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전 대기근이 낳은 '네우볼라'…아동학대 원천봉쇄

[지구촌 육아전쟁 탐방기 핀란드편]
임신 후 네우볼라 등록 필수…모든 검진 과정이 무료
가족의 신체·심리·사회적 상황을 수 년 간 1명이 돌봐
"네우볼라 제도, 정착하려면 복지 개념 대전환 필요"
  • 등록 2018-01-08 오전 6:30:00

    수정 2018-01-08 오전 6:30:00

미나 이바소야(Mina Evasoja)타피올라 건강센터 네우볼라 부수석 간호사. (사진=김보영 기자)
[에스푸(핀란드)=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핀란드의 보육 시스템에서 눈여겨 볼 점 중 하나는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돌보는 정부 산하 진료기관인 ‘네우볼라(Neuvola·모성 클리닉)’이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과 비교해 설명하자면 네우볼라는 산부인과와 어린이병원, 정신건강센터 역할을 종합적으로 수행하는 곳이다. 네우볼라에선 아이가 태어나 1년이 지난 시점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6년간 아이와 엄마의 건강과 성장과정 전체를 돌본다. 이 모든 일을 지정된 전문 간호사가 전담한다. 핀란드에서 아동학대 사건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 중 하나가 아이의 성장과정을 지속적으로 지켜보는 네우볼라 시스템 덕분이다.

1776년부터 1983년까지 핀란드 영아 1000명 당 사망률 변화 추이. 대기근이 극심했던 1868년은 10명 당 영아 4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였다. (표=핀란드 통계청)
네우볼라의 역사는 18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난한 나라였던 핀란드는 1866년~1868년 사이 3년간 전국을 덥친 대기근으로 전체 인구의 15~20%가 목숨을 잃는 재난을 겪었다. 당시 신생아 10명 중 4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였다.

이때부터 영아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아동과 산모를 위한 전문의료기관 설립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1919년 아보 이포(Arvo Yippo)란 핀란드 의사가 네우볼라 제도를 처음 고안해냈고, 핀란드 정부가 이를 정책으로 채택해 1921년부터 시행됐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건강 검진 정도만 맡아 수행했지만, 제도가 정착하면서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비롯해 알코올 중독과 같은 사회적 질병 유무까지 판단하는 종합 검진으로 진화했다. 아동의 건강은 부모의 신체적·사회적·심리적 건강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시흥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핀란드 네우볼라를 롤모델로 한 모자(母子) 보건 지원 시스템 도입을 추진 중이다.

핀란드 에스푸(Espoo)에 있는 타피올라 건강센터(Tapioloa Healthcare Center) 내 네우볼라(Neuvola)간호사 사무실 내부. 영아들의 키와 몸무게, 머리둘레 등을 재는 각종 의료장비들이 구비되어 있다. (사진=김보영 기자)
엄마와 아이의 만능 도우미 ‘네우볼라’

핀란드 엄마들은 임신을 확인하면 집 근처 네우볼라에 등록한다. 다른 산부인과를 이용하느냐 여부는 관계없다. 아이를 갖게 되면 반드시 네우볼라에 정기적으로 방문해 진료를 받고 엄마와 아이의 건강정보를 기재해야 한다. 대신 각종 검사 등 네우볼라를 이용하는 비용은 모두 무료다.

네우볼라는 산부인과와 치과, 소아과, 내과 등이 있는 종합병원이나 병원과 인접한 곳에 위치해 있다. 네우볼라에서 검진한 산모와 아동 건강에 이상이 발견되면 곧바로 전문의료기관으로 후송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네우볼라는 등록한 가정에 가장 먼저 임신부의 기초적인 건강상태와 질병여부, 술, 담배, 피임약의 사용 유무, 정신건강 상태 등을 묻는 설문지를 우편으로 보낸다. 아빠에게도 동일한 설문지를 보낸다. 부모의 건강상태를 확인해 태아가 어떤 상태일지 유추하고,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랄 지 파악하는 단계다.

임신부가 처음 네우볼라를 방문하면 출산과 육아와 관련한 다양한 종류의 책자를 제공한다. 초보 엄마, 아빠들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다.

