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서 불붙은 기본소득 논쟁…코로나가 부른 부의 편중 탓

[기본소득 석학 인터뷰]②
알마즈 젤레케 미국 뉴욕대 교수
'앤드루 양 효과' 기본소득 논쟁 한창인 뉴욕
차기 대선 최대 화두로 기본소득 떠오른 한국
석학이 보는 근래 기본소득 논쟁 의미와 전망
  • 등록 2021-06-23 오전 6:00:00

    수정 2021-06-23 오전 6:00:00

알마즈 젤레케 미국 뉴욕대 교수(왼쪽)가 지난 18일(현지시간) 본지 김정남 특파원과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정남 특파원)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세계 최대 도시인 미국 뉴욕은 근래 기본소득 논쟁이 한창이다.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기본소득 정책을 앞세워 화제를 모았던 대만계 앤드루 양이 차기 뉴욕시장 유력 후보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뉴욕이 자본주의 최전선이라는 점에서 일견 아이러니해 보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 정책이 자라날 토양이 됐다. 4차 산업혁명으로 부의 편중이 심화하면서, 동시에 빈곤과 불평등 문제가 커졌기 때문이다.

미국뿐 아니다. 한국 역시 기본소득 논쟁이 가장 활발한 나라중 하나다. 대선 주자들이 다양한 형태의 기본소득을 내걸고 격론을 벌일 정도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은 잘 알고 있어요. 학계와 시민단체에 머물러 있던 기본소득을 정치권이 다루는 점은 고무적입니다. 다만 기본소득은 참정권에 비견될 만큼 복잡합니다. 선거를 한두번 이긴다고 도입하기 쉽지 않아요.”

이데일리는 기본소득 분야 석학으로 손꼽히는 알마즈 젤레케 뉴욕대 교수와 지난 18일(현지시간) 화상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1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 내내 △모두에게 주는 보편성 △조건 없이 주는 무조건성 △지속적으로 주는 정기성 △가구가 아닌 개인에게 주는 개별성 등 기본소득의 주요 원칙들을 제시하며 현안을 진단했다. 그는 한국을 향해서는 “이미 있는 (현금성 복지) 프로그램 중 지원자격 조건을 없애고 보편성을 확대할 수 있는 게 있는지 살펴보라”며 단계적인 접근을 조언했다.

생산 자동화가 부른 기본소득 논쟁

-기본소득 논쟁이 활발한 이유는 무엇인가.

△생산공정 자동화(automation)가 중요한 흐름이다. 모두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를 걱정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나온 게 기본소득이다. 불평등과 빈곤을 완화하려면 기본소득은 강력한 대책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지난해 팬데믹이 닥치면서 경제가 멈췄을 때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본적인 경제 안전망(basic economic security)을 제공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이미 일부 나라는 실험 중이다.

△그렇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는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본소득을 도입했다. 캘리포니아주의 스톡튼은 빈곤층에 월 500달러를 주고 있다. 특정 계층에 조건을 붙인다는 점에서 진짜 기본소득은 아니지만, 완전 도입은 재원이 많이 필요하니 실험(try out)을 하는 것이다.

-기본소득 논쟁은 어떻게 시작했나.

△시작은 1960년대 미국이다. 빈곤 문제를 어떻게 퇴치할지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다. (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1962년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소득이 없는 계층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소득이 늘면 지급액이 점차 감소하는 방식)’ 개념을 제시하며 논의가 본격화했다.) 인구구조와 임금 등에 대한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게 1960년대다. 이후 1980년대 유럽에서 논쟁이 다시 불거졌고, 2000년대 들어 자동화 이슈가 커지면서 또 화두가 됐다.

-기본소득의 장점은 무엇인가.

△각 나라마다 처한 사정은 다를 것이다. 다만 분산돼 있는 선택적인(특정 계층이 수혜를 입는) 현금성 복지정책을 합칠 수 있다는 건 장점이다. 미국에는 참전자, 고령자, 실업자 등을 위한 각자 다른 복지 프로그램이 있다. 각각 모두 행정력을 동원해야 한다. 그 와중에 복지 대상을 분류하는(categorize) 과정에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까지 생긴다. 기존 복지 프로그램을 조정하고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그런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

-단점은 무엇인가.

△역시 재원이다. 보편 기본소득을 운영하는데 돈이 많이 든다. 재원 마련 대책이 있어야 한다.

