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정치인이라면 '1987'보다 '신과함께'가 먼저다

  • 등록 2018-01-29 오전 5:45:00

    수정 2018-01-29 오전 5:45:00

[정재형 영화평론가, 동국대 교수] 새해벽두 빅3 한국영화는 ‘강철비’, ‘신과 함께’, ‘1987’이다. 세 편을 합치면 동원관객이 2000만 명이 넘는다. 이른바 대박 중의 대박이다. 새해 운세가 이렇게 대박들을 터트리면 오죽 좋으련만. 날씨는 계속 춥고 여야는 협치가 없는 얼음 정국에 남북관계도 근본적으로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최저 임금이 올라서 좋은 사람도 있지만 자영업자는 한숨부터 내쉰다. 대통령의 인기는 높으나 피부로 느끼는 담론들은 반반이다.

섹스(Sex), 스포츠(Sports), 스크린(Screen). 이 ‘3S’는 국민의 관심을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해 정부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는 대표적인 ‘우민화 정책’의 하나로 쓰였다.

정치인은 국민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이 세 개념을 잘 섞어 이용해 왔다. 현 정부는 평창올림픽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끌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의도를 반대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왜 대통령의 지지도가 떨어졌는지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과거와는 달리 정부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신년 벽두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세 편의 한국영화 중 유독 정부와 여권에서 줄 서서 보는 영화가 ‘1987’이다. 가장 많은 관객이 몰린 ‘신과 함께’보다도 ‘1987’이 더 매스컴을 많이 탔을 것이다. 국민 정서가 합치되는 영화는 ‘신과 함께’인데 정치가들은 그 영화를 보지 않았다. 국민 정서를 알기 위해서라도 정치인들은 ‘1987’보다는 ‘신과 함께’를 먼저 보는 것이 순서상 맞다. 하지만 그들은 ‘1987’을 택했다.

최근 정치권의 ‘1987’ 관람 열풍은 그동안 있었던 ‘영화정치’와 다를 바 없다. 1991년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편제’를 관람하면서부터 ‘영화정치’가 시작했다고 본다. 대통령이 영화를 어떻게 봤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 행위가 여론몰이를 전개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말하자면 영화가 정치적 행위를 시작한 것이다. 이후 대통령을 포함한 여야 정치권 인사가 특정 영화를 볼 때마다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한 영화의 정치 성향을 결정한다.

이러한 현상은 영화가 여전히 이 시대에서 중요한 정치적 위치를 차지함을 반영한다. 우리는 독재정권과 맞설 때에도 영화란 무기로 그들을 무너뜨리는데 일조했다. 반면 정권을 유지하는 정당성을 찾고 권력자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정권을 옹호하는 영화를 선호하고 극찬하는 행위도 정 반대에서 존재했다. 영화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을 대변해 옹호하거나 반대파를 격파하는 도구로 활용됐다.

영화란 본디 그런 것이다. 현실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상적인 현실을 조작해 낸 것이니까 내 목소리를 실어 일방적인 주장을 하기에는 영화만큼 강력한 매체가 없다. 그래서 레닌이 볼셰비키 혁명을 완수한 시점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영화가 지금 이 시기 예술 가운데 (혁명의 대의를 짧은 시간 안에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예술이라고.

대통령은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신과 함께’를 먼저 보고 왜 이 영화에 대한민국 국민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환호했는지 그 이유를 생각했어야 한다. 그러나 일부 정치인은 ‘1987’을 보면서 감회에 젖는 선택을 했다. 정치가 무엇인가. 정치는 정치를 시작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 정치인은 정치를 시작한 전후로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 ‘1987’이 정치를 시작하기 전을 다룬 영화라면 ‘신과 함께’는 정치가로서 민심을 살피러 봐야 할 영화다. 무엇을 더 먼저 보느냐에 따라 그 정치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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