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면의 사람이야기]창업, 내 아이가 한다면?

  • 등록 2018-05-10 오전 5:00:00

    수정 2018-05-10 오전 5:00:00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강원대 초빙교수]나날이 치솟는 청년실업률, 좁아지는 취업 문, 막상 취업을 해도 직장의 노예가 된 것 같다며 뛰쳐나오는 청년들도 부지기수이다. 일자리 찾기가 어렵다보니 취업준비생 10명중 1명꼴로 창업시장으로 뛰어들겠다고 한다. 정부 지원으로 유행 같이 생겨났던 ‘이화 52번가 상점가’와 같은 청년점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썰렁하다. 1년이 되고 얼마 못 가 문을 닫은 곳이 대부분이다. 사실상 정부 지원이 종료됨과 동시에 문을 닫는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청년들에게 제2의 실리콘밸리를 꿈꾸며 도전하라고 한다. 만약 내 아이라면 지금과 같이 창업을 권하겠는가?

창업은 취업의 도피처가 아니다. 작년 하반기 상가정보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폐업률이 창업률을 뛰어 넘었다. 지난 2월에는 문을 닫은 사업체가 14만9300개로, 새로 생긴 사업체 7만1900개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창업하기도 어렵지만 망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는 이야기다. 또한 통계청 자료를 살펴보면 자영업자의 80%가 5년 내 폐업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청년들은 철저한 준비도, 제대로 된 교육도 없이 다만 진입장벽이 낮은 소매업이나 음식숙박, 서비스업으로 뛰어든다. 작년 이 비율은 약 60%나 됐다. 창업 아이디어나 분야부터 충분히 심사숙고해야 한다. 단순히 유행을 따르거나 내수시장 나누어 먹기에 그치는 생계형 창업은 실패 위험이 크다. 국내시장을 발판으로 세계무대를 꿈꿀 수 있는 창업이 되어야 창업생태계도 활성화 되고 국가의 격도 올라간다.

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260만 개 이상의 미국 내 기업 설립자들의 창업 나이는 평균 41.9세였다고 한다. 그만큼 실력과 경험이 쌓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디어에 대한 충분한 검증과 위험요인 분석, 기술과 지식 외에도 인적네트워크와 사업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지 않은 상태로 꿈과 열정만으로 도전하는 것은 무모하다. 충분한 준비와 훈련을 기반으로 한 도전과 실패는 경험이라는 자산이 될 테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현실과 동떨어진 신기루와 같은 꿈을 미끼로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을 정글과 같은 창업시장으로 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책임하게….

창업의 실상과 그림자

실제로 대부분의 청년창업자들이 1~2년 사이에 폐업에 이르며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디 그 뿐인가? 이런 창업의 실패는 집안의 흥망성쇠로 이어진다. 5만 명의 청년 창업자에게는 10만 명의 부모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맨몸으로 창업에 나서니 초기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결국 대출을 받거나 부모 세대에 신세를 지게 된다. 부모가 전세에서 월세로 집 팔아서 자식을 지원하게 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이 부모세대까지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부에서 청년자금을 지원받는다고 해도 신중해야 한다. 청년전용창업자금지원에 사업과정 관리나 재기를 위한 관리는 없다. 대출기간을 연장 할 수 없어 제때 상환하지 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벤처에서 재기하기가 창업보다 어렵다는 말까지 있다. 창업안전망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사회경험이 풍부한 장년층조차 준비되지 않은 창업으로 소중한 퇴직자금을 잃고 노년 빈곤층으로 내몰려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의 실업률을 낮추자고 창업을 권하는 것은 섣부르다. 신중한 창업, 준비된 창업이 필요하다.

충분한 준비기간, 실패에 대한 대비 필요

내 아이를 창업시키려면 어떤 시스템을 바꾸면 좋을까?

