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방관이다]구조하다 다쳤는데…정부는 치료비 '나몰라라'

공무원연금공단에 공상 신청 불승인 받은 소방관 잇단 소송
무릎·허리 등 근골격 질환 기준·역학조사조차 없이 심사해
의수 등 규정단가 낮아.."규정에 없는 치료제 자비 부담"
증상별 공상인정 기간 동일.."화상·트라우마 치료 힘들어
  • 등록 2015-11-09 오전 6:00:00

    수정 2015-11-09 오전 7:07:55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 광주시 소방안전본부 서부소방서 구조대원인 노석훈(39) 소방장은 지난 8월 벌집 제거 작업을 하다 감전 사고를 당해 입원 중이다. 그는 한 달 동안 9차례의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왼손이 괴사해 절단했다. 소방 현장에 적합한 의수를 제작하는데 3800만원 가량 필요하다. 하지만 공무원연금공단(연금공단) 특수요양비 단가 기준에 따르면 의수 관련 지원금 상한선은 550만원이다. 노 소방장은 차액 3000여만원을 자비 부담해야 하는 실정이다.

. 부산소방본부 북부소방서 구급대원인 김윤균(34) 소방교는 지난 4월 몸무게가 150kg에 육박하는 환자를 들 것을 이용해 이송하던 중 무릎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2~3일 뒤 못 걸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지자 그는 병원을 찾았고 ‘우측 슬관절 반월연골 파열’ 진단을 받아 수술했다. 임용 전에 그는 무릎 관련 질환이 없었다. 하지만 연금공단은 ‘공무상 인과관계가 없다’며 공무상 요양승인신청에 불승인 결정을 내렸고 인사혁신처(인사처)도 이의신청을 기각했다. 그는 치료비 등으로 250만원을 자비 부담했다. 김 소방교는 연금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다.


구조신고를 받고 출동해 임무 수행 중 부상을 입고도 치료비를 자비로 부담하는 119대원들이 적지 않다. 치료비를 청구하는 절차가 복잡한데다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치료비를 신청해도 기각당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현장에서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불합리한 공무상상해(공상) 규정 때문이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8일 인사처·공무원연금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소방직 공무상요양승인 신청 432건 중에서 52건(12.0%)이 불승인을 받았다. 불승인 받은 소방 공무원 중 8명(15.4%)은 연금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이중 절반은 승소, 나머지는 패소했다. 2013년 9건, 2012년 5건 등 소방직 행정소송은 끊이지 않고 있다.

무릎관절 , 허리디스크 등 육안으로 부상여부를 확인하기 힘든 근골격계 질환을 겪는 119대원들이 주로 불승인을 당한다. 지난해에도 불승인 처분 52건 중에서 43건(82.7%)이 ‘무릎·허리 등 지병으로 공무상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였다.

공무원연금공단 “억울하면 소송해라”

가장 큰 문제는 공무상 상해 여부를 명확히 입증하기 힘든 근골격 질환 등의 경우에는 뚜렷한 기준이 없어 승인여부를 심사하는 심의위원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공무원 공상 승인은 공무원연금공단 공무원연금급여심의회에서 맡고 있다.

안연순 동국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산재 규정·지침에는 손·팔의 각도, 굽히는 횟수 등 구체적인 기준이 정해져 있다”며 “공무상 상해 규정에는 이런 구체적인 기준이 없이 승인여부를 심의하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승인여부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11조)에는 근골격계 질환을 ‘신체에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는 업무를 계속하여 수행함으로써 근육·힘줄·골격·관절 등에 발생한 질병’으로 모호하게 규정하고 있다.

규정이 없다보니 연금공단 차원에서 신청자 부상 발생원인에 대한 역학조사는 아예 없다. 부상을 입은 119대원이 스스로 업무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부산소방안전본부 소속 이근영(36) 소방교는 “어떤 구체적인 기준에 의해 불승인을 받았는지 전혀 설명이 없었다”며 “현행 공상규정은 육안으로 안 보이는 질환에 대해선 ‘억울하면 소송해라’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이 소방교는 ‘요추 질환’으로 공상 신청을 했다가 연금공단으로부터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

공상 승인을 받더라도 치료비를 자비로 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공무상 특수요양비 산정기준’에 고시된 단가와 실거래가의 차이 때문이다. 공상 승인을 받고도 3000여만원의 의수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노 소방장 사례가 대표적인 경우다.

주영국 국민안전처 소방정책과 소방복지계장은 “공상 관련 고시 단가가 소방직, 행정직 구분이 없다 보니 소방직에 불리하다”며 “고시에 포함되지 않은 치료제 등을 사용할 경우에는 단체·개인 보험으로 치료비를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 4월 13일 강원도 양양군 농공단지 내 폐차장에서 불이나 소방관들이 진화에 나섰다.(사진=국민안전처)
“화상·트라우마 공상인정 기간 넓혀야”

증상별로 공상인정 기간이 구분돼 있지 않아, 화상·트라우마 등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경우 불이익을 받기도 한다. 현행 규정은 공무상 요양기간을 2년으로 하고 재심사를 받아 1년 단위로 연장하도록 하고 있다.

한 지자체 소속 소방경 이모씨는 “화상 치료는 2년을 넘는 경우가 많은데 재심사에서는 불승인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흉터가 남아 있기 때문에 자비를 내서 치료하고 성형수술을 받는 대원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정신분석·심상치료 전문가인 임재호 중앙공무원교육원 교수는 “트라우마를 겪는 소방관들 중에 ‘공상 승인기간을 연장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트라우마는 고혈압처럼 치료기간이 많이 필요한 점을 감안해 증상별로 공상인정 기간을 넓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전처 중앙소방본부는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인사처·연금공단과 공상제도 개편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하지만 인사처와 연금공단측은 “현행 규정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어서 난항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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