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회장이 시안 2공장 건설 현장을 직접 찾은 것은 메모리 업황 악화 속에서도 생산시설 확대에 대한 흔들림없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메모리 시장이 고점을 지나 뚜렷한 하락세에 접고 가격도 급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급을 오히려 더 늘리는 2공장 건설을 예정대로 추진하는 것입니다. 메모리 가격은 지난해 10월부터 내림세로 돌아선 뒤 올 1월엔 D램 가격이 17% 이상 급락했고 낸드플래시도 3%가량 하락했습니다. 특히 D램은 불과 넉 달만에 가격이 약 27% 떨어졌습니다. 여기에 데이터센터 업체들의 재고 조정으로 수요마저 줄며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전분기 대비 40% 가까이 급감했습니다.
일반적인 제조업체라면 이런 시기엔 생산을 줄여 내실을 기하고 업황이 호전됐을 때 생산을 늘려 매출을 확대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이런 상식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약 8조원이 투입되는 시안 2공장 건설과 30조원 규모가 될 평택 2공장 증설까지 동시에 추진하며 캐파(CAPA·생산능력)를 더욱 끌어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투자 발표 얼마 뒤인 그해 4월 10일, 권오현 회장(당시 부회장)은 직접 전용기를 타고 중국 현지로 날아가 산시성 당국과 낸드플래시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습니다. 석달 뒤인 그해 7월엔 세계 최대 규모의 평택 반도체 공장 투자도 결정합니다. 당시 삼성은 평택 고덕산업단지에 100조원을 투입하기로 해 ‘단군 이래 최대 투자’란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해 글로벌 메모리 시장 상황을 보면 삼성의 대규모 투자 결정은 무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2012년 한해 낸드플래시 시장은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떨어지고 재고가 쌓여, 세계 2위 업체였던 도시바는 30% 감산 결정까지 내린 상태였습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영업이익도 2010년 10조 1100억원에서 2011년 7조 3400억원, 2012년 4조 1700억원으로 불과 2년 새 60%나 줄어 투자 여력에 의문도 제기됐습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반도체 산업을 ‘타이밍의 업(業)’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선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해서 수 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선행 투자를 최적의 시기에 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설명했습니다. 1993년 10월 삼성전자가 일본을 넘어서 처음 메모리 세계 1위로 올라선 날 이건희 회장은 “한번 세계의 리더가 되면 목표를 자신이 찾지 않으면 안된다. 또 리더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26년이란 세월이 흐른 2019년, 삼성전자는 세계 메모리 리더의 자리를 여전히 지켜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