첫째, 개인이 충분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창업은 직장생활보다 어렵다. 또 정글과 같은 곳에서 보호막 없이 맨몸으로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경쟁이다. 스스로 환경을 개척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교육이 필요하다. 사회경험이 적거나 전무한 청년이나 어제까지 임금근로자 였던 퇴직자가 하루아침에 사장이 될 수는 없다. 이것을 명확히 인지시키고 그에 맞는 지식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창업교육을 하는 것이 자금 지원보다 선행 되어야 한다. 국가적으로도 예방비용이 실패비용보다 적고 더 효과적일 것이다.

둘째, 창업 환경 개선과 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 국가 차원에서 육성이 필요한 것은 4차 산업시대를 이끌 기술형 창업이다. 하지만 국가의 의도와 달리 대부분이 생계형 창업에 집중되고 있다. 이는 기술을 가지고 창업한다 해도 여러 규제들에 성장이 발목 잡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회사는 차리기 쉬워졌지만 정작 기업의 운영은 어려워지고 있고 도래하는 기술의 발전을 가로막는 과거의 규제는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뿐이다. 환경이 갖추어지고 매력 있는 창업이 활발해지면 벤처투자금, 펀드는 자연스레 유입될 것이다. 창업기업이 살아남지 못하면 정부지원금도 세금낭비로 전락할 수 있다. 기존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한다. 우린 어디쯤인가?

셋째,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실패에 관대한가? 실패해도 창업하라고? 실패하려고 창업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 또한 큰 자산임에 틀림없다. 이를 발판 삼아 더 큰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에 임하는 소프트파워, 즉 정신력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심어줬는가? 안정 지향적인 정신을 심어줬는가? 대기업, 공무원 도전 실패의 도피처로 창업을 선택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넷째, 산업생태계를 진정으로 생각한 정책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창업을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준비와 훈련, 양성을 위한 시스템 정비가 필요하다. 단기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일자리 찾기 차원의 정책은 정치창업이다. 국가의 경쟁력을 드높이고 미래 세대를 위한 기업들이 싹트고 성장할 수 있는 장기적 관점의 정책으로 전환, 보완되어야 한다. 실적에 또는 한 탕에 연연하지 않는 풍토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런 길이 성공이든 실패이든 국가적 자산이 되는 길이다.

전국에 4년제 창업대학을 만들자

진정으로 청년을 위하고 국가의 미래를 긴 호흡으로 본다면 대학 구조조정을 통해 4년제 창업대학을 만들 필요가 있다. 창업에 필요한 전문성과 실무능력을 키우고 기술과 아이디어를 양성하자. 국가에서 전략적으로 창업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양성하자. 1만 명에게 1000만원씩 4년간 지원해도 4000억원이 소요된다. 청년일자리 지원예산에 비하면 적은 금액이지만 그 효과는 엄청나다. 더욱이 대학마다 정원 미달과 구조조정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니 오히려 각 지역별 특화 방식의 전국의 창업대학으로 쉽게 전환할 수 있는 여건도 갖고 있다. 철저한 준비는 데스밸리(Death Valley·죽음의 언덕)의 장벽도 낮춰줄 수 있다. 현재 정부자금을 지원받아 일부 창업대학원이 운영되고 있으나 대학입학부터 국가차원의 강력한 인큐베이팅을 통한 전략적 창업인력을 양성 한다면 이들은 세계를 무대로 경쟁할 22세기 대한민국의 전략군이 될 것이다.

내 아이가 창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창업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창업하기에 충분히 교육받고 훈련 받았는가? 우리 시스템은 준비되어 있는가? 내 아이를 안심하고 창업 시킬 수 있는 환경인가? 이 질문에 “예스(Yes)“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나는 내 아이를 창업 시킬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내 아이의 창업은 부모로서 주저하고 망설일 일이다. 본인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길일 것이며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창업은 경험 삼아 한번 해볼 만한 일은 아니다. 한번 해볼 만한 일은 얼마든지 있다. 젊을 때는 신문배달이나 건축현장에서의 육체노동적인 아르바이트도 해봤다. 그것이 사회적 경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창업이 사회적 경험이 되는 것인가? 물론 창업을 해서 성공을 하던 실패를 하던 그 경험 또한 소중한 것은 사실이나 준비되지 않은 창업은 국가적 망업(妄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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