-재원은 어떻게 조달해야 하나.

△국가마다 가진 자원과 경제력 등이 다르다. 보편 기본소득을 시행하려면 증세는 필요하다. 미국처럼 자본이 많은 나라는 부유세와 소득세를 늘려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충분히 가능하다. 불평등이 덜한 선진국들은 부가가치세율을 인상하는 방안이 있다. 한국의 경우 국부펀드가 있으니 그걸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재원 조달은 세제 등을 통해 자국 내에서 스스로 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다른 나라에 의존하면 안 된다.

-미국 같은 큰 경제에서 도입이 가능할까.

△물론이다. 미국 정부가 팬데믹 이후 준 재난지원금은 거의 보편적이었고 조건이 없었다는 점에서 기본소득과 유사하다. 이를 지속적으로 주려면 부유세를 높이는 방식으로 가능하다고 본다. (최근 미국 내에서는 2014~2018년 미국 최상위 부자 25명의 연방소득세율이 3.4%에 불과했다는 프로퍼블리카의 탐사 보도가 화제다.)

기본소득 도입 매우 긴 여정될 것

-한국의 기본소득 논쟁에 조언을 한다면.

△기본소득을 향한 여정은 매우 길 것이다. 대선을 한두번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목표를 두고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 2016년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도입 국민투표를 부쳤는데, 23%가 찬성했고 77%가 반대했다. 23%의 찬성을 보고 개인적으로 놀라웠다. 기본소득은 기존 경제 체제를 과격하게 재편성하는 거대한 변화(big change)다. 우리가 참정권을 얻기까지 오래 걸렸던 걸 떠올리면 된다.

-기존 복지 프로그램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 정치권에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가장 먼저 나라 안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조치’들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다. 지역사회 내에서 시도하는 게 좋다. 추후 기본소득을 도입할 때 기반이 될 수 있어서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기본소득 실험을 하는 걸 잘 알고 있다. 두 번째는 이미 존재하는 (현금성) 복지 프로그램을 잘 살펴보라는 것이다. 그것들의 조건을 없애거나 더 보편적으로 주는 식으로 해서 받기 쉽도록 (프로그램 통폐합 등) 조정할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이 성장을 이끌 수 있나.

△모든 시민에게 삶의 기본 필수품을 보장하는 건 수요를 창출하고 소기업의 투자를 촉진하는데 필요하다고 본다. 전형적인 케인스주의다. 그러나 약간의 기본소득 지급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GDP는 생산성과 인구 증가의 조합으로 설명 가능하다. 인구를 늘리고 경제 성장을 도모하려면 미국처럼 대규모 이민을 받아들이는 게 빠를 것이다.

-삶의 질이 중요하다는 건가.

△그렇다. 기본소득은 (기후 변화 위기에 대한 대응처럼) 경제 성장의 범위가 삶의 질로 넓어져야 함을 시사한다.

-노동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있다.

△그렇지 않다. 노동 의욕 저하는 일을 안 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고 일자리를 찾으면 돈을 안 주는 경우다. 지금 미국 정부가 추가 실업수당을 준 이후 기업들이 구인난에 시달리는 게 그 예다. 일자리를 찾으면 수당을 안 주니, 일을 안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일해도 계속 준다. 소득이 더 증가하는데, 왜 일을 하지 않겠는가. 기본소득을 받으면 학업을 하든 창업을 하든 모험을 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더 있다. 소득이 끊기는 불안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경제가 역동적으로 굴러갈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부의 소득세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기본소득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라고 본다. 차이점을 찾자면 프리드먼이 제시한 부의 소득세는 특히 빈곤층을 염두에 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소득이 없으면 정부에서 1000달러를 받고, 100달러를 번다면 900달러를 받는 식이다. 다만 내가 말하는 기본소득은 저소득층을 넘어 중산층까지 더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젤레케 교수는…

△1962년 미국 뉴저지 출생 △프린스턴대 정치학 학사 △하버드대 정치과학 박사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 △하버드대 공공정책 부교수 △뉴스쿨(뉴욕의 주요 종합사립대) 교수 △로버트 와그너 대학원 방문연구원 △뉴욕대 사회과학 교수 △기본소득 지구 네트워크(BIEN) 자문위원

알마즈 젤레케 미국 뉴욕대 교수는 “약간의 기본소득 지급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했다. (사진=김정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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