 ‘지하’의 삶을 들여다보고 공생의 길을 모색하는 것. 그것이 이토록 진중한 메시지를 던진 영화의 질문에 화답하는 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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