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견장에 빗댄 자본주의 사회

연극 '농담'
28일까지 남산예술센터
  • 등록 2013-04-19 오전 8:05:00

    수정 2013-04-19 오전 8:05:00

연극 ‘농담’의 한 장면(사진=남산예술센터)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어두운 무대 위. 한 여자가 부푼 배를 움켜쥐고 철창에 기대어 있다. 트럭 안 두 남자는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돈다. “아줌마, 왜 이렇게 조용해요? 세상이 막 새로…시작하려고…. 내가 여기 처음 왔던 것처럼.” 불이 켜지면 무대는 과거로 돌아가 있다.

연극 ‘농담’은 투견장을 배경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상주극작가로 활동한 정영욱이 5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으로 김낙형이 연출을 맡았다. 투견판에 어슬렁거리며 모여드는 사람들.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은 서로를 수렁에 빠뜨리고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투견장 주인 이씨는 돈 때문에 자기 아들을 누명 씌워 감옥에 보내고, 이씨의 심부름을 하며 빚을 갚는 오창강은 임산부건 환자건 아랑곳하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며 돈을 갈취한다.

극을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은 칼멘. 황해도 출신으로 국경을 넘다가 공안에 붙잡혀 박씨에게 팔려왔다. 주로 투견의 밥인 명태를 널어 말리고, 투견이 끝난 뒤에는 죽은 개들을 사람들에게 끓여주는 일을 한다. 임신한 것으로 착각되는 칼멘의 배는 실은 인간들의 죄악을 상징하는 매독균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모두 칼멘을 벙어리로 생각하지만 그녀는 모든 말이나 행동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작품은 인간의 욕망을 세련된 은유와 상징으로 건드린다. 칼멘이 무대에 뿌려대는 소금은 죄악과 탐욕에 대한 정화의식이다. 이씨의 둘째 아들 상수는 아버지가 형을 고발했다는 사실을 알고 아버지를 소금물로 정화하고자 했다. ‘핏불’로 불리는 투견판 위 개들은 극 속에서 ‘피플’로 불린다. “우리의 낮과 저들의 밤은 다를 게 없다. 잠시 쓸모가 있다 싶으면 끝나니까”라며 인간을 향해 비웃음을 보낸다 .

김 연출가는 “알면서도 떠날 수 없는 헛된 욕망을 철창의 이미지로 표현했다”며 “그 속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인물들을 보며 현재의 우리를 돌아볼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28일까지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02-758-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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