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아인 30만 시대…수화통역 없어 필담수사하는 경찰

경찰 내 수화 통역 시스템 전무…민간에 의존
수화 통역 안오면 필담에 의존 '조사 하세월'
"경찰 통역은 전문성 필요…전문인력 배치해야"
  • 등록 2018-04-09 오전 5:30:00

    수정 2018-04-09 오전 7:04:04

[이데일리 김성훈 조해영 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금천경찰서 1층 민원실에 십수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억울한 마음에 소란스러울 법도 한데 이들은 유난히 조용했다. 잠시 후 경찰이 “안으로 들어오세요”라고 외쳐도 사람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일행 중간에 서 있던 남자가 일행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 나서야 간신히 발걸음을 뗐다.

이들은 최근 경찰 조사를 받다 풀려난 ‘농아인 대상 다단계 사기범’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고 피해 진술을 위해 경찰서를 찾은 농아인(聾啞人) 들이었다. 피해 사례 진술을 위해 한달음에 달려온 농아인들은 경찰이 부른 수화(手話) 통역사들이 오고 나서야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날 농아인들과 함께 경찰서를 찾은 이승원(58) 목사는 “피해 사례 진술을 위해 대구에서 달려온 농아인도 있었다”면서도 “속 시원히 얘기를 못 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국내 농아인이 30만명에 육박했지만 경찰 내 자체 수화 통역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불편을 겪고 있다. 농아인에 대한 민원 해결이나 조사 과정을 대부분 민간 영역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경찰은 물론이고 농아인과 통역을 담당하는 수화통역사들까지 삼중고를 겪고 있다. 경찰 내 수화 능력을 갖춘 전문 인력 배양에 나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통역 없으면 필담에 의존…“조사받으려면 하세월”

경찰 조사나 민원을 위해 경찰서를 찾는 농아인들은 ‘소통의 벽’에 부딪힌다. 경찰은 농아인이 방문할 경우 자치구나 시·군에 자리한 지역 수화통역센터에 연락해 수화통역사를 부른다. 민간 수화통역사가 오기 전 제대로 된 의사 표현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그나마 도시 지역 경찰서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수화 인력을 부르는 데 어려움을 겪는 지구대나 파출소는 수화통역사를 부르는 대신 종이에 글을 쓰는 ‘필담’으로 민원을 접수한다. 경찰은 2016년 농아인들의 경찰 사건 신고를 돕기 위해 범죄용어와 방문목적 등 37가지 용어를 표현한 수어 사진과 설명을 배포했지만 실제 적용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서울에 있는 한 지구대 경감은 “경찰에 연락하면 수화통역이 가능한 사람을 부를 수 있지만 그걸 몇 시간씩 기다리는 일이 쉽지 않다”며 “농아인 분들이 오면 글로 써서 대화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각장애인이 아닌 농아인들의 경우 한국어 문장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수연 한국농아인협회 기획부장은 “농아인들은 수어를 제1언어로 쓰기 때문에 개별 한국어 단어는 이해하지만 이를 조합한 문장은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수화 인력 태부족…경찰 내 수화 전문 인력 구축해야

수화 통역사들도 어려움을 겪는 건 마찬가지다. 수화 통역을 할 줄 알 뿐이지 관련법이나 경찰용어 등 대한 이해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수화 통역을 잘못했다가 중간에서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상황에서 혹여 피해를 끼치진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김수연 부장은 “피의자 신분인 농아인의 진술을 도울 때 수갑을 차고 있어 통역에 애를 먹을 때가 있다”며 “경찰이 인권의식을 가지고 확실한 통역을 위해 조정을 해줘야 하는 부분이다”고 말했다.

인원 부족도 문제로 꼽힌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에 거주하는 농아인은 총 29만 1252명(2016년 말 기준)으로 30만명에 육박했다. 한국농아인협회에 따르면 국내 한국수어통역사 자격 소지자는 1620명 수준이다. 그러나 경찰이 농아인 조사 때 호출하는 지역수화통역센터에서 근무하는 수화 통역사는 전국 636명에 불과하다.

한국농아인협회 관계자는 “수화 통역 인력이 (경찰 조사를 위해) 하던 일을 중단하고 가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며 “센터에서 하는 업무가 많아 경찰에 보낼 수화 인력이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인근 지역에 있는 센터에 도움을 구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준우 강남대 수화언어통번역과 교수는 “경찰 통역은 전문성을 요하기 때문에 통역사 가운데서도 뛰어난 실력을 갖춘 통역사들이 맡아야 하기 때문에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움직임이 필요하다”며 “경찰이 권역별로 수화 전문인력을 배치하거나 경찰청 차원에서 수화 전문 인력을 고용해 사건 발생 때마다 출동하게 하는 방법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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