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뒤 '화려한' 그녀…이유 있는 '딴따라 패션'[오너의 취향]

'금수저' 넘어서는 '다이아수저'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경영 일절 관여않고 철저하게 `딴따라` 자처
불편한 몸 과장된 패션으로 가리고 `K컬처` 전도사 선봉
아티스트와 호흡하되 콘텐츠 간섭은 일절 `NO`
"수십년 `한국영업` 쌓여 오늘날 K콘텐츠 세계 주목"
  • 등록 2022-07-13 오전 6:30:00

    수정 2022-07-13 오전 6:30:00

[이데일리 전재욱 김영환 기자]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손녀는 동양방송(TBC) 스튜디오가 놀이터였다. 1960~70년 유년의 추억이 담긴 방송국은 1980년 통폐합된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문화 산업을 일으키리라고 다짐한다. “문화 없이는 나라도 없다”는 게 호암의 가르침이었다. 다짐과 가르침은 한국 문화를 세계에 우뚝 세우는 발판이 된다. K콘텐츠 거두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얘기다.

지난 3월 미국 유명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 표지를 장식한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버라이어티’는 그녀를 ‘올해의 국제 미디어 우먼’에 선정했다.(사진=버라이어티)
거동 불편해도…해외 누비며 `한국영업`

이 부회장은 유전성 신경질환 `샤르코-마리-투스`를 앓고 있다. 하지 근육이 약화되고 위축되는 유전성 신경병증으로, 관절과 근육이 약해져 거동이 불편한 게 대표 증상이다.

이 부회장이 다소 화려한 패션을 즐기는 취향을 갖게 된 배경이다. 이 부회장은 헤어스타일을 크게 부풀리거나 올린 머리를 헤어밴드로 고정하는 스타일을 좋아한다. 머리띠도 비즈 장식이 화려한 쪽을 선호한다.

의상도 패턴이 화려하거나 레이스, 벨벳 등 일반인들은 쉽사리 용기 내지 못하는 것을 택한다. 반지 등 액세서리도 과장된 제품이 많다. 전형적인 정장보다는 아방가르드한 스타일을 즐겨 입는다. 미려한 패션에 욕심을 부리는 건, 자신이 갖고 있는 질환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다.

지난 2015년 부친상 때 목발을 짚은 모습을 보면 병세가 악화한 게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그럼에도 주변 손길을 빌려서라도 가야 할 자리는 가고, 불편한 거동에 시선이 쏠리는 걸 분산하고자 상대적으로 화려한 치장을 즐기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뭣 모르는 이들은 그의 모습을 보고 쉽게 오해하지만, 유아적인 시기에 불과하다.

지난 2020년 영화 `기생충`이 4관왕을 받았던 아카데미 시상식 때도 부축을 받으면서 무대에 올라가 자리를 빛냈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영화광`인 그가, 지난 수십 년을 투자해온 한국영화의 아카데미 수상 자리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만큼 문화와 예술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많은 걸 해냈다. 올해만 해도 배급하는 영화 `브로커`와 `헤어질 결심`이 국제무대에서 명성을 얻었다. 기생충에 이은 경사다. 상업영화 `범죄도시2`는 코로나19로 침체한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미경 부회장을 오래 가까이서 지켜본 인사는 “이 부회장은 수십 년간 해외에 한국 감독과 아티스트, 배우를 소개하고 연결한 인물”이라며 “오늘날 한국 콘텐츠가 인정받는 건 이런 나날이 쌓인 결과”라고 했다.

실제 이 부회장은 1990년대 후반 `충무로`로 대표되던 낡은 한국 영화 시스템을 지금의 멀티플렉스 시스템으로 혁신시킨 일등공신이다. 열악했던 영화관 시설부터 제작·배급 시스템까지 완벽하게 탈바꿈시켰다.

박찬욱·봉준호 같은 한국영화의 보물을 발견하고 절대적인 후원을 보낸 이가 바로 이 부회장이었다. 삼성, LG, 현대 등 유수의 대기업들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문화산업을 등지고 떠났어도 그 시기를 버텨내고 한국영화를 지금 단계에 올려놓은 건 이 부회장의 역할이 지대했다.

“능력 증명하라” 남녀불문 호암 덕에

시쳇말로 `금수저`를 넘어서는 `다이아수저`여서 내공을 쌓기에는 충분했다. 구하기 어려운 해외 영화도 여건이 되는 대로 들여와 봤다. 어려서 스스로를 `할리우드 키즈`라고 불렀다. CJ CGV가 압구정에 영화관을 개관하자 영화에 빠져 산 일화는 유명하다. 네댓 시간짜리 예술영화를 함께 보느라고 일행은 혼이 났다고 한다.

함께 일하는 감독과 배우, 아티스트의 작품은 반드시 먼저 본다. 상대에 대한 예의 차원을 떠나서, 그래야 대화가 통하기 때문이란다. “박찬욱와 봉준호를 만나서 영화 얘기를 해도 꿀리지 않을 사람”이라는 평가도 그래서 가능하다.

영화 `기생충`이 2020년 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에 호명되자 무대에 올라 소감을 밝히는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사진=AP연합뉴스)
기회는 호암의 별세(1987년)로 불시에 찾아왔다. CJ그룹이 1994년 드림웍스에 투자할 당시 그가 선봉에 섰다. 세계적인 영화사 드림웍스와 합작은 쾌거였다. 삼성그룹에서 분사한 지 1년 만이고, 애초 삼성에 갔던 투자 요청을 CJ로 돌려세워 의미 있었다. 생전 호암의 격려는 큰 힘이었다. “능력을 증명하면, 네 뒤에 내가 서겠다.” 남녀 불문하고 능력 위주로 사람을 쓰는 가풍(家風)을 계기로 CJ그룹은 영화 사업, 나아가 문화 산업에 시동을 건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은 철저하게 `딴따라` 길을 걸었다. 경영과는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거리를 뒀다. 현재 그가 가진 CJ그룹 주식은 CJ ENM(035760) 지분 0.11%(올해 1분기 기준)가 전부다. 조카인 이선호(0.5%), 이경후(0.2%)보다 적다. 나머지 계열사 지분은 가지지 않았다. 하물며 등기 임원으로 이름을 올린 회사도 없다. 1993년 그룹이 삼성에서 분가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다.

그러니 동생 이재현 회장과 사이가 틀어질 리 없다. 공사를 불문하고 “회장님” 호칭을 빼먹는 적이 없다고 한다. 은둔의 경영인 이 부회장이 2014년 외신 인터뷰에 응한 것도 당시 옥고를 치르던 이재현 회장 때문이었다고 한다. 재계 관계자는 “결재하는 자리는 하나도 맡지를 않으니 그룹 안에 소위 `이미경 라인`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며 “조카를 자식처럼 애틋하게 대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혼하고 재혼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다.

회사를 떠난 그는 무대 뒤 아티스트와 땀으로 호흡하고 사업에만 전념했다. 투자자로서 선을 칼같이 지키는 걸로 정평이 나 있다. 자칫 작품 내용에 영향을 줄 걸 우려해서다. 과거 특정한 콘텐츠를 지원해 정권에 밉보인 사건은 전제부터 틀렸다는 게 주변 평가다.

해외 무대에서는 역량을 탈진하듯이 쏟아낸다. 라크마(LACMA) 갈라 행사는 대표적으로 공들여온 자리다. 세계 영화계 주요 인사가 모이는 연례행사에서 `한국 영업`은 지난해 10회에 이르기까지 매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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