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혁명]①"나 떨고 있니"…흔들리는 지위 '전기밥솥'의 푸념

'한국인은 밥심' 옛말, 쌀 소비량 해마다 감소
서울 1~2인 가구 절반 이상, 가족 간 식사 풍경 아련
'클릭' 몇 번으로 '새벽 배송' 서비스 시대
  • 등록 2018-07-06 오전 5:30:00

    수정 2018-07-06 오전 9:45:54

1998년 독자 브랜드 ‘쿠쿠’로 내놓은 첫 전기압력밥솥(왼쪽)과 지난해 9월 출시된 대표 제품 ‘트윈프레셔’. (사진=쿠쿠전자)
[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나 떨고 있니….”

1990년대 방영한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극중 태수 역의 최민수가 한 대사가 부쩍 생각나는 요즘이다. ‘쿠쿠’(CUCKOO)로 개명, 대중에 첫 선을 보인 지가 벌써 20년, 약관(弱冠)의 세월이다. ‘십 년이면 강산(산천)도 변한다’는데 세상 참 많이 달라졌다. 1960,70년대 ‘혼수 품목 1위’였던 재봉틀만큼은 아니더라도 톱10 리스트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잘 나가던’ 나였다.

1997년 찾아온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모두가 위기를 말할 때에도 나만큼은 예외였다. 1998년 홈쇼핑에서 석 달 동안 1만여개가 팔리면서 전체 상품 중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잘빠진 몸매와 외모’로 1999년 한 해에만 무려 40만대가 팔리면서 출시 1년 만에 업계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국민 아이템’으로 등극한 나는 지금까지도 국내 시장에서 점유율 75%를 차지하며 전기압력밥솥 분야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내가 제일 잘 나가~)

그랬던 나였는데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3분 카레’(1981)와 즉석밥의 대명사 ‘햇반’(1996)이란 녀석들이 나왔을 당시 ‘까짓것’ 콧방귀를 뀌었다. 오곡·흑미·찰보리·잡곡밥 등 햇반이 10여종으로 늘더니 이젠 가정간편식(HMR)·간편대용식(CMR) 같은 이상한 녀석들까지 등장해 호시탐탐 내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나의 ‘베프’인 쌀 소비량은 해가 갈수록 줄고 있다. 한때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100㎏이 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60㎏까지 떨어졌다. ‘한국인은 밥심’이란 말도 옛말인지 사람들이 나를 찾는 손길이 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가족들이 오손도손 모여 밥을 먹는 풍경도 이젠 아련하다. 2015년 1인 가구가 520만을 넘어서더니, 서울엔 혼자 또는 두 명이 사는 1~2인 가구가 전체의 절반이 넘었다. ‘나 홀로 가구’만 30% 수준, 10년 전에 비해 10%포인트 늘었다.

그래도 아직은 견딜 만하다. 취사·보온, 예약 기능 정도에 그쳤던 나 역시 잡곡밥·수육·삼계탕 등 어지간한 요리는 거뜬히 해 낼 정도로 ‘장족의 발전’을 거듭했다. 2015년 4000억대를 넘어선 매출 역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이니 뭐니 하면서 사람들이 ‘집밥’과는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다. 전날 ‘클릭’ 몇 번이면 이른 아침 주문 상품을 집 앞으로 배달해 주는 ‘새벽 식탁’ 서비스 시대도 성큼 다가왔다.

‘밥’의 지위는 자꾸만 흔들리고 2035년이면 열에 일곱은 1~2인 가구가 될 거라고 한다.

“드디어 밥하는 일에서 해방됐다”는 사람들의 환호성과 찬사를 들었던 아련한 추억, 이제 난 어디로 가야할까….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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