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 페이퍼리스]①장롱行 종이통장만 매년 3천만장

작년 5대 은행서만 3000만장 발행
전자문서 만들고도 종이 출력 많아
아날로그 관행에 은행 소극 대응 탓
  • 등록 2019-07-04 오전 6:00:00

    수정 2019-07-04 오전 9:21:42

[그래픽=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서울 여의도에 있는 KB국민은행 여의도영업부의 모든 창구에 손바닥인증 장치가 마련돼 있다. 약 3분 정도 인증 정보만 등록해두면 통장이나 도장, 비밀번호 없이 예금과 출금, 송금을 포함한 대부분 은행업무를 할 수 있는 첨단 서비스다. 이 서비스를 처음 도입했던 지난 4월 창구를 직접 찾은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4차 산업시대 디지털 혁신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높이 평가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 영업점을 찾는 대부분 고객들은 이런 첨단 서비스를 등록할 때조차 종이 서류를 찾는다고 한다. 태블릿PC를 통해 전자문서로 작성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설명해도 종이 문서가 한 장이라도 없으면 심리적인 불안감을 느껴서다. 대부분의 은행업무를 할 수 있는 태블릿PC가 곳곳에 설치돼 있어도 고객들은 간단한 입출금 신청부터 10~20분간 작성해야 하는 수십장의 종이 서류를 작성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간혹 태블릿PC로 대출서류를 작성하고도 마지막에는 종이 서류를 출력해달라는 경우다 많다. 금융권이 디지털뱅킹 시대를 맞아 ‘페이퍼리스(paperless·종이 없는)’ 금융환경을 추진하고 있으나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단적인 사례다. 페이퍼리스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는 종이서류(통장 등 포함)에 익숙한 아날로그 관행과 함께 은행의 소극적 대응, 완전하게 걷히지 않는 낡은 규제 등이 꼽힌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은행에서 작년 한 해 발행한 종이통장은 3006만장 수준이다. 지난 2016년 이후 소폭 감소하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3000만장을 넘는다. 인터넷은행과 모바일뱅킹이 대세로 자리매김하며 종이통장은 사실상 무용지물 신세이지만 매년 새로 예금이나 적금 등의 계좌를 만드는 고객의 약 80%는 여전히 종이 통장을 받아간다. 통장 발행원가를 고려하면 한해 최소 1500억원이 종이통장으로 낭비되는 셈이다.

금융당국과 은행이 지난 2015년부터 디지털 환경변화와 이런 비용을 고려해 종이통장 발행을 단계적으로 감축해 무통장거래를 정착시킨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현실에서는 눈에 띄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금융거래가 전산화하면서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종이통장이 오래전 사라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은행권 창구를 디지털화해 종이문서를 최소화하겠다는 구상도 마찬가지다. 국내 5대 시중은행은 예금이나 대출 같은 개인고객 업무를 테블릿PC를 통해 진행할 환경을 만들었으나 활용도가 낮은 편이다. 그나마 거래빈도가 낮고 서류가 복잡한 업무는 전자화를 할 엄두도 못내는 실정이다. 국내 대형은행의 경우 디지털 전용창구에서조차 종이서류가 차지하는 비중이 60~70% 정도다. 은행을 찾는 고객이나 직원들도 오프라인 방식에 익숙해 디지털 서류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 지점을 찾는 고객 대부분은 40대 이상으로 대면거래가 익숙한데다, 혹시 모를 불안감 탓에 종이 서류를 꼭 챙겨간다”며 “결과적으로 쓸모없는 서류나 종이 낭비”라고 지적했다.

신용카드 종이영수증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현행법상 소비자가 카드를 긁으면 의무적으로 종이 영수증을 발행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몇년 전부터 종이 대신 선택적으로 전자영수증을 발행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에서는 꿈적하지 않다 올들어서야 관련 내용을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해관계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조율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오정근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건국대 교수)은 “우리나라는 뛰어난 IT인프라에도 페이퍼리스 환경은 후진적”이라며 “우리 사회의 아날로그적 관행과 정부의 낡은 규제의 합작품”이라고 지적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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