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방관이다]화재진압 때마다 뇌손상…'소방관을 위한 119는 없다'

"화재 노출 잦은 소방관들, 뇌손상까지 진행 중"
이대 연구진, 소방관-일반인 MRI 비교해 첫 확인
소방직 건강 '빨간불'..정부·국회는 '거북이 걸음'
"공무상 재해보상 제도 바꾸고 소방전문병원 설립해야"
  • 등록 2015-11-09 오전 6:00:00

    수정 2015-11-09 오전 7:05:41

소방관은 화재진압 때마다 흡입하는 유독가스 등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뇌손상을 입는다. 사진은 한 소방관이 화재현장에서 어린아이를 구출하는 모습. (사진=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정부와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 소방관들의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화재진압을 맡고 있는 소방관들이 일반적인 외상과 트라우마 외에 뇌손상까지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소방관들은 인사상 불이익 등을 우려해 ‘다쳐도 참고, 아파도 내색 없이’ 현장을 지킨다. 국가 차원의 체계적 연구와 공무상 상해기준 개선 등 적극적인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8일 이데일리가 입수한 ‘화재진압 소방관에서 소뇌 회질 밀도 변이’(이화여대 뇌·인지과학과 이보라) 논문에 따르면, 화재 현장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소방관들의 소뇌에 구조적 변이가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소방관(남·28명)과 일반인(남·28명)의 뇌 자기공명영상(MRI) 등을 촬영, 소뇌 회질 밀도의 평균 분포값을 비교·분석했다. 연구 결과 소방관 양쪽 소뇌 전엽과 후엽에 위치한 10곳에서 일반인보다 회질 밀도가 낮았다. 회질 밀도가 낮다는 것은 뇌세포가 죽었거나 손상됐다는 의미다.

소뇌 전·후엽은 운동·언어·감정 조절 등에 관여하는 부위로 변이가 일어나면 기억 손상, 운동기능 저하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조사 대상 소방관은 모두 공무상 재해 등 특별한 건강 문제가 정부에 보고된 적이 없는 평범한 소방관들(평균 42.2세, 근무 14.8년)이다.

연구진은 소방관들이 화재 현장의 물리적·화학적·심리적 유해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뇌손상을 입은 것으로 분석했다. 화재 진압 과정에서 뜨거운 열에 노출되고, 일산화탄소 등 독성물질을 흡입해 뇌손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또 현장 출동에서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외상 사건과 이로 인한 스트레스도 소뇌 변이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연구진은 이 같은 환경적 요인이 소뇌 이외의 다른 뇌 영역에도 손상을 입혔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비슷한 스트레스를 겪는 여성 소방관, 구조·구급대원들에게도 뇌손상이 진행 중인지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는 진단도 덧붙였다. 최근 미국 학계에서는 소방관이 화재 현장에서 시안화수소 등 독성물질을 흡입한 뒤 뇌손상으로 파킨슨병이 발병한 사례를 집중 연구 중이다.

(출처=국민안전처)
이처럼 화상 등 외상은 물론 뇌손상까지 입으며 시민들을 구조하고 있지만 소방관들에 대한 지원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소방직 공무원 4만여명의 공무상 요양승인 신청 건수는 432건(1%)에 불과했다. 부상을 입고도 요양승인 신청을 하지 않고 자비로 치료하는 소방관들이 많기 때문이다. 요양승인 신청을 해도 무릎관절, 허리디스크 등 육안으로 보기 힘든 근골격계 질환은 ‘지병’(퇴행성 질환)이라는 이유로 상당수 기각당한다. 소방전문병원 설립 법안은 예산문제 등을 이유로 관계 부처(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국민안전처) 간 합의도 이루지 못한 채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수년째 계류 중이다.

김지은 이화여대 뇌·인지과학과 교수는 “뇌손상이 계속되면 기억·운동 장애에 그치지 않고 치매 증상까지 오게 돼 정상적인 일상 활동이 불가능하게 된다”며 “이제라도 평범해 보이는 소방관들의 건강실태를 전면 조사하고 사전예방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명오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인사상 불이익과 부상을 죄악시 하는 조직문화 때문에 재해를 입고도 이를 숨기는 소방직들이 적지 않다”며 “다친 소방직 공무원들이 자신의 권익을 지킬 수 있도록 공무원 재해보상제도부터 고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출처=국민안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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