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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아시아 연구 권위자인 이안 부루마(사진 위) 미국 뉴욕 바드 칼리지 민주주의·인권 및 저널리즘 교수는 16일(현지시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한·미 간 이상 기류들을 열거하며 이렇게 지적했다. 미국은 최근 한국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가) 제외 조치에 대항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하자 유감·실망의 뜻을 거듭 표명한 데 이어 한국의 독도방어 훈련에 대해서도 “비생산적”이라며 이례적으로 불쾌감을 표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도 주한미군 기지 조기반환 추진을 공개적으로 언급, 미국 측에 항의성 불만 메시지를 발신하면서 한·미 동맹 균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에 너무 많은 것 기대 말라”
가장 큰 문제는 현 국면이 단기간 내 마무리될 공산이 크지 않다는 데 있다. 부루마 교수 먼저 한·일 갈등과 관련, “표면적 이유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 유산을 둘러싼 역사적인 차이 때문이지만, 실상은 양국의 내부 정치적 문제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의 좌파 정부(left wing government)는 과거 일본과의 협력으로 얼룩진 보수주의자들에게 맞서 애국적인 반대의 모습 보여줘야 하고,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도 국수주의적 지지자들에게 일본 과거사에 비판적인 해외 비평가들에게 강경함을 보여줘야 하는 처지”라는 게 부루마 교수의 분석이다. 양국 정부의 태생적 한계 탓에 이번 갈등은 상당기간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그는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한·일 등 아시아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강력한 동맹만이 증가하는 중국의 힘과 (중국보단) 작지만 어쩌면 더 즉각적인 위협일 수 있는 북한과의 (힘의) 균형도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에도 “결국엔 일본도 지는 분쟁이 되겠지만, 더 큰 경제 규모를 가진 일본보다 한국이 더 불리할 것”이라며 “일본과의 굳건한 협력이 한국의 이익에 더 부합한다는 점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며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조언했다.
부루마 교수는 지난달 12일 뉴욕타임스(NYT)에 ‘냉전이 절대 끝나지 않는 곳’(Where the Cold War Never Ended)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그는 지금의 한·일 갈등을 4세기 초 백제인의 일본 이주부터 중국의 변방국가로서 비롯된 양국 특유의 경쟁심, 16세기 말 임진왜란 등 과거 복잡 다난했던 역사를 바탕으로 제3자들도 알기 쉽게 서술해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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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마 교수는 최근 북한 측의 전격적인 대화 제안으로 이달 말 재개 가능성이 엿보이는 북·미 비핵화 협상에 대해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무기가 그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보장책으로 믿고 있다”며 “그(김 위원장)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도 “(내년 재선을 위해) 김정은과의 사진촬영 기회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며 “나는 그 어떤 비핵화에도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고 했다.
☞부루마 교수는…1975~1981년 일본에서 거주하며 니혼대학 예술학부에서 일본 영화를 공부해 석사학위를 받은 대표적인 일본통. 일본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사진가 등으로 활동한 이후 아시아 관련 연구 및 저술 활동을 시작했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선정한 ‘세계 100대 사상가’에 두 차례(2008·2010년) 이름을 올린 인물. 2017~2018년 ‘뉴욕 리뷰 오브 북스’의 편집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근대일본’ ‘옥시덴탈리즘’,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 독일인과 일본인의 전쟁 기억’, ‘0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