핀란드 에스푸에 거주하며 2세 남아를 육아 중인 워킹맘 미리암 슈히티넨(Miriam Schetinen·32)씨는 “네우볼라에서 출산 및 육아에 관한 여러 정보를 담은 다양한 책자와 팜플렛, 프린트물을 준다. 따로 서점에 가서 책을 사거나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

네우볼라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산모와 아동의 종합건강진단 업무만을 담당한다. 네우볼라에서 일하기 위해선 기본 3년의 실습기간에 추가로 네우볼라 전문 과정을 1년간 이수해야 한다. 네우볼라 간호사들은 각자 진료실이 있어 이곳에서 검진과 상담을 한다. 간호사 1명이 평균 40여명의 엄마와 200여명의 아동을 책임진다.

질병 뿐 아니라 우울증·빈곤도 관리

네우볼라 간호사는 아이 뿐만 아니라 부모의 경제상황 및 정신 질환, 흡연 여부 등 아이의 양육과 관련한 한 가족의 전반적인 상태를 수시로 점검하고 관리한다. 우리나라와 달리 핀란드에선 네우볼라 간호사가 의사를 대신해 기본적인 건강검진과 진료를 할 수 있다. 시민들은 네우볼라 간호사들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있어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핀란드 에스푸 지역에 위치한 네우볼라인 ‘타피올라 건강 센터(Tapiola healthcare center)’. 에스푸에 위치한 네우볼라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다. 헬싱키나 에스푸와 같이 인구가 많은 주요 도시에 위치한 네우볼라는 많게는 17~20명의 네우볼라 간호사가 상주한다. 반면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곳은 2~3명 정도의 소규모로 운영한다.

타피올라 건강 센터의 미나 부수석 간호사는 “오전 9시부터 4시까지 30~40분 간격으로 가족들이 방문해 검진을 받는다”며 “짧은시간 안에 아이와 엄마의 건강 상태, 이상여부를 파악해야 한다. 아이가 태어난 직후에는 일주일 한 번, 이후에는 2주에 한 번 정도 방문해 검진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네우볼라 간호사들은 질병 뿐 아니라 알코올 중독이나 우울증, 빈곤과 같은 가족을 위협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놓고 종합적인 상담을 한다. 실제로 네우볼라 간호사 진료실에는 아이들을 위한 진료 도구는 물론 중간에 잠을 청할 수 있는 산모 침대와 아기 침대, 취미 활동 및 심리 진단을 위한 그림 도구, 퍼즐, 장난감들이 가득하다.

지난 2015년 6월 일본 히데키 마츠자키(Hideki Matsuzaki)우라야스(Urayasu)시장이 핀란드 헬싱키의 한 네우볼라를 방문견학해 네우볼라 간호사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우라야스 시 홈페이지)
일본 전면 도입 추진…비용부담이 최대 관건

엄마와 아이의 건강 지킴이 역할에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과중한 업무 탓에 네우볼라 간호사들이 겪는 고충 또한 크다. 가족들이 정기적으로 검진받아야 할 항목들이 워낙 많고, 간호사들이 담당하는 많은 가족들의 건강과 심리상태를 면밀히 파악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핀란드 정부와 의료계에서는 네우볼라 간호사들이 겪는 스트레스 해결과 임금 등 처우개선을 위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다만 네우볼라 간호사들은 자신들이 엄마와 아이의 건강을 지키는 전문 의료인이라는 자부심과 사명감이 크고 핀란드 국민 또한 네우볼라 시스템이 핀란드 아이들을 지키는 보루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어 제도 자체에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핀란드 거주 중에 아이를 낳았던 최윤정(40)씨는 네우볼라 시스템을 극찬했다. 최씨는 “하루에 우유는 몇 번 이유식은 몇 번 줬는지까지 수시로 전화해 체크한다”며 “아이의 핀란드어 습득을 돕기 위한 맞춤형 언어 교육을 수행해줬고, 진료실에 놓여 있는 각종 퍼즐 및 도형조각들을 이용한 심리테스트까지 받는 등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권 국가에서도 네우볼라 시스템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올해 전면 시행을 목표로 일부 지역에서 네우볼라 제도를 시험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네우볼라 시스템을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이다. 네우볼라 시스템에서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는 무료다. 결국 나랏돈으로 이를 충당할 수 밖에 없다.

미나 부수석 간호사는 “핀란드 정부는 100년 가까운 시간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이 시스템을 안착시켰다. 네우볼라 간호사들의 전문성과 그에 수반되는 처우, 세금 인상 등 이 제도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우리는 지금도 네우볼라 간호사들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변화를 모색한다. 일본에 네우볼라 시스템이 정착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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